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의 기록은 분노로 가득하다

사무치는 감정 속에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은 반듯한 모양새로 다시 저장된다.
글 입력 2020.06.2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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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은 분노로 가득하다. 정확히는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인 일기장이 분노로 가득하다. 이 분노는 복합적이다. 질투이기도 하고 울분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감정이다.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이 무엇들을 뱉어낼 곳이 마땅히 없어 나는 일기장에 쏟아낸다. 일기장에서 행복은 간결해지고 분노는 자세해진다. 흔들리는 감정은 가지런한 손글씨로,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무뚝뚝한 타이핑으로 옮겨진다. 머리에서 굴러다니다 문자로 옮겨진 감정은 고스란히 저장된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날들은 문자로 남아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식으로 내 감정을 마주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싶은 나를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글자가 되어 공백을 채운 감정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의 해결법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버릇되면서 동시에 나는 많은 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으로 왔던 특이한 사람의 특징을 기록하고, 지난밤 꾸었던 허무맹랑한 꿈을 기록하고,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감상을 기록했다. 책이나 잡지 속에서 좋았던 구절을 아무 맥락 없이 일기장 속 분노 사이에 배치하기도 했다. 일기장은 더 이상 일기장이 아닐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언제부턴가 내 감정의 문장 속에 스며들어 나타났다.

 

사랑과 열정과 분노로 이루어진 나만의 저장소는 커다래질수록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나는 문화예술을 정말 좋아해서, 더 잘 알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그럴 때 일기장의 소소한 기록들, 나의 저장소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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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과 스크랩 노트

 

 

작품 앞에 서면, 어딘가 멍든 듯이 아리거나 달아오르는 때가 있다. 작품을 따라 하고 닮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구겨진다. 그 순간이 좋아서 나는 자꾸 작품 앞에 서려 한다. 그리고 정지한 채로 마주하는 내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 나는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나의 불안과 질투와 감동을 남에게 표현하고 기록하려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럴 때면 전혀 상관없는 기록들이 그 표현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도와준다. 언어화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의 갈망을 적셔준다.

 

작품과 감정을 마주하면 혼란스럽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은 두서없이 적어보곤 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도 좋고 어떤 날의 내가 겪었던 일들도 좋다. 무엇이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문장과 문장의 틈이 메워진다. 떨어져 나가는 문장은 구석에 적혀 있다가 다른 때에 불현듯이 나타난다. 그런 기록들이 모여 다음의 기록과 감상을 도와주는 것이다. 머리 안과 혀 밑에서 추상적으로 존재하던 것들은 문자로 겹겹이 쌓여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의 문장도 어느 날의 내가 기록했던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마주했던 그 작품 역시 내가 하던 기록처럼, 어떤 순간을 담고 있다. 작가의 메시지는 작품을 한 번 걸쳐서 나에게 온다. 다른 이의 공들인 기록과 아카이브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물하고 나만의 책자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여기까지 닿으면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일은 곧 나를 애호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히 넓어질 수 있는 지식과 사랑이 절대 마르지 않았으면 해서, 가슴이 아리고 손이 뜨거워지는 것을 계속 느낄 수 있었으면 해서 나는 자꾸 작품 앞에 선다.

 

*

 

여러 문화예술을 계속해서 만나고 기록과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이 노력이 나만의 사랑이라고 느껴질 때, 내가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사랑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내 일기장은 분노와 불안으로 채워질 테다. 자세해지는 분노 속에서 노력이 부질없이 느껴질 테다. 하지만 그 감정은 한순간이고 나는 여전히 작품의 기억에 사무쳐 밤잠을 설칠 것이다.

 

흔들리는 감정들. 사랑과 불안 속에서 터질 듯이 응축된 분노들. 화도 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순간들은 내 손을 거쳐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문자로, 언어로, 예술로 나타난다. 기록은 나의 감정을 정리해 반듯한 모양새로 저장해준다. 말끔하지만 어수선하게 모인 기록들은 나를 채우며 내가 열중하는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나의 분노는 정제되어 다른 이에게 가 닿는다. 바로 이 글처럼.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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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로 반짝이시다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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