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희망의 비망록

글 입력 2020.06.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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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머릿속의 기억을 추호도 의심 없이 믿으시나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기억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요. 기억은 늘 부정확하고, 때론 미화되고 각색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기록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록은 객관적인 사실에 가닿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의미가 커요.
 
메모가 일상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오피니언을 기고한 적이 있어요. 저는 메모, 즉 기록 광이에요. 저는 오피니언에서 그간 저의 메모 생활을 돌아보고 메모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적었어요. 그 글에서 썼던 내용이 지금 써 내려가는 글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너무나 많았던 저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적기 시작했어요. 상념들을 종이에 내려놓으면 그 생각들이 빠진 자리의 용량만큼 머릿속이 비워지곤 했었거든요. 물론 금세 다른 생각들로 채워지긴 했지만요. 또, 책에서 읽거나 영화에서 본 대사 중 마음에 팍 꽂히는 게 있다면 무작정 적었어요. 옮기는 순간에 그 문장을 더 깊이 느껴볼 수 있었고, 나중에도 여전히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였죠. 저는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말, 몸짓, 영상, 그림, 음악….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표현 수단들 중 저에겐 글이 가장 익숙한 언어였어요. 읽을 때도, 표현해낼 때도 가장 쉬웠죠. 종이와 펜으로 시작되는 글의 문법은 제가 가진 표현 수단 중에서 가장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를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애용하고 있네요.
 
글도 여러 종류가 있죠. 제가 주로 기록한 것들은 저의 과거와 현재였어요. 그날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쓰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썼어요. 보통은 일기와 감상평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노트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기록들은 마치 퍼즐 조각과 같은 존재여서, 한 조각으로 존재할 때보다 다른 조각들과 이어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 책을 읽고 기록해둔 문장이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와 결정에 영향을 미칠 때나, 일기장에 적어둔 어느 날의 경험들이 영화 해석의 근거가 되는 순간이 그런 경우겠죠. 저는 문화예술과 기록이 삶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는 순간들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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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떤 문화예술에 매료되어 힘을 쏟으실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고 종종 그림을 표현 수단으로 삼기도 했어요. 음악이 주는 리듬감에 기분을 내맡기곤 했고, 중학생 무렵부턴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가 제 시야를 조금 더 넓혀주기도 했어요. 우연히 발레 공연을 보고 난 뒤부턴 몸짓이 주는 메시지와 감각에 매료되어 발레 공연을 꾸준히 찾아보기도 했었죠.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해버릇해서 굳어진 습관이 있으신가요? 저에겐 문화예술을 즐기는 일이 관성으로 남아있었어요. 습관은 나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잖아요. 못하게 되면 왠지 불안하기도 하고요. 전 일정 기간 책을 읽지 않으면 왠지 죄책감이 들어요. ‘아, 책 읽어야 하는데….’하며 스스로 반성하곤 하죠. 제게 문화예술이 마음의 책무로 느껴지는 이유는 제가 문화예술을 통해 세상을 읽기 때문이에요.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가며 알 수 있는 것들과는 또 다른 세상의 이면들을 저는 문화예술로 간접적으로나마 접해요. 세상에서 발붙일 공간을 넓혀준다고나 할까요. 사고의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문화예술을 통해 언어를 찾기도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에요. 여성이자 청년이고 예비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진 생각과 경험들에 대해 늘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적절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저는 문화예술을 투영하여 저의 감정과 경험들을 표현하고자 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저에게 삶 그 자체이고,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걸 게을리 한다는 건 제 자신의 삶을 태만히 일관하는 것이기에 늘 경계하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가진 순기능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은 표현 양식에 갇힌 메시지가 아닌 동시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시대의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은 삶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다채로운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보여주곤 해요. 따라서 스스로의 자리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딛고 있는 세상을 더 나은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희망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삶을 긍정하는 사람이고, 부정적인 면보다는 희망적인 면을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낙관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쓴 오피니언엔 희망과 긍정이 담긴 제 생각들이 잘 녹아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아무리 진창이라도 우리의 미래는 희망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과 희망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이끌어낸 결과물이죠. 그래서 저는 늘 세상의 모순을 타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려는 문화예술 자체에 내재한 가능성에 감화되고, 저 역시 세상을 따뜻한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문화예술의 무해한 음모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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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통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소화시켜 글을 써내는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낸다고 앞서 적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글을 쓰는데 많은 고민이 생겼어요. 그건 제가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었어요. 세상을 살아갈수록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서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기만처럼 느껴졌어요. 그럴 때면 무지한 제게, 글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주어진다는 사실이 버겁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가시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며 고민하고, 그럴수록 세상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어요. 그러니까 저에겐 문화예술과 기록의 관계는 영감을 주고 배움을 요하는, 순환적인 연결 속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간의 통찰과 감정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요. 수많은 기록들은 점과 같은 존재들이고 이 점들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어떤 모양들을 만들어내요. 지표로서의 기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주고, 과거와 현재의 기록들은 저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주죠.
 
비망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저는 초등학생 때 어디선가 이 단어를 보고는 이 단어에 순식간에 매료되었어요. 초등학생이 쓰기엔 조금 어려운 단어였기에 멋있기도 했고, 단어를 곱씹어 보면 어딘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것. 또는 그런 책자’라고 합니다.
 
저는 늘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문화예술 속에서 읽어낸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 저의 생각과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찾기 위해 씁니다. 저의 비망록들은 궁극적으로 희망을 향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어요. 현실은 진흙탕이라고 해도 언제나 희망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뻗습니다. 언제나 저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문화예술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이 있고, 저는 그러한 문화예술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의 비망록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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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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