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여기의 문학이 궁금하다면 [도서]

지금 여기의 문학이 궁금하다면,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글 입력 2020.06.3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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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 문학 독자들이 ‘한국 근대 문학은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 독자들은 그렇다. 한국 근대 문학은 남성 지식인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자기 연민에 빠진 남성 인물을 그리며, 여성은 그저 대상화, 도구화되고 있어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동시대 한국 문학은 여성 작가의 비율도 크게 늘었고, 여성이나 퀴어 등 그동안 발화되지 못했던 소수자의 말을 전면에 드러낸다. 기존의 가부장제를 깨고 타인과의 공감과 연대로, 더 나은 쪽을 향해 가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최근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들을 읽은 후 느낀 개인적인 감상은 여성이 주요 서사를 차지한 것을 넘어서, 이제는 각각 다른 개별 존재로서의 여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지금 문학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한 인물이 아닌, ‘여성’ 혹은 ‘퀴어’라는 집단을 이루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된 각 개인의 서사를 그리며, 그들의 차이와 분열과 연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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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1회를 맞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가 한 해 동안 낸 작품들을 심사하여 문학적 의의가 눈부신 작품을 선보인다. 그런 만큼 이번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도 역시 우리 사회 기저에 깔린 폭력적인 관념을 꼬집는 작품들과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현석 작가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임신 중지가 단순히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의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생생하고 세심하게 그린다.

 

희진 언니는 낙태죄 폐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은 임신 중지를 결코 쉽게 결정하지 않으며,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나'는 "기약할 수 없는 언제인가가 아닌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이 절박한 상황이 아닐 때도 임신 중지를 하나의 선지로, 가볍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닐 때는 임신 중지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들은 임신 중지가 여성에게도 엄청나게 힘들고 슬픈 결정이라며 여전히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한다.

 

'나'의 동생 해수는 임신을 해서 결혼을 준비한다. 해수는 임신을 자신에게 주어진 '복'이라며 출산과 결혼을 '선택'한다. '나'는 해수의 임신을 축하하면서도 임신 중지라는 선택은 어땠을지 생각하고, 해수는 자신이 임신을 선택한 것과 별개로 낙태죄가 폐지된 것을 보고 '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그냥 행복하고 싶었다"는 해수에게 "나도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나'는 미래의 조카에게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만,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 또한 상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이 없는 그곳,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사랑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또한,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동생 해수가 나와 함께 정동길을 걸으며 서로가 꿈꾸었던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때와 다름없이, 우리가 나란히 각자의 두 발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 「다른 세계에서도」 중 (p.202)

 

 

이현석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고 여겼던 이 싸움은 사실,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임신 중지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만 사회가 여성에게 '허용해주는'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도」는 허락된 임신 중지가 아닌, 스스로 온전히 선택하는 임신 중지가 가능한 그런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런 세계에서 여성은 아이가 있는 세계를, 아이가 없는 세계를, 그 밖의 또 다른 세계를 모두 상상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작인 강화길 작가의 「음복」은 결혼 후 시가에서의 첫 제사를 그린다. 그 속에는 가부장제 안에서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네가 아니면 누가 날 이해하겠니'라는 말로 대물림되는 집안의 고통과 슬픔을 모두 감내하는 여성들이 있다. '나' 또한 '나'의 가정에서 그랬고, 처음 온 시가의 제사에서도 그런 미묘한 관계들을 정확하게 파악해낸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줄곧 해맑다. 고모와 어머니, 할머니 간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한평생 함께 지내왔을 텐데 오늘 처음 본 '나'보다 모른다. 그것은 권력이다. '무지'의 권력. 몰라도 되는 권리. 남편의 아버지도 똑같다. 남편이 해맑다면 아버지는 침묵한다. 묵묵하게 모른다.

 

'나'는 '나'의 아이를 상상한다. 상상하면 남편이 아닌 '나'를 닮은 딸이 떠올라 두렵다. 그래서 아이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가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딸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들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무지가 권력이 될 수 있다. 「음복」은 그 역설을 강화길 작가 특유의 서늘한 문체로 전한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모를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세계를 바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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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아주 희미한 빛'이 되어버린 선생님을 좇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나'와 젊은 여자 강사 사이의 연대를 보여주고,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은 정상과 규범, 평균이 중요시되는 '인지 공간'이 아닌,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무수한 별들을 나누어 담는 세상을 희망한다. 그 밖의 다른 소설들 모두 현시대와 그 안의 개인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더 좋은 세계를 상상하고 희망한다. 한국 근대 문학의 폭력성에 지쳤다면, 지금 여기의 문학이 궁금하다면,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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