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워질 수 없는 구멍 [도서]

끔찍한 것은, 잘근잘근 씹혀 너덜거리는 몸이 아니라, 알고도 기웃거리는 미련함이다.
글 입력 2020.07.0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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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jpg

 

최진영,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20년 후에도 살아남을 작품이 있을까.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고, 작품은 그런 시대를 잘 반영한다. 시대에 맞추지 못한 작품은 사람들의 손을 덜 타게 된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을 주제로 다루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자아 성찰’ 혹은 그저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자아 성찰을 한다. 자아 성찰을 아직 못 끝낸 인간은 있어도 한 번도 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그건 오래전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성찰을 시작하는 첫 번째 질문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성찰적 사고는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는 의식 활동을 말한다. 즉 주체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를 탐색하기 시작하며, 타자를 통해 문제적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주체는 회상을 통해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떠올린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주체-타자’, ‘현재의 나-과거의 나’는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기와 타자를 이해하게 되고 삶의 가치와 태도를 지향하게 된다.

 

여기서 타자는 단순히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일깨우는 존재이다. 또한 타자는 타자 자체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 타자가 나를 향해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데 주안점이 된다. 즉 주체와 타자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며, 주체가 타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타자에 의해 주체의 인식과 경험이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문의 벽의 ‘나’는 ‘박준’이라는 타자와의 비일상적이고 황당한 만남을 마주하게 된다. 술기운에 ‘박준’을 재워주고 보낸 뒤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와 ‘박준’은 유의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정신병원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가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박준’은 ‘나’의 인식에 포착된 타자가 된다. 그 후 ‘나’는 ‘박준’의 일상을 관찰하게 되고 그의 행동이 주는 의미를 해석하게 되며 새로운 이해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최진영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주인공 원도는 장민석이라는 인물이 오고 난 후 내면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즉 장민석이라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일이 꼬이기 시작하고, 스스로한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때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아니다. 이 소설의 제목인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다. 원도는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원도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기억을 끄집어낸다.

 

 

 

기억 :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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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하며 인간의 삶을 담고 있는 과거의 산물이다. 기억은 과거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에 영향을 준다. 성찰적 사고 과정에서 타자와 마주하게 된 ‘현재의 나’는 이와 관련한 특정한 과거를 회상한다. 이때 회상을 통해 상기된 기억은 당시 경험했던 과거의 감정과 내면의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특히 고통,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현재의 나’는 그 감정이 생긴 원인을 파악하고 없애기 위해 ‘과거의 나’와 대화하게 된다. 이처럼 성찰적 사고의 요소로써 기억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이를 통해 ‘현재의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여 궁극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못이라기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저 삶이었다.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156p

 

 

겨울날 홀로 여관에 간 원도는 여관집 주인이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온다. 여관집 주인은 여기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며 원도에게 주의를 주러 몇 번이나 원도 방을 들락날락 거린다. 그리고 원도는 그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을 찬찬히 곱씹는다. 부도가 난 집안과 그로 인해 아내와 딸과 갈라선 것,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사이에서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모르는 것, 자신은 챙겨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만 챙겨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전 여자친구 유경과 원도를 선택하지 않은 그녀, 그리고 장민석.

 

존 듀이는 성찰적 사고가 우리 마음에 어떤 당혹, 주저, 의심의 상태를 형성하는 어떤 문제에서 기원하며 제기된 문제 상황을 없애기 위해 탐색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화자는 타자와 마주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지 탐색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원도의 타자는 바로 장민석이다. 원도는 장민석이 온 이후로 장민석이 되고 싶어 하고, 장민석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싶어 하고, 모든 사람이 장민석이 아닌 자신을 선택해 주길 바란다.

 

장민석에 대한 생각은 원도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환상으로 나타나 원도를 압박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 소설이 독자들의 기억에 더 남게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도는 장민석이라는 타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고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냐, 장민석이 묻지 마 살인을 당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를 어물쩍하게 끊을 수밖에 없는 것에서 이 소설에 여운은 더 짙어진다. 열린 결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 결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뒤틀려버린 한순간


 

 

역할 혹은 상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자유를 뺏긴다.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161p

 

 

최진영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원도가 생각하는 ‘내 인생이 뒤틀려버린 한순간’을 찾으면서 독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믿음에 이성은 필요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와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의 차이’, ‘확신과 의심의 사이’, ‘역할 혹은 상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태어나는 순간 자유를 뺏기는 인간’, ‘우연과 필연에 대해 말하는 자의 고집이 그 둘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대해’, ‘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아무 이유도 없다는 뜻’에 대해서. 위에서도 말했듯이 원도는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나는 왜 살아있는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거기서 들게 된 의문에 답을 찾아 나선다.

 

 

살고 싶었다. 사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른 채로도 살았고, 살아 있으므로, 사는 데까지는 살고 싶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은 죽고 싶지 않다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었다.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240p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주인공은 소수자도 피해자도 아니며, 아내와 딸에게 버려지고 횡령과 실인 혐의로 도피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주인공을 가해자 위치에 선 사람으로 잡게 되면 조심스럽게 글을 써야 한다. 왜냐, 자칫하다 가해자를 옹호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진영의「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그렇지 않다. 가해자를 옹호하기는커녕 불쌍한 존재로 더 떨어뜨린다. 아니, 그것보다는 횡령과 살인 혐의를 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주인공의 과거가, 주인공이 해왔던 생각이, 과거의 혹은 지금 우리의 생각과 별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갖고 있으면서 더 갖고 있기 원하고, 내게 없으면 남의 것을 부숴버리고 싶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인간.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언제나 악하지만 필요하면 선해질 수도 있다. 매 순간을 선택할 수 있기에, 매 순간이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존재다. 이 소설에서 원도는 횡령과 살인 혐의로 도피하고 있는, 악을 극적으로 보여준 존재이다.

 

우리도 수백 번 횡령과 살인을 저질렀다. 원도는 그저 그걸 행동으로 보여준 거고 우리는 생각만 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다. 작가는 이런 우리를 파악하고 하나로 묶어 원도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세운다. 그리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다시 한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원도에게 죽음이란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죽음이라는, 한순간일 뿐이라는 메워질 수 없는 구멍 사이로 원도를 밀고 독자를 밀고, 그리고 자신도 밀어 넣는다. 이 소설이 먼 훗날 봤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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