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존재를 거부하는 혐오는 불필요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비슷한 형상을 떠올릴 것이다. 흰머리, 굽은 등, 주름, 지팡이, 집에서 쉬는 모습. 실제로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분들도 그렇다. 노인 배려석에 앉아계시거나 어딘가 지쳐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따스함보다는 젊은 세대와 동떨어진 존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른다. 나이도 지긋하고 무엇보다 삶의 분위기가 다르다. 과거에 단란한 관계로 이어나가던 이웃 문화와 전통시장의 정이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분들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을 실례로 느끼고 스마트폰 속에서 소통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서로를 혐오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다른 생활환경에서 자라와서 가치관이 다른 것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겠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는 의문이다. 본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는 다정하게 대하지만 또래 친구와 다른 사람을 이야기할때는 노인충 혹은 틀딱이라는 말로 묶어 혐오하곤한다.

 

요즘 사회현상을 보면, 무조건 “노인을 공경하라”라고 가르쳐온 교육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는 지혜가 있고 삶의 연륜이 있으니 존경해!”라는 고리타분한 문장이 바로 떠오를 만큼 익숙하다. 하지만 세상의 문화는 많이 변화했고 예전의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20, 30대가 되었다. 마냥 공경을 하는 것은 소설에 가까우며 일방적인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가 쓰는 이 글의 이유는 무조건적인 대우가 필요하다는 점이 아니다. 사회에 풍겨진 흔한 혐오로 인해 이유없이 존재를 거부하는 혐오는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더하여 SNS에서 유명한 박막례할머니, 밀라논나와같은 인물들에게는 인생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찬사를 보내면서 실제로 마주하는 노인분들을 이유 없이 피할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모순적인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싶기때문이다. 내가 그랬듯이.

 

 

   

밀라노 할머니 '밀라논나'


 

대표 밀라논나.jpg

 

 

올해 들어 나는 '노인'에 대해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에 변화가 생겼다. 음원스트리밍과 신조어를 배우고 있다는 송가인의 팬클럽,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박막례할머니 그리고 밀라논나.

 

이 중 내가 구독하고 있는 유일한 채널은 <밀라논나>이다. 밀라논나라는 단어는 이탈리아 어로 ‘밀라노 할머니’라는 뜻이다. 그녀는 항상 백발의 짧은 숏컷에 감각적인 옷을 입고 눈에 띄는 팔찌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2978년 밀라노 유학을 떠나서 도미니코 돌체와 나란히 앉아 공부했다. 페라가모와 같은 거장들과 인맥을 쌓고 패션 디자이너로 일해왔다. 일적으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둔 멋진 사람. 무엇보다 외면만큼 그녀의 가치관이 빛난다.

 

그녀는 69세의 나이에 직업을 한 가지 더 얻었다. 온라인콘텐츠창작자!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이 채널에서는 올해 패션에 대한 것도 배우지만 연륜에서 묻어나는 말투, 태도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점이 약 5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유 중 한 가지일 것이다. 사실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크게 변화시켜주신 인물이기도 하다. 우연치 않은 기회로 첫 영상을 접했을 때, 말로만 듣던 삶의 연륜을 크게 느낄 수 있었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좁아진다고 걱정했던 지난날의 반성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그만큼 사랑하는 분야 혹은 일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전 매일 설레요. Every day is new day!"

 

    

밀라논나의 주옥같은 한마디 한마디를 사랑해서 인터뷰도 찾아보는 편이다.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60대 후반의 여성인 것과 할머니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여쭙는 질문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는 아줌마, 할머니, 꼰대 다소 비하를 섞어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에 세금 내는 것도 아니고 기왕이면 말을 좋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노인들이 표정이 없고, 어두운 표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늙어도 개성이 있고 깔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읽고 누군가 뒷통수를 툭하고 친 것 같은 느낌이였다. 어두운 내 생각과 함부로 내뱉었던 단어들을 꼬집어 주어 얼얼했다. 더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상에 대한 존경심도 분명 있었다. 그녀가 유학을 갔던 41년도에도 동양인 여자가 유학을 홀로가는 것에 대한 무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현재도 노인에 대한 혐오감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유튜브를 시도해서 인생상담을 해준 다는 그 첫 시도는 감히 그 누구보다 화려하다. 최근에 내가 막연하게 느낀 것을 글로 논리정연하게 풀어서 대답을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도 크게 있었다.

   

 

 

밀라논나의 컨텐츠


 

ㅇㅇ.png

 

 

밀라논나와 젊은 층이 대화를 나누는 컨텐츠가 많다.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했을때도 그랬고, 그녀의 채널에는 20대, 30대, 40대와 함께 나오는 영상들이 꽤 있는편이다. 이 들 중 누군가는 연예인이거나 일반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핵심은 “선생님께 배우고 싶어요”처럼 보인다. 젊은 층의 패션 고민을 들어주고, 직접 옷을 골라주며 이야기를 한다. 또 무거운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육아, 직업, 회사 내 문제 등 실생활의 고민들. 영상을 보는 구독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댓글에는 어른,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쁨, 의지, 조언 등의 단어들이 반복된다. 영상 댓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이대는 20대와 30대이다.

 

그들이 친구에게 물어보지 않고 밀라논나에게 물어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업적이 대단한 분이라서? 물론 그럴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그 내공을 본받고 싶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삶의 연륜을 가르쳐주는 선구자


 

 

 

가장 여운이 깊은 영상은 <밀라논나x한예슬>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그 한예슬이 맞다. 배우 한예슬이 먼저 밀라논나 채널에 협업을 요청했다고 한다. 내용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진다. 다른 영상들도 애정하지만, 이것을 특별히 아끼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이 동영상이 올라왔던 날과 내 하루가 절묘하게 맞았다. 그 날 일을 하며 작은 실수를 해서 내내 축 쳐져있었다. 마침 그날 이 영상이 업로드 되었고 밀라논나 할머니가 배우 한예슬과 같이 고민을 나누며 이야기할 때 뱉은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인생에 if는 없다.” 단연코 내가 들은 말 중에 시간이 쌓아둔 가장 높은 내공으로 꽉 채워진 말이다.

 

누구나 이런 생각은 한 번씩 해봤을 것이다. 솔직하게 난 굉장히 그런 편이다. 잘못하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또 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싫어서 과거를 편집하여 회상하곤한다. 이런 공상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번 후회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가져올 뿐이였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단순한 해프닝일 수도 있는 가벼운 일들 이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고 있다가 밀라논나할머니의 말을 듣고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한편으로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알게 된 말이라 감사하기까지 했다.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인생의 선구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에 감히 내가 의심할 여지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지난 것은 후회를 해봤자 의미 없다는 그 진실된 말 한마디를 진짜 어른에게 듣고 싶었다. 힘든 날 경험이 담긴 진심을 들으니 뭉클했고 마음이 평안해졌다.

 

첫 대목에서 쓴 것 처럼 혹은 사회뉴스처럼 노인-젊은 층의 갈등과 대조되는 점이다. 완전히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그녀가 특이하고 뛰어난 분이라서 가능한일일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싶다. 밀라논나처럼 실제로 마주하는 노년층의 이야기도 영상으로 제작된다면, 분명 가슴 깊이 느끼는 게 있을 텐데 그들을 나만의 착각으로 피했던 지난날이 수치스러웠따. 애초부터 너무나 익숙한 혐오단어들이 뇌리에 박혀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자연에는 찬성과 반대를 하지 않는다

 

 

“초록색 나뭇잎은 싫어. 반대!”라는 말은 이상하다. 이것을 “나는 나이든 노인이 싫어. 이 공간에 오는 것 반대!”라고 바꿔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미리 거부하고 반대한다는 것은 세상에 없는 말이다. 밀라논나가 100명 중 1명인 특별한 어른이라 사람들이 열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튜브라는 컨텐츠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분들이였어도 우리는 배움을 얻었을 것이다. 이 오피니언을 누군가가 읽는다면, 자신 혹은 지인을 시작으로 처음은 적은 사람들 일지라도 이유 없이 해오던 과거의 막연한 혐오를 알아가고자 하는 다른 시선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