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책을 던졌다 [문화 전반]

다양한 책의 쓸모. 그 속에서 계속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입력 2020.06.1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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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하다 못해 더워졌다. 그리고 습해졌다. 그 말은 집에 바퀴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바퀴가 등장한 것은 공포 영화처럼 새벽, 책상에 앉아 밀린 과제를 하고 있던 때였다. 시야의 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발견한 것은 검지 두 마디만 한 바퀴벌레였다. 내가 발견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있는 바퀴벌레. 당장 잡아야 했다. 내가 움직이면 눈치 빠른 바퀴벌레는 후다닥 사라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문학 계간지였다. 내 책상에서 가장 두껍고 무거우며 면적도 넓고 던져도 되는 것. 이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계간지를 던졌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잡았다. 심지어 딱지치기처럼 되어서 다행히도 책에 바퀴의 잔해가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곧 바닥에 던져진 계간지가 우습게 느껴졌다. 이 글은 여기서 시작했다. “집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책을 던졌다.”라는,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간 문장에서.



 

책의 쓸모


 

책은 바퀴벌레 잡기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일단 가장 흔한 쓸모는 냄비 받침이 급할 때다. 뜨거운 냄비를 누군가 들고 오면 옆에 있던 아무 책을 집어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리는 장면은 아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한다.

 

학생 때는 책상에서 더 편하게 엎드려 자기 위해 책을 베고 잤다. 베개처럼 푹신한 다이어리나, 책 모양과 똑같은 쿠션(심지어 표지를 책처럼 넘길 수도 있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책이 베개로서의 쓸모가 쏠쏠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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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판매 중인 메모리폼 커버형 책베개

 

 

유튜브를 보는데 영상의 높이가 너무 낮을 때도 책을 사용한다. 책을 쌓고 위에 휴대폰이나 패드를 올려놓으면 더 시야에 맞아서 보기가 좋다. 높이를 맞추려고 책을 쌓는 것은 이때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유용하다. 노트북을 한 단계 올릴 때, 스탠드를 높이고 싶을 때 모두 책이 유용한 받침대가 되어준다.

 

다 읽은 책은 (가능하다면) 중고서점에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는 조금의 망설임이 필요하다. 몇천 원의 돈이 내가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고, 그런 책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 책은 책장에 다시 곱게 꽂힌다. 다시 읽을 날을 기다리며. 하지만 다시 뽑아 드는 날에 바퀴벌레를 잡도록 던져지거나, 뜨거운 냄비를 받치게 되는 때가 더 많은 것은 아이러니다.

 

다양한 쓸모를 늘어놓았지만, 당연히 책의 가장 큰 쓸모는 ‘읽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책을 좋아하는 쪽에 속한다. 독서량을 기준으로 성인 100명을 줄 세운다고 가정했을 때 많이 읽는 쪽에 속할 것이다. (읽진 않더라도)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신간을 확인하고, (구매하진 않더라도)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학교 도서관과 구립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하고 관련 프로그램까지 확인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어쩌다 정말로 마음에 끌리거나,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두고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을 찾았을 때, 충동적으로 구매한다. 나는 지적 호기심과 허영을 바탕으로 가성비를 따지며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다.

 

 

 

요즘 책 보기


 

하지만 예전보다 독서 시간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사실, 이제는 책보다 유튜브가 더 재밌다. 유튜브는 그냥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심지어 다 보고 나면 추천된 다음 영상으로 자동으로 넘어가거나, 설정해놓지 않았다면 관련된 12개의 영상을 띄워서 보여준다. 드넓은 유튜브의 바다에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나의 시간은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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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보는 민음사 유튜브 채널

 

 

출판도 이제는, 아니 일찍부터 유튜브 마케팅의 시대다. 당장이라도 이름이 떠오르는 북튜버들이 몇몇 있으며,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나야 관심이 있어 관련 채널을 구독하고 관련된 추천 영상을 보지만, 유튜브의 추천 제도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영원히 책 관련 영상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요즘엔 책도 영상으로 본다. 각종 채널에서 올려주는 줄거리 간단 요약 영상을 본다. 그럼 직접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다. 내 문학 허영심을 간편하게 높여주는 방법 중 하나다. 좋아하는 친구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책 좋아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허영심을 유지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또한 책 구매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굿즈다. 알라딘의 성공 이후 온라인 서점들은 굿즈를 팔고 있으며 출판사에서 제작하기도 한다. 나만 해도 가지고 싶은 굿즈가 있어서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고 온라인 서점을 한참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금액을 맞추면서 어떤 책을 구매해야 소비가 아깝지 않을까. 고민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여러 경로로 책은 나에게 도착한다. 책이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나에게 도착한다. 나는 읽는다. 가끔 읽는다. 그리고 그 가끔이 나를 쉽게 사무치게 한다. ‘책 읽기’라는 게 행동이 어렵지 막상 하고 나면 참 재밌고 보람차고 나의 다음이 궁금해 두근거리게 한다. 딱딱한 양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까칠한 종이를 넘길 때 나는 냄새가 선연한 이미지로 남을 때 나는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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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는가? 수많은 사람이 묻고 수많은 사람이 답했을 문장이다. 각종 미디어의 폭발과 인기 속에서, 출판의 위기라는 말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책을 읽고 책을 구매한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각종 기사가 쏟아져 나오면서도 여전히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처럼 약간의 허영과 함께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굿즈를 위해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우연히 본 광고로 마음이 동해 충동적으로 구매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계간지를 꺼냈을 때, 책들이 와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가장 두껍고 무거운 책을 갑자기 중간에서 꺼냈으니 나머지 책들과 북엔드가 버티질 못한 것이다. 바닥에 내던져진 책만큼이나 쓰러져 내 책상을 어지럽힌 책들이 우스웠다.

 

내던진 책과 쓰러진 책들이 아직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니 다행이다. 계속 읽고 싶은 책이 존재하고, 그걸 책장에서 따로 꺼내 책상에 진열해 놓았으니 다행이다. 계속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 좋아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은 남아있을 지적 호기심과, 허영과 그리고 기타 등등의 쓸모를 위해서.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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