해가 긴 하루가 이어지는 요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은 내 평범한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작은 동산에 연못이 있는 공원을 걸으면서 서로 뒤엉켜 놀다가 내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고양이들을 마주하고, 여유롭게 자기들만의 세계를 유영하는 잉어 떼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렇게 매일 마주하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얻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연못을 걷고 있는데 평소에 전혀 보지 못한 생명체가 연못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어 인형인가 했는데, 왜가리라고 추정되는 새가 아주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것이다. 가느다란 다리로 균형을 잡고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얘가 어디서 왔지?” 하는 놀라움과 왜 동행 없이 혼자 있나, 하는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날이었다.
일상의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생명체를 마주하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당혹스럽고 또 반가운 마음이 들게 한다. “야생”이라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장소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비슷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조우한 듯한 반가운 마음이 피어나며 동시에 다른 생명과의 공존에 대하여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2003년 12월 어느 저녁, 처음 가까이서 만난 이후 야생 검은 늑대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형체가 아니라 수년간 사람들이 알고 지내는 존재가 되었다. 마치 늑대가 우리를 알게 된 것처럼... 지금부터 몇 년간 적어도 내가 그저 꿈을 꾸었던 것이 아님을, 한 시절 로미오라는 이름의 늑대가 있었음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로미오의 이야기다.
“이것은 어느 늑대 이야기다(원제: A wolf called Romeo)”의 저자, 닉 잰스(Nick Jans)는 어느 날 스키를 타고 집을 나서다가 거대한 검은 늑대를 마주한다. 놀랍게도 인간과 개에 당황하거나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이 늑대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점점 드러낸다.
어느 날은 개와 공놀이를 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뛰어들어 공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또는 개와 산책하는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개와 함께 어우러져 놀며,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인간과 개에게 관대할 뿐만 아니라 사교적인 성격”을 지닌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로미오와 함께 하며 흥미진진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일도 있었지만, 늑대와의 기억 중 자꾸 떠오르는 것으로 어느 따뜻한 4월의 오후를 소개한다. 저자와 로미오, 그리고 저자의 개 중 한 마리와 함께 강 입구 근처 얼음판 위에서 졸던 때를 묘사한 부분을 읽으며 나 또한 책에서 이 부분을 가장 오래 기억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바람에 쓸려 쉬익하는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것이 들릴 정도로 조용한 날이었고, 태양은 하얗고 단단한 얼음 위로 눈부시게 쏟아져서 마치 우리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에 몸을 담그고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로미오는 한 번씩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피다가 다시 쪽잠이 들곤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이에는 5미터쯤 되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와 그렇게 가까이서 눈을 감고 잠이 들 정도로 충분히 신뢰했다는 점에서 녀석은 내 다리 위에서 거스와 나란히 머리를 누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복잡하고 때로 비통한 역사에 얽힌 서로 다른 이 세 종은 다른 두 종의 존재, 햇살의 따스함, 또 다른 겨울이 지나갔다는 사실에서 소박한 위안을 느끼며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날 오후는 내게 꿈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분명하고 고요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해당 도서의 원서와 국내 출판본 표지]
책을 읽으며 내가 한 번도 발 디뎌보지 않은 늑대가 거닐었던 곳을 떠올려본다. 하얀 눈에 뒤덮인 이국적인 풍경,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서로 다른 종의 만남 이야기는 내게도 한 겨울밤의 꿈 같이 느껴진다.
이 꿈 같은 모습이 계속 이어지도록,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저자가 남긴 고뇌의 기록을 읽다 보면 문득 내 머릿속에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하얀 설원 위를 누비는 늑대의 모습에서 나와 같은 공간을 나누었던 동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부정적인, 때론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나는 그들에게 오해 어린 시선을 준 적이 없을까. 복잡하게 얽힌 세태 속에서 목숨을 위협당하는 것이 야생 육식 동물만의 일일까. 떠오르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는 나는 그저 일상을 잠시나마 공유하는 모든 생명의 매일에 평온이 가득한 모습을, 아직은 먼 꿈같은 현실을 그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