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렌지, 오렌지, 오렌지.

글 입력 2020.07.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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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래 알고 지낸 어른 한 분은 항상 나한테 모든 걸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되는대로 다 해봐야지, 인생을 게으르게 보내면 낭비일 뿐이라고. 매일 집에서 책만 읽고 있던 나는 먹어보지 않아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분의 말에 심기가 불편하긴 했는데 정말 경험이 없는 게 맞았기에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지루함과 계속되는 잔소리를 못 참겠는 나머지 나는 호주로 피신했다. 먼저 가 있던 언니가 화창한 사진으로 꼬시던 곳, 만 이천원의 시급과 와인이 흐르는 땅. 햇볕이 타오르는 남반구의 나라. 호주.

 

하지만 호주에서 돌아온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내게 호주는 오렌지로 남아 있다. 호주, 오렌지 나무가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곳. 호주, 농장의 모든 식물에 악마같은 가시가 돋아 있던 땅. 호주, 나와 오렌지와 태양만 있던 남반구의 나라. 다시 떠올려도 그립지 않지만, 종종 그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

 

새벽 다섯시부터 두시간 동안 낡은 트럭에 실려 도착한 오렌지 농장 풍경은 항상 똑같다. 우람하게 새파란 잎을 번들거리는 오렌지 나무가 지평선까지 일렬로 빽빽하게 서 있다. 땅은 붉은 모래밭이다. 걸을 때마다 입자가 고운 모래가 작업화 사이에 스며들어 양말을 빨갛게 만든다. 우리는 잠이 덜 깬 채로 트럭에서 내려 캥거루백을 집어든다. 목과 어깨에 교차에서 매는 이 가죽 가방은 오렌지 일꾼들 전용으로, 수확하는 오렌지의 무게를 버틸 수 있게 해준다. 언니랑 나는 두건을 코까지 올려쓰고 모자를 꽉 조인 뒤 비척비척 그 날의 오렌지를 따러 간다. 우리는 지금 오렌지 농장 일꾼이니까.

 

호주의 농장은 대부분 능력제로 돌아간다. 우리가 몇 시간을 일하든 그 날 수확한 작물의 양으로 돈을 받는다. 오렌지의 경우 그 기준은 빈(Bin)이다. 빈은 대략 가로세로 1.5m 깊이 1m 정도의 커다란 상자다. 이 상자 가득히 오렌지를 담아야 한 빈을 채운 것이다. 급료는 한 빈에 30불(한화 2만 4000원). 나랑 언니처럼 둘이 같이 일하는 경우 한 빈에 인당 15불(1만 2000원)씩.

 

어느 날, 나는 사다리에 걸터 앉아 텅 빈 빈을 내려다보며 가늠해보았다. 저 빈에 우리 언니를 차곡차곡 쌓으면 여섯 명 정도 들어갈 것 같아(언니 키가 딱 150cm다). 나는 이제 30불을 벌기 위해 여섯 언니 분량만큼의 오렌지를 수확해야 한다. 오렌지는 보통 야구공 크기고 아무리 커봐야 남자손바닥 크기인데 언니랑 내가 캥거루백에 오렌지를 가득 담아서 스물 다섯 번 정도 쏟아부어야 한 빈이 채워진다. 그렇게 애써 한 빈을 채우는데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 작업 시간은 일곱 시부터 한 시까지 여섯 시간. 한 시를 지나 기온이 40도를 넘어가면 더 일할 수 없다.

 

오렌지 수확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육체 노동이다. 나무에 매달린 오렌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손아귀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캥거루백에 오렌지를 담은 채 계속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목과 어깨에 통증이 심하다. 거기다 나무 위쪽에 달린 오렌지를 따기 위해 계속 사다리를 들고 이동해야 한다. 이 사다리가 진짜 무겁다. 3m짜리 철제 사다리인데 무게 중심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잘못 들 경우 뒤로 자빠져서 사다리에 깔릴 수 있다. 또 나무에 사다리 기대는 것도 쉽지 않다. 바닥을 잘 지지해야 하는데 사람 무게가 무거워 여차하면 사다리가 기울어져서 떨어지기 쉽다. 공중에서 사다리 하나에 의지해 오렌지를 딸 때마다 불안하다. 이 사다리를 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많기 때문에, 우리 일꾼들 사이에는 ’오렌지 나무에서 세 번 떨어지면 탑픽커(하루에 여섯 빈 이상 채우는 일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모든 육체 노동만 힘든 건 아니다. 오렌지 농장의 자연 환경은 험악하기 그지 없다. 일단 오렌지 나무부터가 가시나무다. 여리여리한 장미 가시가 아니라 탱자나무같이 굵고 억센 가시가 빈틈없이 나 있다. 나뭇가지는 왜 그렇게 크고 딱딱한지 옷가지라도 걸리면 찢어지기 일쑤다. 오렌지 나무는 보는 순간 정원수로는 쓸 수 없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이 나무는 단란한 가정집 뒤에 있을 놈들이 아니다. 공주가 갇혀 있는 성 둘레에 울타리로 심어 마땅한 놈들이다. 그래야 침입자들이 이 나무의 무지막지한 가시와 몽둥이같은 나뭇가지에 붙잡혀서 천천히 죽어가게 될 테니까. 심지어 오렌지 나무는 잎사귀마저 뾰족해서 찔리면 아프다.

 

그래도 농장에서 제일 친절한 건 오렌지 나무다.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팔목까지 올려입고옷을 두 세겹 껴입으면 가시에 긁히지는 않는다. 개미가 스물스물 기어오르거나, 가시덤불을 헤치고 들어갔다가 코 앞에 엄지손가락만한 털투성이 거미가 있는 것도 견딜 만하다. 정말 나를 미치게 한 건 땅바닥에 널려있던 정체불명의 잡초다. 지금도 정확한 이름을 모르는 호주의 그 풀. 신발과 바지 밑단에 우수수 달라붙어서 걸음을 떼는게 무섭게 만드는 놈들이다. 나는 그 놈들을 ‘악마의 별사탕’이라고 불렀다. 호주산 도꼬마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식물은, 밤송이와 똑같은 모양새에 콩벌레만큼 크기가 작다. 그리고 달라붙을 수 있는 모든 천 조각에 매달려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도꼬마리는 착하게도 가시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져 있다.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번식을 위한 식물의 진화이겠거니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놈들은 아니다. 악마의 별사탕은 바늘을 수백개 꽂아놓은 것처럼 가시투성이다. 날카롭게 쭉 뻗은 가시끝은 자기 목적이 오직 털 달린 짐승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악한 고문 도구가 오렌지 농장 천지에 널려있다. 신발 안이나 바지 두 겹, 장갑정도는 너끈히 파고든다. 지쳐서 쉬려고 생각 없이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간 참극이 벌어진다. 살에 달라붙었을 경우 뗄 때도 아주 신중히 떼야 하는데 대충 잡아뜯었다간 몸뚱이만 떨어지고 가시가 그대로 박혀서 삼일 내내 보이지 않는 가시를 빼내려고 애꿎은 살점을 파내는 상황이 생긴다.

 

누가 농장에서 일하면 과일은 마음껏 먹을 수 있겠다고 하던가. 우리가 수확하는 오렌지는 시퍼렇고 딱딱해서 삼일 굶은 캥거루도 안 먹을만큼 떫었다. 나는 단순한 반항심으로 제일 맛있어 보이는 오렌지들을 꾸역꾸역 숙소로 챙겨왔다. 그 오렌지를 코딱지만한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내 미약한 반항의 표시를 응시하며 와인을 마셨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오렌지 농장 일꾼으로 일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때는 우리도 요령이 생겼다. 착실히 캥거루백에 오렌지를 담아 빈에 쏟아붓는게 아니라, 대충 따다 빈에다 집어던지는 게 훨씬 몸 편하고 재밌다는 걸. 감독관은 땅에 떨어진 오렌지를 빈에다 담는 일을 금지했지만 우리는 땅바닥에 있는 걸 주워담는게 나무에서 따는 것보다 편하다는 걸 알았다. 빈은 가득 채울 것 없이 대충 언저리만 맞춰주면 되고, 그나마 주황빛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오렌지는 보이는 족족 우리 주머니로 들어갔다. 틈만 나면 캥거루백을 밑에 깔고 앉아 쉬었다. 나는 이빨로 오렌지 까는 기술을 터득했고 잘 익은 부분만 먹고 떫은 부분은 개미들한테 던져주는 재미를 들였다. 점점 더 원숭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새벽같이 일어나 피곤에 찌들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 잠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시작은 교대로 한 사람이 일할 때 한 사람은 짧게 자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냥 둘이 같이 드러누워 잤다. 열시 열한 시쯤 햇살이 따땃할 때 오렌지 나무 그늘 밑에 누워 자는 낮잠만큼 꿀맛인 게 없었다. 누워있 으면 귀 언저리에서 개미가 바스락바스락 기어다니고 양 옆 라인에서 다른 일꾼들이 열심히 오렌지를 빈에 쏟아붓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작업화을 까딱거리면서 언니한테 말한다.

 

“우리 진짜 열심히 해야 돼”

 

“맞아” 언니가 대답한다.

 

“진짜로. 이대로 가다간 집세도 못 낼거야”

 

“맞는 말이야”

 

“...”

 

하지만 언니도 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머리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오렌지를 하나 따먹는다. 우리의 작업량은 갈수록 보잘 것 없어지고 있다. 어제는 한 사람당 한 빈을 채웠다. 일곱 시간을 땡볕 속에 있었는데 15불을 번 것이다. 그 중 9불(한화 7200원)이 픽업비로 나간다. 그런 내 처지를 생각해도 도저히 일할 기분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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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노동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특히 단순 육체 노동은 더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먹지도 못할 오렌지를 따기 위해 흙먼지 범벅이 되도록 일하고 새벽 4시에 비척비척 일어난다. 오렌지를 따서 빈에 쏟아붓는 행위에는 어떠한 성취감도, 의미도 없다. 이건 원숭이나 할 법한 일이다. 사실 원숭이가 훨씬 잘 할 일인데, 원숭이보다 인간이 더 싸고 간편하기 때문에 우리를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일을 잘 하려면 자신의 원숭이같은 자질을 계발해야 한다.

 

트랙터가 오렌지로 가득찬 빈을 가져가 한 곳에 모아놓은 걸 볼 때면 나는 하나도 뿌듯하지 않고 기가 질렸다. 동시에 이 고생을 하지 않고 마트에서 맛깔나게 익은 오렌지를 사갈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일꾼들은 술자리에서 딸기에 바늘을 숨겨놓는 등의 호주의 농작물 사건 사고가 날 때마다 분명 외국인 노동자가 보복 심리로 저질렀을 거라 이야기하곤 했다. 각자 자기 마음 속에 심증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가 돌았으리라.

 

이런 완벽하게 비생산적인 일에 하루종일 온 힘을 다해 일하다보면 사람은 편협해지고 막일꾼의 분노가 속에 쌓인다. 보수는 형편없고 일은 고되며 심신은 지치기 때문에 생기는 화. 감독관을 향한 분노. 감독관들은 일꾼을 닦달하지 않는데 대신 상품의 품질이나 신경쓸 뿐이다. 수확량을 채우지 않으면 돈을 안 주면 되니까 감독관들은 아쉬울 게 없다. 관리자들은 이미 매일 픽업비와 트랙터 시급으로 수입을 벌어들인다. 수확 없이는 한 푼도 못 받는 일꾼들만 자기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텅빈 빈을 채우는 것이다. 일꾼들의 일은 원숭이도 할 법하기 때문에, 우리 시간은 시급으로 쳐지지 않는다. '노동자'로서 우리가 출근했다는 사실만으로 보장되는 돈이 없다는 것. 한 빈 당 가격과 닭장 같은 집의 집세를 비교했을 때의 터무늬없는 차이. 이런 생각을 하면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가래침이나 뱉고 싶었고, 정말 뱉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떫은 오렌지의 시고 질기고 단 맛.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자본주의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오렌지 나무 그늘 밑에서 최선을 다해 빈둥거려야 해. 오렌지 앞에서 나는 반항적이었고, 언니는 딴청을 부렸다. 중요한 건 우리 둘 다 생각이 많고 게으른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오렌지 농장에서 가장 쓸모 없는 자질이었다. 나는 인간인가 원숭인가... 내 내적 물음이 더 원시적으로 갈수록 수확량은 착실히 형편 없어졌다. 내가 오렌지 농장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오렌지와 인간 역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념에 어떤 성과가 있었을 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짜증이 많던 한인 매니저는 우리가 픽업비도 내지 못하고 버스에 오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집세를 내야 해서 픽업비를 못 내겠다고 말한 날, 매니저는 바로 우리를 다른 일자리로 옮겨줬다. 그가 '이번엔 진짜 열심히 할 거지'라고 물었다. 우리는 '네'라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내가 다시 한번 완전한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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