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좋아하는 피노키오를 찾아서 : My Dear 피노키오 展

《My Dear 피노키오》
글 입력 2020.07.0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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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피노키오. 책을 한 번 덮고서 다시 열어본 적이 없는 터라 지금은 줄거리도 가물가물하다. 그런 내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피노키오 전시회》를 관람한 이유가 따로 있을 테다. 피노키오라는 주제 자체엔 관심 없었지만, 한 주제로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똑같은 것을 다르게 보기. 가장 좋아하는 관람 방식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피노키오는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원작을 디즈니가 각색한 것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등 디즈니가 각색한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디즈니가 만든 동화들은 대부분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은 잔혹 동화라 부를 만큼 잔인하고 충격적이다. 피노키오도 마찬가지다. 1881년부터 '카를로 콜로디'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어린이신문에서 연재한 것이 큰 인기를 끌었고, 디즈니를 이 스토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모험 이야기 정도로 재해석했다.

 

약 200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작가마다 원작과 디즈니 리메이크 중에서 한쪽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두 이야기에서 똑같이 다룬 부분을 그리기도 했다. 원작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어렸을 때 읽었던 피노키오 이야기마저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겐 도슨트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11:00, 13:00, 15:30, 17:00 하루에 네 번, 전시장 입구에서 도슨트의 안내로 투어가 시작된다. 약 4~50분 동안 전시장 전체를 둘러보며 작가의 의도나 큐레이터의 전시장 기획 의도, 원작과 디즈니 이야기의 차이점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물론 17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관람하기 때문에 깊은 깊이를 담아내진 못한다. 그러나 들었을 때와 듣지 않았을 때의 차이점은 명확할 것이다. 알고 보는 재미와 모르고 보는 재미, 선택은 자유다.

 

*

 

'피노키오'에 자신의 관점을 덧붙여 보여준 첫 번째 작가는 로베르토 이노첸티였다. 플래시 없이 촬영 가능한 전시이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저작권 보호 때문에 촬영 금지이다.

 

작가는 피노키오를 향한 강한 연민을 가졌다. 피노키오는 유아기 시절 없이 처음부터 초등학교에 갈 나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이제 막 세상에 던져진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 사고 치지 말라 등의 규율은 아이를 전혀 고려치 않은 고압적인 지시였다. 애가 말을 듣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다.

 

 

ⓒReberto Innocenti.jpg

© 1988 and 2005 Roberto Innocenti Based on the book “The Adventures of Pinocchio” published in 2005 by Creative Editions, an imprint of The Creative Company, Mankato, MN, USA. All rights reserved.

 

 

또한, 이미 수많은 작가가 재창조한 피노키오 캐릭터보다는 피노키오의 배경인 토스카나를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작품들이 사진처럼 세밀하고 세세하다. 피노키오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 배경의 한 인물처럼 주변 환경에 녹아들었다. 그래도 나무로 이루어진 피노키오의 독특한 외관과 코 때문인지 금방 눈에 띄긴 한다.

 

로베르토 이노첸티와 비슷한 맥락에서 역사와 피노키오를 엮어낸 작가가 있다. 마우리치오 콰렐로는 엄격한 규율과 규범, 도덕성을 강요받던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시대의 국민과 피노키오가 세상에 나와 처음 겪은 혼란을 같은 선상에 두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암울하고 우중충한 느낌을 준다.

 

이어서 로렌조 마토티는 전시회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보여준 작가이다. 코믹북,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분야에 오래 몸 담그면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작품이 만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할 만큼 입체적이다. 색감의 대조, 인물의 표정과 상황의 역동성을 드러내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작품 속 주인공들의 표정과 몸짓, 배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력을 컬러풀한 작품을 이용해 극단적으로 드러낸 작가는 제럴드 맥더멋이 아닐까 싶다. 원작이 마냥 밝고 즐거운 이야기 아닌 만큼 밝은 색감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만들면서도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담아냈다.

 

빅토리야 포미나가 그린 '장난감 나라'는 어린 시절 그렸던 과학상상화가 떠오를 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많다. 특히 배경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모든 사물이 기울어진 와중에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피사의 사탑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 강조한다.

 

 

ⓒYves-Charnay.jpg

© Yves Charnay

 

 

전시와 설치의 영역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작가도 있었는데, 제라르 로 모나코와 이브 샤르네였다. 게다가 두 작가의 작품 모두 빛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내어 그 섹션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어우러졌다.

 

이처럼 작가들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한 작가가 만든 작품 간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마누엘라 아드레아니 작가가 그린 작품을 쭉 훑어보면 까맣고 빨갛고 노란 존재 하나가 겹쳐 보일 것이다. 딱따구리다. 그림책 작가답게 따스하고 서정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 Anthony Browne.jpg

© Anthony Browne

 

 

또 다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도 전시에 참여했다. 각도에 따라 세 사람이 보이는 렌티큘러 기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세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그림책다운 그림을 그려낸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낸 작가 셋도 있다. 에르베 튈레, 안토니오 사우라, 구이도 스카라보톨로이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어떤 장면 혹은 무슨 캐릭터인지 예상해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두 작가를 소개하며 글을 마쳐본다. 민경아 작가는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고, 알렉산드로 산나는 색을 번진 수채화가 만드는 풍경, 그리고 피노키오 일대기라는 연결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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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아 작가의 작품은 그 생김새가 독특하다. 피노키오의 코, 인물, 그리고 피아노. 추상화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그렸는데도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이럴 땐 작품의 제목을 봐야 한다. '피아노키노'였다.

 

'피아노키노'는 피아노와 피노키오의 합성어로, 검정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피노키오가 피아노와 함께 그려져 있다. 작가는 흑백이라는 단순한 두 색이 무수한 의미를 만드는 게 꼭 예술과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술의 상징으로 피아노를 배치한 것이다. 왜 하필 피아노냐 하면, 그 생김새에 답이 있다. 피아노의 건반을 떠올려 보라. 검정과 흰색.

 

여기서 더 확장하여, 예 혹은 아니오라는 단순한 선택을 무수히 반복하는 우리네 삶도 빛과 그림자, 예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명과 암이 세상을 이룬다는 표현을 예술로, 그것도 동화 속 캐릭터를 활용하여 창조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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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알렉산드로 산나 작가의 작품은 전시된 것도 좋지만, 뒤에 놓인 그림책, 'Pinocchio prima di Pinocchio'를 살펴보길 추천한다. 우주부터 시작하여 피노키오의 전생을 다룬 책이다. 오로지 수채화로 그린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페이지마다 한 폭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서 피노키오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가지이다. 어설픈 몸짓으로 걷다가 우당탕 앞구르기도 하던 피노키오. 피노키오에게 고양이, 여우 친구가 생기며 그들은 드넓은 하늘 아래를 뛰논다. 그러다가 혼자 숲으로 모험을 떠난 피노키오. 뒤로 펼쳐질 이야기는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


*

 

그림은 눈으로 직접 담는 것과 모니터 너머로 감상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글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작가들도 있어서 직접 관람을 추천한다. 게다가 어른들도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는 등 이번 전시는 어린이들 못지않게 성인을 위한 전시이기도 한 모양이다.

 

유수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만큼 가볍지 않은, 오히려 깊은 작품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랑, 분홍, 파랑 등 전시 벽이 각 작가의 섹션마다 어우러져 피노키오라는 거대한 작품과 연결되는 재미를 많이들 느껴보길 바란다.

 

 


 

 

My Dear 피노키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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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0년 6월 26일 ~ 2020년 10월 4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3층

제5전시실, 제6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마감 6시)


관람료

일반 15,000원

청소년 13,000원

유아 및 어린이 10,000원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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