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을 표현하는 방식: 이바라드와 지브리 [영화]

글 입력 2020.07.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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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영화, '이바라드 시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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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드 시간 포스터 (Iblard Jikan, 2007)

 

 

<이바라드 시간>은 2007년 지브리 스튜디오 최초 블루레이로 발매된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판타지 작가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회화 작품 63편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중심적인 사건이나 대사 없이 오로지 음악과 그림의 전환으로 러닝타임 30분을 구성한다. 기존 회화 작업에 여러가지 CG를 더 해 이라바드라는 환상 속 세계를 보다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자 했다.

 

 

 

1) 이바라드와 지브리가 공유한 세계관


 

'이바라드'는 지브리 세계관에 영감을 준 환상의 세계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 세계에 매료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브리 팬이라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바라드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바라드 세계가 직접적으로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1995년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이다. 주인공 시즈쿠의 소설을 서술하는 부분의 배경 작화를 이노우에 작가가 직접 맡아 제작하였다. 소설 속 공간을 이바라드와 연결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였고 새로운 영상미로 지브리만의 독창적인 감수성을 잘 드러내주었다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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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1995)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 상상력과 더해진 서정적 작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그림과 음악의 조화는 고향에 온 듯한 따뜻함을 준다.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도 이와 유사한 감성-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왠지 모를 향수를 이끌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본 적이 없고 가볼 수도 없는 상상 속 세계에서 추억과 그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교감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흔히 '지브리 감성'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차분하고 아련한 정서에 이바라드의 세계가 스며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판타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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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와 인상파 운동의 영향을 받는 판타지 아티스트답게 이노우에는 초현실주의적 시공간을 인상주의의 빛의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 기법과 목적에 있어 분명히 차이를 보인다. 그림과 함께 더 자세히 알아보자.

 

 

2-1) 인상주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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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드 시간 (Iblard Jika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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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Pierre Seurat, The Seine seen from La Grande Jatte, 1888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을 보자마자 기법과 색감이 신인상파 화가들이 사용했던 점묘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주 쇠라와 이노우에 나오히사,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파스텔 색감은 비현실적이고 평면적인 성격을 부각시킨다. 혼색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유사하나, 쇠라의 작품이 과학적인 색채 이론에 근거하여 '경험 세계'를 재현하려 했던 것에 반해, 이바라드는 완벽하게 상상만을 기반으로 한 감성의 재현이었다.
 
즉, 인상주의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향한 눈의 포착이라면, 이바라드의 세계는 작가 환상 속 한 부분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노우에는 작업방식으로 점묘법이 아닌 완벽하게 우연에 기대는 '액션페인팅'을 택한다. 이는 철저한 계산과 연구를 기반을 작업했던 쇠라의 신인상주의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잭슨 폴록 식의 추상표현주의적인 유기적 형태를 남겨두진 않고 있어 물감을 뿌렸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2-2) 초현실주의적 공간

 

입체적인 공간을 표현하려 했지만 여전히 회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영화 초반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초현실주의적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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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에 구슬이 통통 튀면서 가게 안이 다른 장소로 변화하고 인물이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등장한 (휠을 돌려 외부 공간을 바꾸는)마법의 문을 떠올리게 한다.

 

영상으로 매체를 확장하면서 차원의 경계가 흐릿한 이바라드의 공간 언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존 회화에서 발견되기 힘들었던 이바라드 세계의 초현실주의적 공간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3)


 

포커스 이동, 디졸브 전환, 음악 삽입 등 그림을 영상으로 전환하는 기초적인 장치들과 함께, 회화 일부를 움직여 생동감을 주는 방식. 인스타감성을 저격했던 인상주의 라이브 전시들이 생각났다.

 

나는 매체 전환이 일종의 팬 서비스로 생산된다고 본다. 비극적인 반 고흐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해소하고자하는 욕망이 전시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처럼, '이바라드 시간'은 작가의 환상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아카이빙 전시'에 가깝다.

 

독립적인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이노우에 작품의 연장선으로 간주했을 때 영화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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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드 시간 (Iblard Jikan, 2007)

 

 

<이바라드의 시간>은 상상 속 세계를 보다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현대에 있어 '환상'은 정교한 3D, 완벽한 시뮬라크르와 다이내믹한 영상기술로 구현되곤 하지만 이노우에 나오히사와 지브리가 추구하는 환상의 모습은 그것과 달랐다.

 

새로운 영역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이바라드는 살아있다. 스토리 없이 흘러가는 30분은 어느 정도 그 세계관을 상상의 영역에 남겨두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있다고 본다.

 

영화 '이바라드 시간'은 자신이 구축한 환상의 세계를 한 폭에 담아낸 이노우에 나오히사와 그곳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팬, 지브리의 아름다운 콜라보이다.

 

 

[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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