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적절한 거리를 찾아서 - 도서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글 입력 2020.07.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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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은 저자가 살면서 깨달은 타인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말한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 상처받지 않고 관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얘기하는 그 오묘한 '거리'를 보며, 나는 내 인간관계를 반추했다. 어쩌면 1년 전의 나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인간관계가 아니냐며,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가 저자의 인생을 통해서 '거리'가 필요함을 인지했듯이,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최근 그 '거리'에 의문을 품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풀어놓은 만큼, 나도 내 얘기를 통해 내 '거리'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

 

어릴적, 나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할 때 나는 멀쩡하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약 3일간 연락이 뜸했던 친구가 다시 나타나서, 잠깐 힘들어서 연락을 덜했다고 고백했을 땐 '네가 힘들어할 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웃었다'며 미안함의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완전한 동일시를 바랐고,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온전히 솔직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가족', 혹은 '동료'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모든 걸 보여주고 또 내어주는 그런 관계. 그게 내가 소설과 만화에서 봐 왔던 이상적 관계의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가 '타인'이란 단어를 피부로 느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가장 친하던 친구와 싸웠다. 처음으로 그렇게까지 가까운 친구를 가져봤고, 가까울 수록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잃고나서야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왔다. 친구에게 절교를 당하고 약 2년간을 힘들어 했다. 혼자서는 견디기 너무 힘들었던 나는, 가족 및 다른 친구들에게 그 힘듦을 토로하곤 했다. 내가 지치더라도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자 했던 나는, 나의 아픔이 상대를 지치게 할 줄은 몰랐다.

 

친구와 절교한지 약 1년 째에, 나는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에게 최후통첩을 들었다. 

 

"아무리 엄마라도 더 이상은 못들어줘! 엄마도 지겨워. 더 이상은 걔 얘기 엄마한테 하지마!"

"걔 얘기를 할 때면 네가 내가 아는 네가 아닌 것 같아. 이제 걔 얘기 그만하면 안돼? 

그만 듣고 싶어. 내가 아는 밝고 재밌는 너로 돌아와."

 

비슷한 시기에 엄마와, 단짝친구에게 이 말을 듣고난 후 나는 막 친구와 절교한 다음보다 더 힘들어했다. 내 일상을 지배하는 아픔이 있는데 더 이상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조차 이를 내보이지 못하고, 나에겐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입을 다물고 다른 실없는 소리에 웃음지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모든 것을 내보여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내 고통은 내가 짊어져야하고, 나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할 몫이 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감했다.

 

이후 나는 모든 관계를 '낯익은 타인'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기대면 안 되는 이들. '나'와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이들. 필요 이상으로 기대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고, 상대도 내게 딱 그만큼만 기대해주길 바랐다. 어쨌든 너와 나는 '타인'이니까.

 

*

 

그러던 중 대학에서 한 친구와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친구와 나는 취향이 너무나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아주 빠른 속도로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너무나도 비슷한 감정의 외연에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어느날 친구에게 무척이나 힘들 일이 닥쳤다. 1차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고, 그게 끝날 무렵 2차로 힘든 일이 또다시 겹쳐왔고, 아직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때 3차 그리고 4차까지도 닥쳐왔다.

 

1차로 힘들어 할 때는 최대한 힘이 되어주고자 했다. 도저히 혼자 있지 못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짐싸들고 같이 살아줄까도 고민했을 정도다(이건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언제고 걸려오는 전화에는 바로 응답했고, 수화기 너머로 친구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있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대화의 7할이 친구의 아픔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도 그러려니 했다. 너무 힘든 순간에 가까운 이들이 '네 아픔에 대해 듣는 것 조차 지친다'고 말할 떄 얼마나 아픈지 알고있기에, 이 친구가 나로인해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2차가 찾아왔다. 2차는 1차보다 크고 무거웠고, 도저히 혼자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친구는 주변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원하던 만큼의 도움이 오지 않았을 때 서운해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그 기대가 남들보다 클 수 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고자 하긴 했지만, 친구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대학에서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던 자리에서 그게 터졌다. 네가 원하는 만큼 도와주지 못했다고 서운해 하는건 좀 아니지 않냐, 라는 골자로 시작된 이야기에 친구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또다시 상처입어야했다.

 

나는 직접적으로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의 골자에 동감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어쨌든 타인은 타인이고 타인은 남의 고통에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아주지 못하니까. 이후 친구와도 비슷한 주제의 대화를 나눴고, 친구는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처음으로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리고 3차, 4차가 닥쳐왔다. 이미 2차때부터 타인과의 적정 거리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던 친구는 2차때만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혼자서 삭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럼에도 비집고 나오는 것들을 주변에 털어놓았고, 기대려고 했다. 다만 친구가 감당해야할 고통의 양이 남들보다 컸다. 자기 자신도 견딜수 없을만큼 지쳤는데, 자신의 주변조차 자신의 고통에 지쳐있다는 사실에 친구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나는 그 옆을 지키면서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자 했지만...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친구가 기대오는 무게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감정의 외연이 너무도 비슷했던 우리지만, 감정의 뿌리는 너무도 달랐다. 친구는 새벽 2시라도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려도 된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또 타인도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이었고, 나는 친구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24시간 카페에서 밤을 샐지언정 친구 집 문을 두드릴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만큼 기대오지도, 마음편히 기대게 하지 않는 내게 서운해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서로에게 지쳐가던 우리는 아주 사소한 오해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

 

처음에는 너무 지쳐서, 타인에게 그만큼 가까운 거리를 요구하는 친구의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은 타인인데, 결국 그만큼의 거리를 내어줄 수 없는게 사람인데. 결국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런데 지금은...어찌보면, 그 친구는 타인에게 그만큼 내어주고 있기에 타인에게도 그걸 기대하는거고, 나는 타인에게 그만큼 내어줄 그릇이 못 되기에 타인에게 그걸 기대하지도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타인을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기에 타인이 나를 그만큼 사랑해주길 기대하지 못하는 거고 친구는 사랑이 많은 친구기에 타인에게도 그걸 기대하는 걸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내가 말하는 그 '현명한 거리'는 결국 그만큼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내 비겁한 변명은 아니었을까.

 

한번 이 '현명한 거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니,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을 읽을때도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문득 멈칫거리게 됐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평소 내 인간관계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도 자꾸 거부감이 드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나란 인간은 역시 평이한 레벨의 사랑만 할 줄 아는 인간이다'라는 저자의 고백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됐다. 아, 이거였구나. 내가 얘기하는 '현명한'은, 결국 '평이한 레벨의 사랑'만 할 줄 아는 인간에게 현명한'이었구나. 친구의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단지 친구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깊이가 달랐던 거구나.

 

사실 지금은 어떤 것이 적절한 거리인지 잘 모르겠다. 인간은 어쨌든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에, 타인에게는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것도 맞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많이 기대하지도, 기대하게 하지도 않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기 위한 관계만을 맺다보면 과연 언제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결국 감정이 깊을 수록 기대하고, 기대하게 하게 되고 상처받고 상처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네가 타인임을 인정하고 그만큼 거리를 두겠다는 고백은 어찌보면 딱 그만큼만 사랑하겠다는 고백 아닐까.

 

소년만화 속 관계를 동경했고, 현실과 마주하며 '이게 현실'이라며 적절한 거리에 안주했고, 그러다가 다시금 '적당히 사랑하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느끼는 나는.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낯익은 타인'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과연 그게 내가 바라고자하는 삶의 방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거리가 과연 내게 바람직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두번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그 순간순간은 '거리'에 대한 내 태도를 바꿔놓았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서로 등을 맞대고 기대서,

그 온기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안돼?

그 거리라는 거, 꼭 유지해야하는거야?"

 

책을 읽는 내내, 슬픈 눈으로 말하던 친구가 유독 무척이나 보고싶었다. 내가 '낯익은 타인'으로 대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줬던 그 친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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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 가장 낯익은 타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


지은이 : 정민지

출판사 : 빌리버튼

분야
에세이

규격
120*200

쪽 수 : 244쪽

발행일
2020년 06월 10일

정가 : 13,500원

ISBN
979-11-88545-85-8 (03810)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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