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도서]

과거에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방법
글 입력 2020.06.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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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영화를 읽다가 어린 시절의 나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뇌의 깊은 곳 어디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한번 재생되기 시작한 기억은 엄청난 슬픔, 엄청난 기쁨, 설렘, 즐거움 따위의 감정들까지 생생하게 데려온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대체로 얇고 가벼운 재질이라서 떠올릴 때도 입가에 미소가 은근하게 지어지곤 한다. 슬펐던 기억은 좀 다르다. 다양한 이유들로 섭섭하고 슬프고 화가 났던 과거의 나를 발견하면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다가가 아이구, 힘들었겠다 하고 등을 쓸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최근 내가 과거의 나를 찾아갔던 일은, '그들의 등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라는 그래픽 노블을 읽고 난 뒤였다. 책의 겉표지에 위치한 제목만 읽으면 왠지 내용이 참 따뜻할 것이라 예상된다. 주인공이 아끼는 이는 엘라스틴 같은 향 좋은 헤어 제품을 쓰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행복을 노래하는 책 같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더 내려 표지 일러스트를 가만히 바라보면 방금 했던 생각을 거두게 된다. 그림 속 아이는 어른의 품에 꼭 안긴 채로 떨어지기 싫은 듯 두 다리를 있는 힘껏 포갠 모양새다. 아이의 표정에서 어두움을 찾아낼 때 쯤이면 이 책이 머금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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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주인공은 제니다. 그녀는 어렵게 자신과 맞는 상대를 찾아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살고 있지만, 안정적인 삶은 그녀에게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고, 받았을 때에도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는 어딘가 고장나보인다. 이런 제니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제니를 살펴봐야 한다.

 

어렸을 적 그녀는 무심하고 차가운 부모 속에서 자랐다. 그들이 얼마나 냉담하였으면, 제니가 고작 5살이었을 때 그녀는 '부모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돼'라는 무언의 결심을 하게 되었고 아이가 스스로 해내기 버거운 일까지 하려 하였다. 부모에게서 전혀 온기를 느끼지 못한 제니가 어떻게든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한밤중에 부모의 침대로 파고 들어가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엄마아빠가 자고 있을 때가 유일하게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그때 부모의 등에서 나는 좋은 향기를 맡은 제니는, 처음 맡아본 따스한 향을 잊지 못한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어른으로 크게 된다. 제니도 그러하였으며, 심리 상담을 받으며 결핍의 원인을 찾게 된다. 제니의 결핍은 과거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방치'에서 비롯되었다. 무관심, 불안, 결핍된 욕망으로 쌓인 불순물들이 어른이 된 제니를 계속해서 괴롭히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인과관계를 깨닫게 된 제니는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만나 위로한다.

 

제니를 보면서 나는 어렸을 때의 나를 떠올렸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냉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불안의 정도가 높았다. 부모님과 같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엄마는 종종 나를 서점에 데리고 간 뒤, '엄마가 장 볼 동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 나는 항상 엄마가 나를 잊고 집에 갈 것 같은 불안을 느꼈었다. 엄마가 안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고, 어떨 때는 이미 가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러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 문제와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문제들에 휩싸였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이 사람이 나를 떠나가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작 상대방은 나에게 지속적인 표현을 해주는 것에도 불구하고 형체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나는 늘 불안했다.

 

제니는 심리 상담을 받았지만, 나는 인터넷에 나온 여러 심리 관련 매체물을 접하다가 '애착유형'을 알게 되면서 치유를 받았다. 나는 불안형 애착 유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애착유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이가 어렸을 적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양육자와 아이 간의 애착 정도' 의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애착유형은 안정형과 불안형 그리고 회피형으로 나뉜다. 안정형의 아이는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낯선 상황에 엄마와 잠시 떨어지게 되어도 불안을 느끼지 않고, '엄마가 곧 돌아오겠지'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불안형의 경우에는 낯선 상황에서 양육자가 나를 떠났을 때 매우 큰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갖는 타입이다. 마지막 회피형의 경우는 양육자가 혼란스러운 태도로 아이를 대했을 때 (기분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 등) 아이가 양육자를 믿어도 될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나의 마음을 항상 괴롭히던 불안은, 애착이 형성되던 어린 시기부터 계속 싸워왔던 내 마음 속의 빌런이었다. '내가 불안하던 건 불안한 애착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불안해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신기하게도 자책하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내면의 아이'를 만나서, 아파하던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고 왔기 때문이다. 제니와 나처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는 사실 아주 어렸을 때 생채기가 생긴 후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따라서 계속 아파하기 보다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 뒤 많이 아팠겠구나하고 가만히 토닥여주는 것은 어떨까. 아픈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까.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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