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유에게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 그리스인 조르바 [도서]

글 입력 2020.06.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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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학을 국제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니코즈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의 대표작이다. 1946년 처음 출간된 소설은 이후 전 세계에서 번역되어 출판됐고,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세계 대표문학으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카잔차키스는 고향 크레타 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조르바를 바탕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특히 여러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사상적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초인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카잔차키스는, 당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영혼과 육체의 합일을 동경했고 그러한 동경의 마음은 소설 속 캐릭터로 창조되기에 이른다. 그는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던 작가였고, '자유를 통한 삶의 완성'을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영혼과 육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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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두 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나'라고 묘사되는 젊은 지식인 '화자'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60대 노인 '조르바'다. 크레타섬에서 갈탄 광산을 개발하려던 젊은 그리스 지식인 화자는, 배를 기다리던 도중 알렉시스 조르바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조르바의 요구로 의기투합한 둘은 이후 크레타 섬에서 함께 생활하며 갈탄 광산의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이성 중심의 삶을 살아가던 화자는 자유로운 조르바의 사상과 행동에 자연스레 매료된다. 이러한 스토리가 곧 소설의 중점적인 흐름이며,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셈이다.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두 인물의 가치관은 매우 대조적이다. 지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화자는 영적인 것에 치중하는 삶을 살아왔고, 조르바는 그와 반대로 육체적이고도 본능적인 삶에 충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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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나타나는 조르바의 언행은 분명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를 통한 여성의 묘사와 신에 대한 원망과 조롱, 이성보다는 즉각적인 느낌에 의해 행동하는 데 익숙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르바는 지식과 진리가 담긴 이성 중심의 책을 통해 사색을 즐겨왔던 화자의 가치관으로써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특이하면서도 생전 처음 겪어봤을 인간상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로지 현재만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간 조르바보다는 화자처럼 오늘과 내일을 유기체적으로 보는 미래지향적인 성향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화자의 입장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조르바가 강조하는 자유로운 삶의 개념이 극단적으로만 받아들여졌고, 미래를 아예 배제시켜버리는 가볍고 안일한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가 여성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저절로 난감해졌고 받아들이기에도 힘들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때 당시의 남녀관계에서 유쾌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가벼운 하나의 유머 코드로 써넣은 듯했다. 그렇게, 소설을 읽으며 비판적인 생각이 드는 지점도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글을 읽어나가다 보니, 조르바는 꽤 입체적인 인물이었고 비판적으로만 받아들여질 단편적인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 삶의 태도에 있어 우리가 동감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고, 소설의 페이지를 넘겨나갈수록 그의 진솔한 내면이 서서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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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뿐인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방법론에 대해 말해주려 했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과 방식은 무조건적이지 않았다. 삶을 직접 경험해보고 부딪쳐봄으로써 결론 지어진 성숙한 태도 그 자체였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현재형 인간이었다. 어제 일어났던 일도,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념과 제도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자신에 집중하며 불합리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는, 정의로운 내면을 지닌 사람이었다.

 

소설 속의 조르바는 나 자신을 계속적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같이 결코 즉흥적이거나 종교와 사상을 벗어나면서까지 자유로움을 추구하진 않는다. 이념과 제도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한편으로는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두려워 안정적인 삶만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혹여 자유로움을 추구하더라도 정해진 틀 안에서 튀지 않는, 공식적인 가치를 바라왔다.

 

그렇게 '안정성'만 추구해온 나에게 그가 전해준 확고한 삶의 가치적인 측면은 충분한 울림이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나의 깨달음과 같은 맥락으로써 소설 속 화자가 조르바를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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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었던 태도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주축이 되어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생의 태도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의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조르바처럼 완전한 주체성과 대담한 용기를 지녀오진 못한 것 같다. 삶의 주인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막상 실천하려 하면 더없이 어려운 과제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 나에게,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르바는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삶이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걸 일깨워주려 했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소설에서 나왔듯,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간 조르바는 쉽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하나 사실,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적용시키기에도 힘든 본인만의 인생의 모토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갔다.

 

그는 책에 파묻혀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통찰하려 한 화자를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화자의 가치관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닌, '자유로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화자를 안타까워 한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습이었다. 나 역시 그런 조르바의 심정이 이해되면서, 그의 정당성 있는 자유의 주장이 충분히 납득되었다.

 

 

  

메토이소노 = 인생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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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라는 구절은 이 소설이 내포한 메시지를 함축한다. 그 낡은 세계는 안정적이며 불안이란 존재할 수 없고 과거와 미래만을 바라보는 삶을 뜻하는, 즉 도전과 용기 그로인한 발전은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일 것이다.

 

작가는 바로 앞서 언급한 의도를 지닌 채, 전달하고자 한 무거운 메시지를 '조르바'라는 인물 속에 대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적인 장치는 나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게 했다. 작가는 규칙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회의를 느끼고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물음과 해답을 동시에 제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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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통해, 관념적으로 개념 지어진 게 아닌 직접 경험해보고 느껴보는 게 진정한 행복의 실천이라는 가치 있는 삶의 방법론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에 입각한 인간 본성에 도달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던 <그리스인 조르바>의 내용은 작가의 삶의 언어를 그 자체로 대변한다.

 

도덕과 윤리만이 추구되는 세상은 그 자체로 숨이 막히고 건조할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자유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인 동시에,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절제와 본성이 조화롭게 갖추어진 삶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을 것이며, 그게 바로 카잔차키스가 말하고자 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자 인생의 방법론을 담은 이론서와 같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주장한 메토이소노, 즉 '영혼과 육체의 합일'이라는 심오하고도 의미 있는 사상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킨다면, 그가 전하고자 한 가치 있는 삶의 이상향에 비로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즈 카잔차키스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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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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