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사랑을 노래하다] 북천이 맑다커늘

글 입력 2020.06.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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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의 삶은 음악으로, 시인의 삶은 시로 표상되며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작업 당시 느꼈을 감정을 전달받고는 한다. 문화예술의 경우 서로 다른 장르끼리 만나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등의 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오늘 소개할 과거 노랫말 ‘시조’ 역시 <고가신조>를 통해 시조시와 멜로디가 결합되어 재해석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조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형시인데 이 한국 고유의 정형시를 노래하는 전통 성악곡 역시 시조라고 부른다. 즉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자 노래인 셈이다. <고가신조>는 말 그대로 옛 노래에 새로운 가락을 붙인 것으로, 국악인 죽헌 김기수가 시조 가운데 비교적 건실한 노랫말 77수의 고시조를 골라 뜻에 맞게 새 가락을 붙여 만든 것이다. 오늘 소개할 시조는 <고가신조> 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노래인 ‘북천이 맑다커늘’과 이에 대한 답가인 ‘어이 얼어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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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임호 초상화. 사진=나주시청)

 

 

‘북천이 맑다커늘’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시인인 임제(林悌)가 쓴 시조이다. 임제는 젊어서부터 기녀와의 술자리를 즐겼으며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매우 자유분방하여 20세가 넘어서야 속리산 일대에서 활동한 학자 성운(成運)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수학하였으며, 그 후 생원시·진원시에 합격,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본디 방랑하고 풍류를 좋아한 성격 탓에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점차 식었으며 이에 더해 동서양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비방하고 공격하는 당시 정계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유람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임제가 기생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주며 시조 한 수를 읊은 일로 파직을 당했다고도 이야기하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듯 타고난 풍류남아였던 임제를 당대에 많은 벼슬아치들이 멀리하고자 하였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임제는 황진이를 포함하여 여러 여인들과의 시조를 남겼는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북천이 맑다커늘’ 역시 임제가 기녀인 한우에게 준 시로 ‘한우가’라고도 불린다. 한우는 평양의 명기로 노래도 잘 부르고,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에도 뛰어났으며 시문에도 능한 명기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xWAzd_UfkU

(장서윤이 재해석한 ‘북천이 맑다커늘’과 ‘어이 얼어자리’, KBS국악한마당)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없이 길을나니

산에는 눈이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때는 딱 지금과 같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즈음, 비가 내리는 날 임제는 한우가 있는 기루를 지나가는 길에 한우를 보고 시조를 읊는다. ‘하늘이 맑아 비옷 없이 길을 나섰는데 산에는 눈이 내리고 들에는 찬비가 내린다. 오늘은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자야겠구나.’. 여기서 ‘찬비’는 중의적인 시어인데, 한우(寒雨)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진짜 차가운 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찬비를 맞았다는 것은 기녀 한우를 만났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길을 떠날 때 맑았던 날씨가 눈과 비를 맞을 만큼 긴 시간 먼 길 고생을 하며 한우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북천이 맑다커늘’은 한우에 대한 애심(愛心)을 표현하는 구애의 시인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담겨있는 아주 재미있는 시조이다. 이런 임제의 시를 듣고 한우가 답한 것이 ‘어이 얼어자리’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일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데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하노라

 

 

‘어이 얼어자리’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왜 얼어서 주무시려 하세요. 원앙을 수놓은 베개와 비취색 비단 이불이 여기 있는데 어찌 얼어 주무시려 하세요. 오늘은 찬비를 맞았으니 몸 녹이며 따뜻하게 주무세요.’ 정도로 풀어쓸 수 있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라는 임제의 구애가에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라고 응수한 것으로, 한우는 임제의 구애에 대한 허락의 표시로써 이 시조를 읊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시조의 속 뜻은 오늘은 나를 만났으니 나와 함께 따뜻하게 주무시라는 것으로, 임제의 뜻을 받들어 그와 함께 뜨거운 사랑을 나누겠다는 화답의 의미가 되겠다. 시조는 오래도록 공들여 쓰기도 하지만 호흡이 짧은 만큼 순간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지어지는 것들도 많다. ‘북천이 맑다커늘’과 그의 답가인 ‘어이 얼어자리’가 그러하다. 간결한 짜임 속에 서로를 향한 애심(愛心)이 담겨있다. 남녀 간에 주고받은 사랑의 시조이나 난잡하지 않으며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듣는 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서로의 마음을 시와 풍류로 주고받는 것, 오늘날에도 이토록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노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북천이 맑다커늘’ 역시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R&B 발라드의 대표주자 격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이 시조를 데뷔 앨범 ‘#1’의 인트로로 구성하였는데, 멤버 나얼이 국악수업에서 접하고 난 뒤 아카펠라로 편곡하였다. 또한 케이블TV Mnet의 프로그램 ‘판스틸러’에서는 국악을 전공한 배우 이하늬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마지막 회의 피날레 무대로 꾸미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멋진 작품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옛 노래들이 그러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으며 노래되고 있다.

 

 

[정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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