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 미워히지마, 날 사랑하지마 [음악]

마른 낙엽같은 그의 노래, 김예림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글 입력 2020.06.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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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개인 일기장에 적은 내용을 일부 옮겨 적습니다.

 

 


 

 

피부가 뒤집어진건 지난 4월이었다. 얼굴 외곽에 굵은 피지 덩어리가 한두 개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뺨과 목 언저리를 뒤덮었다.

 

형체 없는 그 더러운 게 다닥다닥 영글었을 때, 정말 탈색을 해야지 한 건 그쯤인 것 같다. 눈치챘겠지만 그렇게 집착한 이유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죽기 전에 이것만 해보고 죽어야지’. 어찌 보면 발악에 더 가깝겠다. 나에겐 감정을 표출하는 가장 파격적인 수단이었으니. 그렇게 난 백금발을 시작으로 두 달간 거진 네 번 정도 머리색을 바꿨다. 물론 고작 탈색 하나에 이런 사연이 있는지 남들은 알 리 없었다.

 

파란색으로 뒤덮은 어느 날은 신이 나 친구에게 전화로 일렀는데, 너 조울증이니- 하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조곤히 날 경직시켜버렸다. 유난히 파랑이 제일 심했다. 한 명도 진심으로 멋있다고 해준 사람이 없었다. 나더러 약쟁이 같다고 했다. 내가 뭘 해도 언짢은 사람이었지, 역시 죽어버리겠다 다짐하며 그렇게 처음 올린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30분 만에 내렸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거대한 세상에 분노해

나는 나를 지켜야 했어

그렇게 나를 지켜내야 했어

 

 

이 음악을 들은 것 역시 그쯤이다. 한창 절망에 빠져있던 그 겨울과 봄 사이. 난 3분 15초부터의 구간을 반복해서 듣는 걸 좋아한다. 사랑하지 말라며 읊조리는 목소리와 기타와 드럼소리가 그렇게나 황홀했다. 마치 바다에 뛰어드는 것만 같았고 정말 그렇게 빠져 죽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마 바닷물이 온 몸으로 들어와도 나른할거야, 한참 동안 그 가사를 곱씹었다. 날 미워하지 마. 날 사랑하지 마.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어쩔 땐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나를 지켜야만 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묵혀둔 노트에서 우울증 당시 적은 일기를 들춰본다. 지금 보면 거만하게도 저렇게까지 생각했네 싶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애쓴 흔적도 보이고 마음의 벽이 참 두꺼운 시기였음이 느껴져 동정이 간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가 한번쯤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꼭 마음의 여유를 넘어서서, 나를 재단하는 여러것들이 나를 가시처럼 찌르기만 할 때. 그럴 때 이 음악이 떠오른다면 좋겠다.


진심은 내가 진심을 받아줄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오롯이 전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단순히 발매된 음악을 듣는 입장을 넘어 아티스트와 쌍방향적 소통의 행위라고 믿는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실체가 있는 그 무엇에게도 희망을 얻지 못했다면 이런 노래들이 조금이라도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란다.

 

누가 되었건 나를 포함해서.

 

 

 

 

[송민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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