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배 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비극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연극 '고기잡이 배' [공연]

마지막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글 입력 2020.06.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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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 안의 세계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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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남태평양 바다 위를 항해하던 조그맣고 볼품없는 배 한 척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고일 데로 고여버린 조선족 선원들과 한국 선원 들 간의 위계 질서는 배 안에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촉발점이 되었던 것은 배 안의 간부 회의를 통해 결정된 조선족 선원들에 대한 처분 결정이었다. 그것은 한국 선원들의 입지를 더욱 다지기 위한 기반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족 선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자신들에게 충분히 부당한 처우를 감행하는 한국 선원들과 간부들에게 울분을 느낀 조선족 선원들의 은밀한 계획을 통해 선내 반발이 시작되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순식간에 한국선원들을 결박하고 위협하였으며 조종사 항해사와 같은 전문 지식을 가진 이들을 협박해 배를 해적에게 내어주려는 계략을 펼친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 했던 것은 전문 지식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광활한 바다의 저항이었다. 얼마 안가 암초에 부딫히거나 기름이 유출될 것이라는 조종사의 말에 조선족 선원들의 임시 우두머리는 조급한 마음에 조종사를 사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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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극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서로 대치하며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그리하여 결국은 선내 반발을 일으키고 끔찍한 비극으로 그들을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선내에 존재해왔고,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위계 질서였다. 이 작은 배 안에서 조차 피라미드는 존재했다.

 

너무도 잔인하고 비합리 적이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 폐지되었던 신분제 개념을 현대 사회에서 옹호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연중에 신분제도가 폐지 되었다고 해서 그 위계적인 질서가 이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분제가 사라진 자리에는 또다른 가치를 중심으로 한 촘촘한 질서가 새로이 정립되었다.

 

이 위계질서는 우리가 작은 배 안에서 보았던 비극처럼, 우리 사회를 조금씩 갉아먹고 잠식시키고 있다. 어쩌면 허상적일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둘러싼 채 치열하게 나뉘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다가도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이토록 싸우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때가 많다. 과거의 실수와 비합리를 보고도 또다른 위계질서를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는 이 사회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외부와 차단된 채 바다위를 떠다니는 배 한척에서 조차 피라미드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무대는 그 많은 것을 어떻게 담아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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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인터뷰365 정중헌

 

 

연극 ‘고기잡이 배’의 무대는 매우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갑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대 가장 앞쪽의 공간 뒤에 여러 개의 선실이 전부인 무대에서 수 많은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칸마다 득실 득실하게 들어앉아 있는 그들은 배 안의 부속품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토록 심플하고 간결한 무대에서 놀랍게도 배 안의 작은 세계가 전부 보인다.

 

이 연극은 객석의 불이 꺼지면 무대 측면에 불이 들어오고, 나레이션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선실위의 선원들은 그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이 멈춘 듯 존재하고, 나레이션은 차분히 석상 같은 그들 위로 덮힌다. 그 상황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극에 동화되어 그들의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 아닌,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는 ‘연극’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은 나레이션의 마지막 부분처럼, 정말 그들을 나와 다른 타인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면서 나또한 어쩔 수 없는 “이들과 같은” 인간임을 지적한다.


 

“당신의 과거의 시간과 집념에 대한 말 없는, 말할 수 없는, 증언처럼. 이제 아무도 관심이 없는 잊혀진 유물처럼. 바다 노을이 지는 초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각진 실루엣으로 외롭게 버려져 있는 배 한 척을 상상했다면 다시 눈을 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 그 작은 배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인간들이 있을까? 좁은 공간에 한 무리의 인간들을 채워 넣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 번 두고 보자는 심사면 당신은 이미 이들과 같은 인간이다.”

 

연극 <고기잡이 배> 나레이션 中

 

 

극 중에서는 은연중에 선원들의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게 하는 요소가 많다. 예를 들면 표준어와는 확연히 다른 조선족 억양을 사용하는 조선족 선원들이라던지, 둘 사이의 대화 사이에 또다른 둘의 말을 섞어 둘의 대화가 이어지지 못하게 한다던지 등의 장치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쯤에는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들과 알아듣지 못할 대사들로 나는 반쯤 포기한체 극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이로 인해 오히려 많은 것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대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지 않고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애쓰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그리고나서야 알게되는 것이다. 결국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워도, 그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으며 같은 희생자들이라는 것을.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리하여 결국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연극이 결말을 제시하는 방법은 그래서 더욱 맘에 들었다. 조선족 선원들의 우두머리가 조종사를 향해 총을 쏘고 난후, 그들은 다시금 시간이 멈춘 듯이 멈춰 선다. 그런 그들의 사이 사이를 다니며 선원 중 한명이 꽃을 쥐어 주면,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 완벽한 열린 결말 속에서 우리는 궁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배는 결국 침몰을 했던 걸까? 조선족 선원들의 반란을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극이 제시해주는 것은 거기까지이다. 당연하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안의 작은 세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거기까지가 그들의 몫이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마주한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어떻게 이 연극의 결말을 맺을 지는 관객들에게,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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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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