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고백] #03. 코로나 시대의 '포노 사피엔스'로 살아가기

어느 날, 엄지손가락에서 저릿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글 입력 2020.07.0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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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에서 저릿하게 통증이 느껴져서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들으시더니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나요?”


역시. 솔직히 고백하자면 병원을 가기 전에도 마음속 깊은 곳은 손가락이 왜 아픈지 이미 알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유가 있길 바라며 병원을 방문했을 뿐이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장 듣기 두려웠던 처방을 내리셨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마세요."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그런데 1시간이라니. 이는 ‘호모 사피엔스’로 회귀하라는 처방과 다름없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노선을 찾으려고 할 때부터 오늘의 웹툰을 보고 싶을 때, 배달 음식을 시키려고 할 때까지, 그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향하는 손을 저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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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포노 사피엔스’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의 편리함 뒤에 숨어있던 그 위험성 역시 조명 받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부분 중 하나가 스마트폰의 가장 편리한 기능 중 하나로 손꼽혔던 GPS다.

 

방역당국이 GPS, 와이파이, 기압계 등 스마트폰 내장 센서의 신호 정보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 때문에 프라이버시권 침해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공개된 확진자 동선 정보가 언론, SNS를 거치면서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만들고, 루머를 확산시키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포노 사피엔스’들은 자신이 일주일 동안 갔던 장소, 했던 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스마트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인들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프라이버시권을 해칠 위험성을 지닌 ‘정보기술의 딜레마’ 상황에서 ‘포노 사피엔스’들은 선택을 회피했다. 일주일의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공개되었을 때 ‘낙인’으로 작용할만한 장소들은 아예 가지 않음으로써 자체적으로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되어도 괜찮은 환경을 조성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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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감옥

 

 

이러한 코로나 시대의 사회는 ‘파놉티콘’을 연상시킨다. 파놉티콘은 중앙의 감시공간을 어둡게, 죄수들이 있는 곳은 밝게 해 놓은 상상의 감옥이다. 이 감옥의 죄수들은 중앙에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규율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한다.

 

이처럼 ‘포노 사피엔스’들은 정보기술의 혁신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했지만 그 기술혁신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코로놉티콘(코로나+파놉티콘)’의 죄수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퇴보’다.

 

‘포노 사피엔스’들이 코로나 시대에서 ‘진화’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보기술의 딜레마’가 택일의 문제도, 피해야할 문제도 아닌 사회적 토의와 합의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치열한 토의를 통해 프라이버시권 법 규정을 구체적으로 개정한다면, 뛰어난 정보기술에 의한 방역을 지속하면서도 과다한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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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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