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구성물로서의 성과 사랑

글 입력 2020.06.2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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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얼빠에 금사빠이다. 내 취향과 완전히 부합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안 에서 사랑이 피어 오르곤 한다. 물론 안 그런 사람이 있겠냐만은, 나는 외적인 요소가 내 취향이 아닌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 만나기가 하늘에 별을 따는것과 맞먹을 확률로 어렵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과 엄마는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얼굴에 집착하냐 묻는다. 그리고 일명 ‘더치페이스’가 되지 않는 연애를 하 는 친구들 모두 내 얼빠 기질을 흉보며 진정한 사랑은 사람의 내면을 봐야 하는 것이라 훈수두곤 한다. 진정한 사랑이라,, 진정한 사랑은 정말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100일, 200일조차 채우지 못하고 금방 헤어져버리면서 금세 다른 사람을 찾는 연애에 익숙해져 버린 친구들이 정작 내 얼빠 기질에 훈수를 두다는 것은 너무 모순적이고 모욕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죽고 못살 것 같은 낭만적 사랑으로 탈바꿈시키지만 그 사랑의 본질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심심함, 외로움 등을 애인이라는 존재를 통해 충족시키는 것일 뿐이다. 애인을 도구화 시키는 것과 뭐가 다를까? 솔직히 말해 요즘 뜨는 핫플레이스에서 하는 데이트들은 사진찍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내가 부산여행을 갔을 때 에도 내 옆자리에 있던 커플은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 대화하는 대신 사진만 엄청나게 찍고 사라졌다. 그들은 스스로 꾸며내는 낭만적 사랑에 도취되어 자신이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외적인 요소들 보다는 내적인 요소들의 진정한 결합인것처럼 꾸며내지만 연락을 몇 시간 받지 않았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나 친구들의 만남을 일일이 보고하고 보고받는 것, sns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커플인 것처럼 사진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사랑을 전시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에너지를 쏟는다.

 

이런 비효율적인 연애 행위는 유성애에 미친 대한민국에선 빠질 수 없는 행위라서 연애를 하지 못하면 패배자 취급을 받곤 한다. 대한민국의 드라마에선 수술하다가 연애하고 보고서 쓰다가 연애하고 상사랑 싸우다가 연애하고 학교 다니다가 연애하고 그냥 연애한다. 그런데 이런 유성애가 한가지 획일적인 모습만 고집하는 것도 참 웃기다. 흔히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주변생활에서 접 하는 사랑은 단일적이고 획일적인 사랑들 뿐이다. 더치페이스 안돼는 여남의 연애, 남자의 나이가 월등히 많더라도 꼭 젊고 예쁜 여자와 하는 연애, 여자가 외적인 요소보다는 내면의 무언가에 반 해 시작되는 연애 등 수많은 유성애의 레파토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단조롭다.

 

이 정도면 뭐 거의 연애강요사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면에 굉장히 회의적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 를 무언가 부족해서 연애를 못하는 애, 라며 낙인을 찍고 그 좋은 나이에 왜 연애를 안해?라며 암묵적으로 연애를 강요했다. 이는 고등학교때는 연애의 ‘ᄋ’도 보지 말라던 부모님도 해당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연애강요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연애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번거로웠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오늘 데이트에 무엇을 입을 것인지, 데이트를 하지 않는 날 외출하면 누구를 만날 것인지, 만나서 무엇을 할 계획인지, 잠은 몇 시에 잘 예정인지, 내가 애인을 사귀는 것인지 인공지능알람을 사귀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나에게 일거수일투족 다 보고하고 보고받길 원했다. 내 친구들은 이게 보편적인 연애라고 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사귀는 사이라면 보편적으로 이정도의 연락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행위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상대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라고, 진짜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사랑에는 진짜 가짜도 있나 보다. 내가 그 친구를 별로 안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사귈 정도의 호감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이 말하는 보편적인 연애의 모습이나 사랑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평범한 연애를 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1이었다던 그 친구는 내 사랑의 방식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고 헤어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는데 사랑에 대한 모순적인 무게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아이러니였다. 더 이상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연애를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지만, 아직도 가끔씩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물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줄 꽉 잡으면서, 내가 지금 이 사회의 문화적인 사랑에 눈속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더 이상 성애적인 무언가를 강요 받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쯤 애인을 만드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솔직하게 대답해보자. 과연 이 사랑만능사회에서 로봇으로 살아가기 두려워 애써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적 있는 사람, 정녕 한명도 없을까?

 

 

[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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