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의 인턴에서 벗어나기 [영화]

글 입력 2020.07.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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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료하면 하는 행동 중 하나는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다. 줄거리가 있는 서사를 다시 보는 것은 극적인 긴장감을 주진 않는다. 심지어 다음 대사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때도 있다. 그런데도 다시 보는 이유는 뚜렷하다. 처음에 내용을 이해하기에 급급하여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어떤 것이 복선이었는지 눈치챌 수 있는 소소한 여유가 생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매년 볼 때마다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인턴 (The Inter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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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무료함을 달래줄 영화로 고른 것은 「인턴」이다. 벌써 5년 전, 2015년에 개봉한 영화로 많은 사람이 ‘나의 인생영화’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곤 한다. 이 제목을 봤을 때, 단순히 제목 자체가 주는 설렘이 있었고 나름 미지의 세계를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대 초반이 꿈꾸는 직책 인턴. 진짜 직장인으로서의 걸음을 뗄 수 있는 두근거리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마냥 서툰 초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여겨지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구성된다. 온라인 패션 창업으로 성공한 CEO 반열에 오른 30대 여성 줄스와 한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온 경험이 풍부한 70대 남성 인턴 벤이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애정이 야기로 이루어진 게 아닌 나름 둘의 우정으로 가득 차 있다. 첫 시작은 줄스의 회사가 삶의 졸업반 즉 연륜이 있는 노인 인턴을 공개 채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중 벤도 최종합격이 되고 줄스의 개인비서로 배정된다. 이 과정에서 줄스의 회사 일을 포함하여 정신적이고 사적인 영역까지 개입하게 되며 영향을 끼친다. 일에 치여 쉴 틈 없는 그녀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인생의 멘토를 얻게 된 것이다.

 

 

 

총 3번의 관람


 

처음 봤을 때는 고등학생이었고 두 번째는 공연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 마지막은 며칠 전 이다. 학생 때는 줄스가 하는 모든 대사와 모습이 로망으로 다가왔다. 몇 년 뒤를 그리는 나의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CEO 줄스와 똑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바쁘고 회의로 일정이 가득 차 있는 현대인 그 자체이다. 그래서 단순히 저 정도로 사회적인 성공을 하면 정신적인 여유는 뒤전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에 대학진학-취업이두 가지 주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박혀있어 다른 것에는 중점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고 줄거리는 어딘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잔잔한 위로 딱 그 정도로만 남아있었다.

 

 

 

줄스와 벤에게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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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봤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었다. 가족의 품에서 떠나 타지에서 홀로 생활을 한 지 2년째가 되던 해였고 익숙해질 줄 알았던 주위 현실이 문득 큰 외로움으로 다가오던 나날이었다. 그럴 때 한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심 새로운 시도로 삶의 분위기가 나아지길 바랐다.

 

하지만 오히려 낯선 분위기, 낯선 사람들과 손에 익지 않은 업무들로 성취감 보다는 지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과거에 그렇게나 바라던 모습을 이뤘음에도 어딘가 구멍이 뚫린 것 같았고 개인적인 시간과 여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도리어 다른 사람들에게 일 적으로 평가받는 것에 예민해졌고 스스로가 꿈꾸던 모습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으로만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갑자기 이 영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직장에서 이뤄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 한편으로는 벤과 같은 멘토를 찾고 싶은 작은 소망이었다. 그래서인지 줄스의 모습만을 보던 학생 때와 달리 벤에게 집중했다. 벤의 대사 하나로 위안을 얻기도 했다. 특히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일이 틀린 것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여기서 일에 확신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것도 그리고 그 모습에 채찍질하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었다. 마땅히 의지할 구석이 없어서 하루에 한 번씩 혼자 좌절하던 모습에 힘을 주는 대사였다. 화면 속 벤은 어떨 때는 가족처럼 혹은 친구처럼 위안이 되어주었다. 마치 지금 지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고 이상하게 받아드릴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매일 같은 일만 반복되는 현실의 날들을 잠시라도 맑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단순히 잔잔한 줄거리가 아닌 여운이 남는 기억으로 바뀌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일이 틀린 것이 아니에요."
 

 

 

첫 대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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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본 것은 며칠 전이다. 이때는 영화에서 다루는 연애, 결혼생활 등 일상생활의 문제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새로운 장면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줄스가 결혼생활의 문제를 벤에게 털어놓는 장면이 있는데 이 전에는 큰 여운이 없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턴」이라는 제목 자체가 굉장히 중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직관적인 직책으로서 인턴은 벤이지만 삶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인턴은 줄스였다. 단순한 회사에서의 직책이 아니라 인생을 중심으로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바라보니, 비로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벤의 첫 대사를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것이 인생 전부다.

 

 

사랑과 일. 보편적으로 두 가지 모두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다툴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줄스도 누구나 그러듯이 결혼생활도 회사 일도 큰 걱정거리이다. 벤도 아내와 사별하고 일을 그만 둔 후 자신의 빈 구멍을 채우고 싶어 했다.

 

즉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숙제 거리라는 것이다. 사랑과 일은 삶의 재료에 빠질 수 없고 각각 떠올리는 것조차 삶의 부분을 형성한다. 이런 경험으로 배움을 얻은 벤은줄스에게 힘을 실어준다. 시들지 않은 경험으로 조언을 해주며 정신적인 지지대 역할로 관계를 맺는다. 아마 벤의 모든 말을 한가지로 요약한다면 당연히 걱정거리로 여겨지는 것들 때문에 너무 크게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닐까.

비로소 인제야 깨달은 것 같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역경으로 여기고 지나치게 의기소침해져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이기도하다. 친구와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일정표를 가득 채웠던 해야 할일들. 모든 것에 너무 조급했었다. 단순히 인생을 위해서는 사랑하고 일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뜬구름처럼멀리 있는 명제와 같던 말이 가슴 속 깊이 배움으로 흡수되었고 이것을 통해 일을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단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쯤 줄스도 벤을 통해 삶의 인턴이라는 직책에서 벗어나 진급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말이다.

 

 

[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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