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구석 캠퍼스를 마치며 [사람]

왁자지껄한 웃음이 그립다
글 입력 2020.06.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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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만 보다가 종강했다


 

드디어 기말고사가 끝났다. 중·고등학생 때처럼 따로 종업식을 열지 않는 대학생에겐, 시험의 마무리가 곧 종강의 알림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났을 때의 행복감은 단순히 시험이 끝났다는 쾌감뿐만이 아니라 이번 학기도 잘 마무리됐다는 안도감에서도 비롯된다.

 

그런데, 이번 학기만큼은 쉽사리 종강이 실감 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한 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캠퍼스를 거닐지 못했던 탓이다. 마지막 시험을 마무리한 후 예쁘게 화장을 고치고 친구와 시내에 놀러 나가던 게 나만의 종강 기념 파티였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기지개를 켜고 벌러덩 침대에 누워있는 게 전부다.

 

이런 차이점을 자각하고 있으면 이번 학기가 평소와 다르긴 달랐다는 것이 확실히 실감 난다. 일단 학습 환경부터 극명히 다르지 않았던가. 컴퓨터만 뚫어져라 보다가 한 학기가 끝나버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또한 교수님 목소리를 라디오 삼아 빨래를 개는 상황도, 밥 먹으면서 강의를 듣는 시간도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이색적인 캠퍼스 라이프였다.

 

그래서 나는 우스갯소리로 비대면 강의를 ‘방구석 캠퍼스’라고 부르곤 했다. 이는 ‘캠퍼스’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방구석’의 무력함, 즉 느낌이 대비되는 두 단어가 공존해 있어 낯설고 적응 안 되는 말이었다. 이처럼 방구석 캠퍼스는 그 이름만큼 모두에게 낯설고 적응 안 되던 생활이었다. 하지만 방구석 캠퍼스라고 해서 매 순간이 의미 없는 나날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보내며, 그 나름의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직 방구석 캠퍼스였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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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캠퍼스에서 얻은 것들


 

나는 사실 캠퍼스의 왁자지껄함을 싫어한 사람이었다. 왁자지껄한 에너지에서 활기를 얻기도 했지만, 그 활기를 얻으면서 내가 소모해야 할 에너지도 그만큼 컸다. 그래서 캠퍼스란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는 공간이었다. 나는 사람을 잃는 게 무서워 사람을 얻는 걸 피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함께하는 학교 프로그램이나 조별 과제가 있는 강의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방구석 캠퍼스는, 처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테니, 이번 학기만큼은 골치 아플 일이 없으리라 안도했다. 이에 온라인 개강을 하고 나서 한 달까지는 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든 혼자였기에, 나는 내 감정에서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엇을 하든 혼자였다. 주어진 온라인 강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 일정을 짜보니 비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는 이 빈 시간을 사람으로 채웠던 것 같다. 과제를 하기 위해 조원을 만나고, 학보사 동료 기자와 회의를 하고, 교내 직원과 인터뷰를 하거나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요청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사실, 그 시간의 대부분을 아픔을 인내해야 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들을 못내 아쉽게 여기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아마 무의식 속에 자리 잡혀있는 좋았던 나날도 그 아픈 기억의 편린에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지난 3년간 내 대학 생활은 지독히도 바쁜 하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살인적이었던 하루하루에도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학보사 동료와 실없는 장난을 치고, 고된 인터뷰 끝에 학보사 기자로서 성과를 인정받는 순간도 있었다. 이 같은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힘든 시간만 기억해낸 채 사람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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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잃는 것에 꽤 아파했지만, 그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았던 날을 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결국 아픈 기억만 남게 된 채 사랑받았던 날들은 지나쳐 버렸다. 단순히 ‘두려움’으로 치부하기엔, 내 대학생활은 참 많은 사람과의 행복한 날들로 채워졌음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방구석 캠퍼스에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휑하게 비어있는 캠퍼스를 스스로 꾸역꾸역 채우다 보니, 내 곁을 스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웃고 지낸 시간이야말로 너무나 소중했는데, 왜 그 시간을 그저 힘듦에 가려 지나치려고만 했을까. 모르는 타인과 부딪히는 게 익숙한 대학생활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는 방구석 캠퍼스를 경험한 나의 상황과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언제 끝나나 싶었던 방구석 캠퍼스도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렸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진 캠퍼스의 활기가 조심스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캠퍼스가 다시 왁자지껄해질 날이 올 것이다. 언제 졌냐는 듯 거리 가득 만개했던 벚꽃처럼. 그땐 꼭 나도 그 왁자지껄함을 반갑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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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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