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가 돌보는 사회를 향하여 - 장녀들

"넌 네가 간병이라도 해야 할까 봐 걱정하는 거지."
글 입력 2020.06.26 09: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넌 네가 간병이라도 해야 할까 봐 걱정하는 거지."

 

지금껏 돌봄이 여성에게만 종속된 고역이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징글징글한 가족제도와 독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때에, ‘돌봄절벽’을 마주한 비혼 여성들의 이야기 『장녀들』은 어떻게 읽힐까?



장녀들_입체표지1.jpg

시노다 세츠코, 장녀들 (이음출판사 2020)

 

 

「집 지키는 딸」 속 나오미는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한다. 골다공증과 치매를 사는 어머니의 간병은 오로지 독신인 딸 나오미의 몫이다. 보호사의 도움을 일절 거부하는 어머니가 나오미에게 지운 짐은 21년간 근속한 회사를 그만두게 할 정도로 무겁다.

 

사랑으로 시작한 돌봄은 독박 구조 안에서 고역이 된다.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무리한 요구가 뒤틀린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너무도 억압적인 것을 나오미도 안다. 동시에 당신의 삶을 깊이 이해하기에 어머니를 외면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오미와 어머니 모두 최선을 다하는 돌봄은 절실하지만 바깥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요하고 해맑다.

 

이러한 독박은 두 번째 소설 「퍼스트레이디」에서 더 뚜렷이 보인다. 아들 야스미는 반복된 경고를 무시하고 단 음식을 폭발적으로 섭취하는 어머니를 ‘진단’하고 곧 포기한다. 딸은 어떤가. 게이코는 달콤하고 포근한 것들을 다 먹어 치우다 못해 당신의 마음까지 퍼먹은 어머니에게서 자신을 본다. 차마 돌보지 않을 수 없는 마음, 돌봄은 그렇게 지속된다.

 

독박 돌봄에 놓인 여성들을 바라보는 일은 아픈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묘사된 ‘지옥 같은’ 돌봄 노동을 읽는 일이 돌봄을 탈피하는 것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고 믿는다. 가부장이 오염시킨 돌봄의 얼굴을 파헤치면, 건강하고 젊은 몸에 가렸던 늙고 아픈 몸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장애는 치욕이 아닌 새로운 감각이라는 것을, 돌보고 돌봄 받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아픈 몸을 살아내는 이와 그를 돌보는 사람들은 몸으로 증명한다. 더는 독립적일 수 없기에 의존해야만 생존하는 현실은 절망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임을, 아픈 몸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정으로 여전히 참는 이들이 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해야 한다. 나오미가 어머니를 영영 포기하기 전에, 게이코가 어머니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기 전에, 사랑이 숨을 조이는 폭력으로 변하기 전에. 그들을 응시하고 손을 뻗어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발 빠르게 다가가고 있지만 어떤 대책도, 인식도 없는 한국에서 이 책은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딸들의
'하이퍼리얼리즘' 간병기
 
초고령 사회의 사각지대에는 노인이 된 부모를 홀로 돌보는 딸들이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비혼이라는 이유로 홀로 짊어지게 된 돌봄노동은 이들을 보이지 않는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장녀들』은 이 여성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낸 소설로, 사랑에서 시작되었을 돌봄 이면에 자리한 서늘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실제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20년간 간병한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세 편의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딸, 특히 장녀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죽음과 나이듦을 어떻게 바라보고 맞이할 것인가. 이 여성들은 곧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가 맞닥뜨릴, 또는 마주하고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물론 질문에 해답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선택을 한다. 『장녀들』은 따뜻한 가족소설이 아니고, 소설 속 여성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에 더 이상 효녀 이야기는 유효하지 않다. 과연 이 장녀들은 각자의 지옥 속에서 어떤 길을 찾아낼까.
 
 
*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ISBN
978-89-93166-09-5





저역자 소개


시노다 세츠코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90년 『비단의 변용』으로 제3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하였다. 호러, 미스테리, SF, 추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구분을 넘나드는 치밀하면서도 대담한 중장편소설로 인기를 얻고 있다. 1997년에 『고사인탄』으로 제1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여자들의 지하드』로 제117회 나오키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가상 의례』로 제22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2011년에는 『스타바트 마테르』로 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 2015년에는 『인도 크리스탈』로 중앙공론문예상, 2019년에는 『거울의 뒷면』으로 요시카와 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실제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20년 이상 돌본 경험과 충실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현대 의료의 명암, 일본 사회의 가부장제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 고령사회와 개호를 주요한 소재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안지나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일본 근대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문정책연구사업의 한일 노년문학에 관한 프로젝트 참가를 계기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고령사회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 질병과 죽음, 젠더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해당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帝国の文学とイデオロギー満洲移民の国策文学』, 『기억과 재현』(공저), 『문화산업시대의 스토리텔링—OSMU를 중심으로』 (공저), 『만주이민의 국책문학과 이데올로기』. 논문으로 「초고령사회와 노인문학—야스다 이오의 『종활 패션쇼』(2012)를 중심으로—」(공저), 「'개호(介護)문학'의 계보와 죽음—사에 슈이치(佐江衆一)의 『황락(黄落)』(1995)을 중심으로」, 「1970년대 한일노년문학의 '치매' 표상과 젠더」 등이 있다.
 
 


[곽성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1410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