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을 파괴하는가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만약 네가 거기 있었다면, 만약 네가 그걸 봤다면 너도 나처럼 했을 걸
글 입력 2020.06.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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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손으로 적힌 글자를 통해 알려지던 정보는 곧 인쇄기에 의해 대량으로 찍혀나갔고, 오늘날엔 발행할 필요도 없이 타자로 쳐 인터넷에 게재하면 그만이다. 정보는 점점 더 쉽게 생산되었고 우리는 정보에 점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오늘날 언론의 존재는 우리에게 아주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언론은 대중이 정보를 얻는 몇 안 되는 창구 중 하나이며 대개는 언론이 말하는 정보가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다. 첫머리에 밝혔듯“펜은 칼보다 강하다”. 현대사회에서 펜, 즉 언론의 힘이란 특히나 아주 강력하다.

 

개인의 명예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가져 왔다. 현대인들에게도 명예란 매우 민감한 문제다. 명예란 세간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 대중이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면 명예를 얻는 것이고, 그 반대가 잃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대중의 판단 근거가 되는 “정보”를 언론이 제공한다는 점이다.“카타리나 블룸이 명예를 잃어버렸다”―어째서일까? 책의 제목부터 호기심이 동했다. 인터넷 서점 페이지의 짤막한 책 소개를 통해, 언론의 횡포와 폭력으로 한 개인의 명예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수많은 정보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평범한 “대중 1”쯤으로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타리나 블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주인공 '카타리나'는 우연히 은행강도에다 살인혐의까지 있는 '괴텐'이라는 젊은 남자와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첫 만남부터 괴텐을 집에 들인 카타리나, 그러나 다음 날 괴텐은 사라지고 경찰이 들이닥쳐 그녀가 괴텐을 도망치게 도왔다는 혐의를 묻는다. 카타리나는 결백하다. 이를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괴텐이라는 젊은 범죄자와, 카타리나라는 매력적인 젊은 여자에 대해 온갖 억측 기사들을 쏟아낸다. 신문에 보도되는 글자 하나하나가 평범한 일반인 카타리나에겐 칼과 바늘이 되었다. 카타리나를 믿었던 주위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다. 사람들은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만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언론은 멈추지 않고 끝내 심한 지병을 앓던 카타리나의 엄마까지 모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카타리나의 엄마는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만다. 참다 못한 카타리나는 악질적으로 그녀를 괴롭힌 신문사 기자, 퇴트게스와의 개인 인터뷰 약속을 잡는다. 인터뷰 당일 퇴트게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카타리나가 본인의 아파트로 돌아온 후 초인종이 울리고, 퇴트게스는 그녀의 집에 찾아와 “일단 섹스나 한 탕 하는 게 어떨까?”를 유언으로 남긴다. 그녀는 개인 인터뷰 대신, 그를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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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해돼서 안타까운 고전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그 거대한 타이틀 탓에 치밀한 전개 또는 엄청난 반전 등이 있으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는데, 플롯이 매우 단순해서 의외였다. 높은 사회적 지위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가계관리사가 언론의 날 돋힌 허위보도로 어디까지 짖밟힐 수 있는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다른 서평 중 맺음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묻는 글을 보았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몇몇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에 의해 한 개인의 행위가 왜곡되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맺게 되는 일은 이미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 연예인, 일반인 등등. 그렇다. '일반인'들에게도 언론은 횡포를 가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쓰여진 책이지만, 이 책은 요즘 언론의 실태와도 너무나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SNS 따위로 모두의 일상이 모두와 공유되는 이 시대에서, 이 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할 지 모른다.

 

 

 

27살 가정부에게 잃어버릴 명예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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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당시 시대상황과 소설이 탄생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 뵐은 소설 첫 장에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 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라고 기술하였다. 빌트지는 당시 독일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선두에 있었다. 당시 한 은행 강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빌트 지는 어떠한 근거도 없이 이 사건을 극단적 학생운동단체였던 ‘바더 마인호프’의 소행이라고 단정 짓는 내용으로 기사를 기고했다. 하인리히 뵐은 이에 대항하여 슈피겔지에 빌트지의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기사제공 방식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기고한다. 이에 대해 극우파 저널리즘들은 하인리히 뵐을 마치 범죄 집단 옹호자로 취급하며 극렬하게 공격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저서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되었다.

 

 주인공 카타리나는 작중에서 매우 매력적이고, 젊은 나이에 개인 가계관리사로 일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여성으로 묘사된다. 최대한 자극적인 시나리오를 꾸며내는 황색언론에게 젊은 여성이란 매우 좋은 소재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경찰의 심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바로 다음 날 아침 차이퉁지는 “강도의 정부 카타리나 블룸이 신사들의 방문에 대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 카타리나 블룸이 그의 흔적을 눈감아 주지 않았더라면 (...) 블룸이 오래전부터 이 음모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추측한다”라고 보도한다. 기사 작성 과정에서 카타리나의 고용인 블로르나 박사가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고 표현한 것을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라고 바꿔버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차이퉁 지는 강도의 정부, 신사들의 방문과 같은 사실이 아닌, 자극적인 단어선택을 통해 카타리나가 매우 비도덕적이며 문란한 여성인 것처럼 프레이밍했다. 

 

 반대로, 카타리나 본인은 언어에 매우 민감한 인물이다. 그녀는 조서 작성 중 그녀가 “남자들의 치근거림”이라고 묘사한 것이 “신사들이 다정하게 대했다”라고 기록되자 치근거림 대신 다정함이라고 쓰여 있는 조서에는 절대 서명할 수 없다며 거부한다. 블로르나 부부를 가리킨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놓고도 유사한 논쟁이 벌어진다. 조서에는“나에게 친절한”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카타리나는 “선량한”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선량하다는 말이 유행에 뒤진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서기가 대신 “호의적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그녀는 화를 내며, 친절과 호의는 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자신에게 보여 준 블로르나 부부의 행동을 선함으로 느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처럼 정확하고 확실한 단어 선택을 고집하는 카타리나는, 모든 것을 꾸며내는 차이퉁 지와 대립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같은 카타리나의 태도와, 성격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과장보도는 순식간에 카타리나를 도둑의 문란한 정부쯤 되는 여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해 버리기까지 한, 퇴트게스의 비인간적 뒷조사가 결국 카타리나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아간 것이다. 

 

카타리나는 바이츠메네에게 모두 있는 그대로 고백한다. 퇴트게스의 저열한 성희롱을 견딜 수 없어 결국 그를 죽여 버렸으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차이퉁 지에서는 퇴트게스의 죽음을 투철한 직업정신에 따라 희생된 한 기자의 숭고한 죽음으로, 카타리나의 행위를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살해행위로 묘사하며 막을 내린다. 마지막까지 일방적인 권력구도에서 전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카타리나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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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파멸로 이끄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지는 정보의 왜곡과 날조, 이를 통한 여론의 조작과 선동. 40여 년 전 하인리히 뵐로 하여금 『카타리나 블룸』을 쓰도록 만들었던 독일 황색언론의 행태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언론에게서 너무도 자주 목격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어두운 과거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2017년에 『카타리나 블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독일인들이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인지도 모른다. 

 

독일 빌트지의 보도행태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대중지로서 여전히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하지만 독일 사회는 더 이상 정치적 목적을 가진 언론의 왜곡보도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성숙해졌다. 독일인들에게 이 작품은 이제 격변의 와중에 있던 70년대 초반 독일 사회의 문학적 기록이자, 매스미디어 시대 언론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어떠한가? 오보와 곡해, 과장은 1970년대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또한 숱하게 겪어온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글을 써서 노출시킬 수 있고 손쉽게 여론이 조성될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 이 시대의 수많은 카타리나 블룸들은 어쩌면 자신이 카타리나 블룸인지 감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기 바쁠지도 모른다.  

 

언론과 대중은 ‘진실’을 중요한 가치로 꼽는다. 그런데 언론이 비열하게 저지르는 악행은 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옷을 화려하게 입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피의자나 참고인의 인권이나 명예를 짓밟고 그 위에서 발견한 ‘진실’이 정말 ‘진실’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까지도 아무런 규제장치 없어 황색언론의 횡포가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이 작품이 지금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리라. 선정적 저널리즘이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을 막을 방법은 진짜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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