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중력을 존중하는 방법론 : 내게 무해한 사람 [도서]

글 입력 2020.06.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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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외로운 감정이 드는 날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런 날에 나는 최은영의 소설집을 자주 꺼내어본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관계에 서로가 푹 빠져있던 시절이 있다가도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서서히 멀어진다. 이 애틋한 과거 시절을 돌아보는 인물들을 보면, 나의 지나간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예민한 감각으로 관계를 그리는 최은영 글의 힘이다. 그의 소설집 속에 등장하는 세 가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 책을 읽어보았다.

 

 

 

1. 어른들의 사회를 발가벗기는 아이의 목소리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 「601,602」의 주영과 효진, 「모래로 지은 집」에서 현우와 은아와 선미, 「손길」의 혜인이 말하는 어른들의 사회는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발가벗겨진다.

 

 

“어른들은 사람을 헤쳐서는 안 된다고 했고, 아무것도 훔치지 말라고 했으면서,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P.74)”

 

 

아이들의 순수하고 진실된 시선 앞에서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업다. 최은영의 글 속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만큼 그들의 세계에 갇혀 있는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다. 누구보다 어른들의 모순을 꿰뚫고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아직 어른이라고 입 밖으로 내기 부끄러운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어렸던 나날들에 나는 소설 속 아이들처럼 더 용감했고 예민하게 타인을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는 용기와 감각이 일깨워지는 기분이 들 것 이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순적인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2. 너와 나, 너무나 다른 목소리


 

영원한. 이 단어가 가진 아득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역시나 이 단어와 ‘관계’라는 단어가 결합되는 건 옳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 모두는 ‘영원한 관계’를 꿈꾼다. 사랑과 우정에 있어 우리는 더욱 그렇다. 서로에게 영원을 말하고 다짐하는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소설 속 현실은 냉정하다. 둘이 서로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최은영의 글 속 관계들은 서로가 균일한 환경과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균열이 일어나고 관계는 멀어진다. 이렇게 인생의 한 챕터를 함께 하던 이들이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각자 우리의 지난 삶에서 멀어진 관계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어느 순간 어느 계기를 통해 멀어지는 관계들을 보며 그저 그 순간 서로를 향해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을 때 책을 꺼내어 읽는다. 그들이 내게 전하는 말은 이러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실수는 하지 말라고, 어렸던 시절 당시가 아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그들이 과거를 돌이켜보는 이유는 글을 읽는 독자가 자신처럼 지난 과거의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신들에게 무해한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싶고, 나 또한 그들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이러한 희망과 다짐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받는 온기 하나와 나의 잦은 다짐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내가 최은영의 글에서 위안을 받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3. 여성의 목소리


 

최은영의 글 속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서 그 일을 겪는 인물들의 생각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남자애들의 행동을 그저 ‘원래 그래, 짓궂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대해 “비열한 말이라고 생각해. 용인해주는 거야. 그런 말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야.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니.(p.18)”라고 말하는 수이. “에미가 되어서 돈 번다고 애를 방치한다던 말을 듣던 엄마는 막상 직장을 관두고서는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속 편하게 노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p.76)”라는 주영이의 말과 같이 최은영의 글에는 여성인물들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민감한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쓰여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그저 마음 속 에서만 혹은 뒤에서만 이루진다는 것은 아직도 여성의 목소리가 사회의 전면에 서 외쳐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특히 「601,602」는 영화 「벌새」와 영화 「301 302」가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남자 형제의 가정 폭력을 묵인하는 가족들, 집 안에 갇힌 여성의 욕구를 각각 표현한 이 영화들과 유사한 사건 설정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 속 주영이와 효진이 그리고 언급한 두 영화의 인물들처럼 아직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어딘가 갇혀 있다. 최은영은 이러한 현실을 글 속에 드러내고 있다. 나는 훗날 이들의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집과 사회 밖으로 울려 퍼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모래에게는 모래만의 중력이 있었다.(p.111)”라고 나비는 이야기 했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만의 중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중력이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게 무해한 사람』의 글들은 각자의 중력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는지 등장하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래서 생기는 거리감을 조명함으로써 왜 우리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고픈 욕망이 쉽게 실현되지 않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마냥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최은영의 글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관계맺음에서 우리는 항상 미끄러지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순간의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기에도 과하지 않다. 그 빛나는 순간을 그려내는데도 그의 글은 탁월하다. 그래서 이 책은 지나간 관계, 진행 중인 관계 속 나의 상대였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무해한가, 내가 그들에게 무해한가를 생각해본다면 답은 ‘아니요’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들의 관계가 끝인 것이 아니다. 나의 삶에서 관계 맺기는 내게 무해한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중력을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순간적으로 무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 무해한 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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