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 부제의 의미

글 입력 2020.06.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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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드나잇>의 원작은 '옐친'이라는 아제르바이잔 작가의 이다. 이를 토대로 영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었고 한국에서 2017년에 '미드나잇'으로 초연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미드나잇'의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창작하여 <미드나잇 : 앤트러스>(초연 버전),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새로운 형식)으로 공연했다.

 

<미드나잇>은 꽤 분명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보고 나온 사람에 따라 구체적인 의미가 다르게 언급된다. 선악의 문제 같기도 하고, 독재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의견이 오가는 만큼 명확한 주제를 꼽기가 어려워 난해한 공연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미드나잇>을 독해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한 가지 방식을 제안해보려 한다.

 

*필자가 ‘앤트러스’를 관람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작품을 꿰뚫는 주제의식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1. 작품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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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1937년 12월 31일, 소비에트의 고위직 부부의 집을 배경으로 한다. 스탈린 정권 하의 피의 숙청 시기를 살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작중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북 소개에 맨과 우먼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맨과 우먼이 1937년을 보내고 1938년을 맞이하려는 12월 31일 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시간이 멈춘다.

 

멈춘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판타지다. 초월적인 존재인 '비지터'는 НКВД(엔카베데)인 양 부부의 집을 찾아와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НКВД인 척 맨과 우먼의 비밀을 하나씩 언급하면서 두 사람이 숨겨온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이들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모를 만한 사실을 얘기하고 맨과 우먼은 비지터가 악마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비밀 폭로는 계속되고 이들은 각자의 주변 사람을 밀고하여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2. 힌트는 어디에? 부제에


 

<미드나잇 : 앤트러스>와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찾아본 바에 따르면 ‘앤트러스’에서는 사슴뿔이 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나지만, ‘액터뮤지션’에서는 ‘스탈린’의 초상화가 직접 등장한다는 점, 전반적으로 ‘액터뮤지션’의 연극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부제가 각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공통 제목인 ‘미드나잇’은 12시에 찾아오는 ‘비지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사슴뿔’이 중심이냐 ‘액터뮤지션’이 중심이냐 하는 차이가 있다.

 

배역상 액터뮤지션이라는 존재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액터뮤지션을 추정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바로 ‘플레이어’들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악기 소리는 무대의 현장감을 더해주는데, 이 부분이 조명, 음향과 어우러져서 공연이 굉장히 과잉된 느낌을 연출한다. 다양한 색상을 이용한 현란한 조명을 통해 채도와 대비를 모두 상향시킨 화면 같은 이미지가 맨과 우먼의 과한 충성, 과한 자연스러움을 부각시킨다. 결국 충성을 과잉 증명함으로써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기묘하게 그려지는데 기여하는 무대 장치로 플레이어들이 이용된다.

 

즉, 작중 플레이어는 앙상블이자, 밴드이자, 무대 장치다. 과거 회상에서 배역을 맡기도 하고,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효과음을 만들기도 하고, 몸짓과 표정으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필요한 경우 무대 장치처럼 기능한다.

 

이들은 특히 '비지터'와의 상호작용이 돋보인다. 비지터의 하수인처럼 움직이고 비지터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조연처럼 보이는 플레이어가 작품의 중심인 액터뮤지션을 뜻한다면 이들이 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 조금씩 더 살펴보겠다.

 

 

  

3. 맨 – 우먼 - 비지터,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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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터와 플레이어는 맨, 우먼과 무대 위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행동적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실제 무대는 중앙에 단차가 있는 방안과 이를 둘러 싼 바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에는 주로 플레이어들이 위치하며, 방안을 구분 짓는 단의 앞쪽으로는 플레이어와 비지터만 오간다. 또한 이 작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은 비지터와 플레이어다. 비지터와 플레이어은 맨, 우먼과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비지터는 인물을 갖고 놀며play 무대의 벽을 무시하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인물로 이 연극play의 지배자다. 그런 비지터의 수족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player는 비지터가 펼치는 무대의 구성 성분이자 참가자다. 여기서 연극은 공연 자체라고도 할 수 있고, 바른 시민을 표방하는 맨과 우먼의 삶이기도 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먼은 마지막에 비지터와 무대 앞으로 나오고 멍하게 악기를 연주한다. 즉 작중 존재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우먼뿐이다. 이제 우먼이 왜 플레이어화(化)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주제가 조금 분명해질 것 같다.

   

 

 

4. 왜 우먼이 플레이어가 되었을까?


 

비지터는 부부가 서로를 고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맨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아내를 고발하는 일을 포기하는 반면 우먼은 맨을 이미 고발한 모양새다. 그러고나서 우먼은 비지터와 함께 무대 앞쪽으로 나온다. 이는 우먼이 끝내 플레이어와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우먼이 악기를 들고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은 결국 우먼 또한 무대play의 일부,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준다. 맨은 플레이어가 되지 않았는데, 우먼은 플레이어가 되었다. 앞선 고발 사건을 보면 플레이어가 되는 조건은 인간성이나 그러한 조건과 관련되어 있을 듯싶다.

 

일단은 그 이유를 유전적 기질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잔인한 고문과 처벌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었으니 폭력성을 타고났을 수도 있다. ‘심약한 인물’이라는 설정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맨에 비해 우먼은 비밀이 더 많다. 극 중 상황을 보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맨한테 비밀로 한 것 같고 남편을 고발한 것도 숨겼다.비밀이 더 큰 우먼이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밀이 작은 '맨'은 사람으로서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지닌 악, 혼란, 음모, 꼼수 이런 것들이 의인화한 듯한 비지터의 수하가 되어 잘못된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은 개인의 타락, 인간성 상실 등에 근거한다는 걸 의미하는 셈이다.

 

 

 

5. 정리


 

처음 제시한 의문 '액터 뮤지션'이 부제인 이유는 작중 인물이 무대 구성 성분인 액터 뮤지션으로 환원된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택하는 맨이 무대에서 사라지므로 공연의 끝에는 개성과 인간성을 상실하고 무대의 일부로 변신하는 존재(비지터, 플레이어, 우먼)만 남아 있다.

 

플레이어는 보통 뮤키컬의 앙상블과 다르다. 기능적으로 무대를 채우고 극을 진행하는 힘이며 구성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이다. 게다가 주요 인물인 우먼이 ‘플레이어’가 되면서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액터뮤지션’의 존재는 다시한번 주목받는다. 이어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주인공도, 그 누구라도 뒤틀린 질서에 귀속될 수 있다고.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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