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기본'에 놀러 오세요 - 주재훈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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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신사동 어딘가에선 때때로 책과 함께 낯선 사람들이 모인다. 나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책을 읽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곳. 삶에 가까이 맞닿아 있을수록 좋은 만남이 이뤄지는 것처럼 이 모임에선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독서모임 '기본'을 운영하는 주재훈 감독의 생각도 그렇다. 책을 매개로 타인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 속에서 삶의 기본이 켜켜이 채워진다.
독서모임 '기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생각의 기초를 다지는 공간, 기본"입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임이죠. 기존에 소셜 살롱이나 사교 모임에서는 책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기본'은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최대한 덜어내고 책과 사람에 가장 충실할 수 있도록 했어요. 곁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차라리 중심을 잡는 데 집중하자고 생각한 거죠.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얘기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기본에 가장 충실한 모임입니다.
'기본'의 탄생기가 궁금해요.
스무 살 때 첫 독서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때 적응을 잘 못했어요. 계속 말하는 사람만 얘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참여하고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개인적으로 '뇌사(뇌에 살찐 사람들)'라는 독서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기본' 이전에 이태원에서 3년 정도 운영을 했죠. 그때 함께 했던 모임원분들이 이걸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학교 과제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기존 모임을 리뉴얼하고 새롭게 브랜딩 해보자 해서 만든 게 지금의 '기본'이에요.
'기본' 인스타그램 이미지
'기본'만의 브랜딩이 확실한 것 같아요. 로고 작업이랑 인스타그램 이미지는 어떻게 기획하셨나요?
'기본'의 메인 컬러가 보라색인데 보라가 영적인 색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본에 충실함과 동시에 내면을 다지자는 의미에서 선택을 했던 거고 이런 요소가 모임의 연결고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로고도 꽤 디테일하게 작업했죠. 처음엔 디자인과 후배와 함께 작업했던 거예요.
이후에 '기본'에 대한 고유한 가치를 세우고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어요.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있죠(웃음). 돈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도 했고요. 인스타그램도 기존에 책 리뷰어들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차별점을 둘까 고민했어요. 일단 호기심을 일으키고 조금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얼굴을 가리고 책을 앞에 둔 이미지를 시도해봤는데 전략이 통한 것 같아요.
모임 공간도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관련된 스토리가 있나요?
원래는 카페를 대여하려고 했는데 무리해서 구한 거예요. 그때만 해도 작은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사실 모임 장소가 번화가가 아니라 걱정이 많았거든요. 주변에서도 잘 안될 거라는 얘기가 많기도 했고. 게다가 기존에 트레바리라든지 유명한 독서모임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많이 들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어요. 저희의 브랜딩이라든지 모임장으로서 저만의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였죠.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모임이라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모임장으로서 자신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모임장 이전에 영화 쪽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인사이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랜 기간 동안 모임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서 그런지 사람들 대하는 것도 익숙하고요.
그리고 평소에 사람을 통해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이면을 보려고 한다거나 저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거죠.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렇게 말을 했을까? 어떤 아픔이 있을까? 왜 저런 옷을 입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새절역 근처에 위치한 모임 공간.
빨간색 소파와 의자가 공간의 시그니처다.
<이것저것>과 <염탐>. 두 가지 테마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으로 이뤄지나요?
먼저 '이것저것'은 누구나 들어봤지만 읽어보지 못한 다양한 종류의 책을 골고루 읽는 모임이에요. 인문학 서적이나 베스트셀러 소설 위주로 이뤄지는데 그래서인지 모집할 때도 인기가 더 많아요.
'염탐'같은 경우는 매 시즌마다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서 대표작을 순서대로 읽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염탐'에 더 애정이 많이 가네요.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거든요.
우리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도 그렇잖아요. 남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를 알 수 있듯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반추할 수 있는 거죠.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낯선 경험일 거예요. 그래서 제가 더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모임인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모임과 달리 '기본'은 모임원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토론은 함께 나누는 다섯 가지 질문으로 진행되는데 이것도 '기본'만의 차별점이죠. 모든 책에 다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면 책을 단순히 봤다는 걸 넘어서 정말 읽어냈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독일의 유명한 교수인 모티머 J. 아들러가 쓴 <독서의 기술>을 참고해서 직접 구성한 질문이에요. 또 저희가 다른 모임에 비해 소수 정예라 한 분 한 분에 대한 진정성이 잘 통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말하기 힘든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기본'이 더 기대되는데요, '기본'의 향후 계획을 들려주세요.
나중의 일이지만 이 모임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공간에서 강연도 하고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책을 읽거나 그 외에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는 곳이요. 책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된 모임도 하고 싶고요.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빨간 책방>같은 느낌이랄까요.
합정동에서 팟캐스트 공개 공연을 가끔 하는데 그 안에 카페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게 해놨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해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서는 모임원들이 '기본'을 떠올렸을 때 그 시간을 대표하는 추억처럼 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가 좋았지..'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마지막으로 모임장이 아닌 영화감독으로서의 재훈 님도 궁금해요. 앞으로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재미와 예술성을 겸비한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웃음). 예를 들어서 봉준호 감독님은 그 자체가 장르로 여겨지잖아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님인데 지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너무 거대해져서 현실적으로 닿을 수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존경의 대상이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약간의 질투라고 해야 하나요? 존경에서 나오는 질투죠.
개인적으로는 '항상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태도로 살고 싶어요. 아주 가끔 내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웃음). 사실 겸손한 스타일이긴 하지만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일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일로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거죠. 일 외에는 결혼해서 아기 낳고.. 소소한 삶을 살고 싶네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삶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지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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