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옥 『장녀들』 [도서]

어떠한 사랑도, 어떠한 희생도 당연한 것이 아니다.
글 입력 2020.06.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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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질병. 인간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다. 대개는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고통받기 이전에 자신을 키워냈던 부모의 쇠약함과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고령화와 급격한 비혼율의 증가는 자식과 부모 간의 세대 갈등을 비롯해 '돌봄 위기'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한다.


병든 사람은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을 앓는 경우 보통 가족이나 친지가 돌봄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집안의 여자들이었다. 돌봄이 마땅히 해야 할 집안일처럼 여겨지면서 오랜 기간 동안 '장녀들'은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야만 했다.

 

가족이라는 그림자 밑에서 방치되었던 그들을 당신의 삶에서도 분명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돌봄의 영역을 '장녀'라는 지극히 사적인 울타리에만 의존하고 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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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아픈 사람을 간병한다는 것은 고된 일이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 기대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부모는 나이가 들어가며 자식의 성장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의탁한다. 그들이 줬던 무조건적인 사랑의 종착지는 한 명의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병'이라는 둘레를 덧씌워버린다.


『장녀들』은 장녀의 역할로 인해 돌봄의 의무를 강요당하는 세 여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국가, 사회,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삶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간다. '버티거나 도망치거나' 두 갈래에서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국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옥 같은 삶을 버텨낸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미혼 여성 나오미, 게이코, 요리코가 겪는 상황들이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하루는 절벽 앞에 선 것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병에 걸린 가족의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추하다. 하나뿐인 부모라는 이유로 자신의 상황을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는 듯 그들은 딸들에게 무언의 부담감과 죄책감으로 압박한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끝없이 소외되는 세 장녀들은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자신이 늙어서 겪게 될 싸늘한 그림자를 씁쓸하게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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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의 늪,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책의 저자 시노다 세츠코 또한 실제로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20년 이상 돌본 경험이 있다. 초고령 사회에서 미혼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구체적인 감정,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한 개인이 마주하는 무력함을 토해낸다. 「집 지키는 딸」의 나오미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직장을 포기하게 되고 어머니가 병적 증상으로 일으킨 방화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퍼스트레이디」의 게이코는 의사 집안의 장녀로 당뇨병이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골머리를 앓는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자신의 장기 이식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어머니의 뜻밖의 반응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다.  「미션」의 요리코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들로부터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받는다.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좇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고독사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세 여성의 삶은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비혼 여성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를 돌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을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들이 애써서 일궜던 사회적인 성취와 인간관계는 가족이라는 감옥 앞에서 무력하게 의미를 상실한다. 세 명의 장녀들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개인의 인격을 희생해야만 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늙음이라는 과정이 결코 개인적인 담론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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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돌봄 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과 질병 앞에서 두려워하기에 하나뿐인 가족에게 의존하려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초고령 사회에 있어 '돌봄' 문제는 결코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며 이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인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만 이들을 돌봐줄 개인은 그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이제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공공과 국가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육아와 돌봄이 여성의 부담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 어떤 사랑도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사랑에 의한 어떤 희생도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결국엔 환자 개인과 그 고통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림자들을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회피하며 살아왔다. 가족이 더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개인이 보다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금 질문해본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ISBN
978-89-93166-09-5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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