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로 접근하는 관상법 - 예술적 얼굴책

글 입력 2020.07.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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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면 심리테스트 같은걸 과하게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는지 주변에 이런 친구들도 많다. 만나면 mbti 찾아보고 유행하는 각종 심테를 찾아보며 재밌어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에는 지나가는 아이들 붙잡고 손금 봐주는 유행이 있었다. 알파벳도 까무룩하고 분수 계산도 헷갈려하면서 용한 점쟁이가 된 것마냥 서로의 손을 들여다봤다. 수명이 기니 짧니, 이과니 문과니 하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무엇이 그렇게 재밌었을까.

 

하지만 그 손금 얘기가 무서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생명선을 연장한다고 손에 칼집을 새겼다는 괴담을 들었을 때에는 너무도 섬뜩했다. 괴담으로 넘겨짚을 수 없어서 섬뜩했다. 그냥 소설이려니 생각하기엔, 손금에 새겨진 자신의 운명이 두려워 칼을 들었을 그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에.

 

타로니 손금이니 난 정말 재미로만 본다. 내 출생에, 혹은 내 손바닥에 거대한 운명이 숨어있다고 생각하면 난 불안하고 초조해서 웃는 낯으로 내일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주는 전문적인 철학의 영향, 혹은 종교의 영향 아래 있는 것 같아 아예 볼 생각도 할 수 없다. 난 운명에 매이기 싫다. 그런데 왜 재미로라도 자꾸 이런 것들을 찾게 되는 걸까?

 

머나먼 미래를 가늠하며 오늘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 자신의 내밀한 심리와 생각을 가장 쉽고 편한 방법으로 알아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결핍된 오늘의 나를 애써 관찰하며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문답 몇 가지로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다. 큰 고민 없이 쉬운 길을 택하려는 가벼운 대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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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얼굴의 도상이 인상적이라 손이 갔던 책 <예술적 얼굴책>은 현대적 관점으로 접근한 새로운 관상법을 제안한다. 지나치게 결정론적이고 운명론적인 기존 관상법에 의문을 제시하고 개인적이며 예술적인 시야로 얼굴을 읽는다.

 

얼굴의 형상 자체를 삶의 원인과 근본으로 파악해 운명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얼굴의 형태는 삶의 과정이요 일생을 거쳐온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접근한다. 일례로 눈두덩이에 살이 많으면 재물이 많다는 이론은 가난해서 눈두덩이에 살이 오를 수도 없었던 이들에게는 기만에 가까운 내용이다.

 

사실 처음에는 관상법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셀프 뷰티나 케어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분명 '심오한 얼굴을 손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비법' 이랬는데, 얼굴 관리나 표정 연습같은 걸 다룬다 생각했더니 관상을 설명한다. 당황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 맥락이 크게 다를게 없었다.

 

강박적인 운명론에 얽매이지 않은 관상은 우리 얼굴이 어떤 인상을 지녔는지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눈, 코, 입 등 얼굴의 요소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어떤 무드를 불러일으키는지 이해함으로써 더욱 좋은 인상을 창조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편하게 읽힌다.

 

물론 책이 다루는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인문학, 철학 계통의 어려운 전공 서적에 가깝다. 책은 전반부의 개념편, 후반부의 실전편으로 나뉜다. 개념편에서는 특정 항목에 따라 눈썹의 방향, 코나 턱의 생김새 등 얼굴의 각 요소가 어떤 것들을 상징하는지, 음기나 양기, 성정에 대한 부분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등을 근본적으로 짚어준다.

 

내용이 다소 전문적이지만 간결하게 도식화한 얼굴 일러스트를 통해 알아보기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배려한 점이 인상적이다. 실전편은 작가가 미술관을 다니며 수집한 방대한 양의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 속 예술 작품에 표현된 얼굴을 사례로 삼아 디테일하게 분석해본다. 얼굴을 예술작품으로 바라보고, 동시에 예술작품의 얼굴을 파헤친다.

 

얼굴을 조형적으로 접근하기에 이해하기 쉽고 읽는 맛이 있다. 늘 답이 정해져 있던 기존 관상학과 달리 읽는 법과표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이 얼굴은 왜 이런 이미지가 강조되었을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특히 책을 읽다 보면 얼굴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 자체를 지독히 즐기는 듯한 작가의 태도가 묻어나 독자도 덩달아 재밌어진다.

 

일대일로 마주앉아 수업을 듣는 느낌이다. 특히 편안하게 설명하는 듯한 작가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 문장이 이어지는데 이 점 때문에 때로는 전공 수업을 연상시킨다. 정제되지 않은 말투와 근근이 이어지는 혼잣말은 편안하면서도 다소 정신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수님 연사를 빼곡히 받아적은 수업록 같달지.

 

책을 읽는 데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게 하나 있다. 바로 적당히 큰 거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울을 마주보며 이마부터 턱 끝까지 꼼꼼히 뜯어보게 된다. 분명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과 장황한 문장을 읽어가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익숙한 듯 낯선 내 얼굴의 구석구석과 가까운 이들의 오목조목한 생김새다.

 

그동안 귀찮아서, 혹은 생긴대로 사는게 익숙해서 방치해뒀던 얼굴 탐색을 시작하기 좋은 책이다. 지난날의 시간과 묵혀둔 감정, 생각이 그 아래 켜켜이 쌓여 있는 얼굴들을 천천히 읽어본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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