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이 리틀 다이어트 : 펩시의 배신

펩시가 혀에 코팅해놓은 액상과당을 벗겨내니 파프리카의 단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글 입력 2020.06.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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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을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다이어트 영상으로 간만 보다가 시작했다.

 

계기는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을 때가 됐다. 불과 2년 전에 입었던 옷들은 조이고 조여서 옷이 나를 입는 건지 내가 옷을 입는 건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옷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옷 핏은 당연히 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아지는 시기에 불어난 살들을 도려내고 싶었다.

 
모든 걸 차치해서, 살이 찌니 모든 일에 짜증 내고 의욕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부정적으로 대했을 지도 모른다. 체력도 없어 쉽게 피곤해지고 예민해졌다. 계단을 오르거나 가볍게 뛸 때, 온몸의 살이 떨리면서 숨이 쉽게 가빠졌다는 걸 인식해버렸다. 이렇게 살면 인생 모토인 무병중수는커녕, 유병단수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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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애써 외면했던 몸무게는 나도 모르게 앞자리를 한 번 넘었다. 야속하게도 다시 한번 넘으려는 시점에서 뒤늦게 결심했다. 각오를 되새기고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측정한 인바디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평소와 달리, 하필 내 인바디에서 얼마만큼 빼야 하고 운동해야 하는지 읊어주는 사람을 보며 짜증이 폭발했다. 눈치가 없는 사람인지 오지랖이 대단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나 자체의 문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저도 눈이 달려 있다고요.

 
가장 먼저 간식부터 정리했다. 빵, 과자 같은 군것질을 끊었다. 별로 어려울 것 없었다. 사실 그냥 있으니까 먹었고 주변에서 권하니까 먹었다. 소화도 잘 안돼서 돈 주고 빵, 과자를 사서 먹지 않았다.
 
제일 곤혹인 건 내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펩시-코카콜라가 아니다-와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떼-였다. 둘은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식후에 느껴지는 그 텁텁함과 꺼끌함이 해소되지 않아서 만족감이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펩시 대신 하루에 물 2L를 마시고 아바라 대신 카누를 사서 타먹기로 했다. 살 빼면서 절약도 하니 일석이조라고 애써 위로했다.
 
이렇게 금방 괜찮아질 줄 몰랐다. 하루 이틀 그렇게 보내니까 별생각도 안 들었다. 딱히 펩시를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마음이 동했더라도 한두 번 참으면 참아졌다. 물론 이건 나름대로 널널한 식단이라서 참아지는 걸 수도 있지만 스스로 놀랄 정도로 별 거 아니었다. 근데 단맛에 찾았던 아바라 대신, 카누에 중독돼서 1일 1커피는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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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관리하는 것도 어려워서 대충 했다. 아침은 원래 안 먹어서 패스, 점심은 일반식 덜먹기, 저녁은 탄단지와 채소를 갖춘 다이어트 식단. 귀찮아하는 성격이라서 파프리카나 토마토 이런 채소와 단백질 들어간 것들, 탄수화물은 컵누들이나 고구마. 할만했다. 맛없는 것도 아니고 파프리카나 토마토의 심심한 달달함을 좋아해서 먹을 만했다.

 
운동은 근력운동이 중요하다길래 그것부터 시작했다. 30분만 깔짝깔짝했다. 기초대사량이 현저하게 낮고 인생 자체가 평생 피곤해하고 힘들어했기 때문에 체력을 기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숨도 안 쉬어질 정도로 힘들어했는데 하다 보니까 개운하기도 하고 그랬다. 평소에도 한 시간 산책을 즐겨 해서 습관들이기는 어렵지는 않았다.
 
10일 정도 지났을 때, 3kg 덜 되게 감량됐다. 생각보다 많이 감량돼서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눈바디가 만족스러웠다. 물론 감량 전에 비교해서 만족스러워졌다. 배가 많이 들어가서 좋았고 겨드랑이 살이 줄었다. 더 이상 뛸 때 몸 전체가 떨리지는 않았다. 3kg 감량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자 이쯤 되면 한번 폭식을 해야 하는 게 '국룰'이다. 진짜 그날도 만족스러운 하루였고 폭식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근데 금요일이라서, 마침 집에 동생이 사다 놓은 피자가 있어서, 게다가 집에 나밖에 없어서 눈치 볼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정신 차리니 피자 두 조각에 홈런볼을 먹고 있었다.
 
물론 저녁 식단을 이미 먹어서 배불러죽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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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유튜브에서 치팅데이 기어이 찾아놓고 합리화를 끝냈다. 근데 아주 살짝 조바심은 들었지만, 다시 불어날 거라고 두렵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되는 거고. 다음날 몸무게 조금 불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다만 폭식을 했다는 죄책감이 느껴지고 그게 다시 불태울 원동력이 될 거란 사실도 알았다.

 
이제 내가 글 쓴 이유가 나온다. 폭식하는 김에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펩시 한 컵만 마셔보자 했다. 얼음에 펩시를 따랐더니 무척 짜릿했다. 매일 밤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즐겨봤던 먹방 ASMR에서야 봤던 콜라를 실제로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진짜 맛이 없었다. 엄청나게 달고 맛없어서 한 모금 마시고 이상해서 다시 마셔봤다.
 
두 모금 째 마셨는데도 이상해서 엄마한테 마셔보라고 했다. 엄마는 맛있다고 해서 펩시를 토스했다. 이제 펩시를 멀리하고 코카콜라로 갈아타야겠다. 장난이다. 내가 이전까지 얼마나 설탕과 인공감미료에 절여있었는지 인식하게 됐다. 아무리 저녁은 다이어트 식단으로 해도 점심은 일반식으로 먹는데 저런 맛이 느껴지니 신기했다.
 
국도 짜게 느껴졌다. 되도록이면 국을 안 먹어서 그런가? 예전엔 국 간을 엄청 세게 했는데 요즘에는 국 간을 못 맞춘다. 다른 사람들이 싱거워한다. 물론 아주 긍정적이며 건강하다는 신호지만 나는 이게 평생 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더 신기해서 글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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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무조건 냉장고에 펩시 페트병을 구비해놨고 물처럼 마셨다. 갈증이 나 잠에서 깼을 때도 펩시를 찾았다. 넌 피 대신 펩시가 흐를 거라고 친구가 농을 던진 적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몸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모금의 펩시를 넘긴 후 혼란스러웠다. 죽고 못 살던 펩시가 맛없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펩시가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허탈감 동시에 미각이 건강해진 것 같아 보람찼다. 펩시 하나에 센치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일상에서 스트레스 창구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쟤는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살았다. 가끔 먹는 배달음식이나 펩시 정도가 낙이었다. 그냥 그 자체의 맛이 아니라, 중독적인 액상과당, 기분 좋아지는 포도당 덩어리, 뚫어버리는 탄산 그리고 펩시를 마심으로써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나아질 거라는 착각. 펩시를 알콜에 치환하면 완전 알코올 중독이잖아.
 
일상에 만족할 수 없으며, 스트레스 해소하기 위해서 펩시를 마셨던 것 같다. 펩시가 정말 맛있어서 마실 수 있겠지만 난 다른 이유로 마셨나 보다. 맛을 느낀 게 아니라 만족감을 느낀 거다. 한동안 멀리하고 나서 다시 음미하니 맛이 없어진 걸 수도 있다. 펩시가 혀에 코팅해놓은 액상과당을 벗겨내니 파프리카의 단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번외로 든 생각을 풀어보자면, 내가 조금 컨셉장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금요일에는 좋아하는 영상을 보면서 펩시와 배달음식을 누려야 행복하다고 스스로 프레임을 걸었다. 물론 진짜 행복하긴 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에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다.
 
아니 있다. 지금은 건강하게 운동도 하고 식단 관리도 하는 등 자기 몸도 보는 등 다이어트를 하는 내게 심취해있는 것 같다. 이너-뷰티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나. 지독한 컨셉장인이다. 이번 컨셉을 조금 더 누리다가 조금 더 지적이며 교양 있는 나를 도전해보고 싶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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