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드레한 모습 이면에서 여전히 인간일 우리 - 팜FARM

실험적 연극, 문화적 허영을 넓히는 일
글 입력 2020.06.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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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주인공 오렌지는 ‘팜’이라고 불리는 신인류다. 단순히 건강하고 완벽하게 태어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장기를 몸에 넣어 키워줄 수 있을 정도의 존재로 태어났다. 자연을 거슬렀기 때문일까, 그는 3살 씩 먹어 빠르게 자라고 늙는다. 부모보다 먼저 나이 먹고 병들어 죽는 그의 모습.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지만, 그 또한 자연의 섭리다.

 

오렌지는 자신의 의지 없이 태어나 부모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혼을 마음먹은 부모님 아래서 잘못 없이 굴러다닌다. 부모는 진심으로 오렌지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오렌지는 고통받는다. 하지만 오렌지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다. 가끔 크게 미소 지을 뿐, 오렌지의 표정은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성욕도 무엇도 없는 그의 모습을 보여 주듯이, 자연을 거슬러 태어난 그에게 생긴 ‘틈’을 보여주는 것 같이. 정신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오렌지는 그저 인형 무덤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잠을 잔다.

 

유전자 조작의 벌어짐에서 태어나고 고통받던 오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죽기 직전,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호명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의 환상이자 마담이자 용기이기도 한 인물과 함께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말하고, 행동하며, 만족스러워한다. 잠깐 진정한 자신의 자유를 맛보고 죽음을 맞이한 오렌지는 인형 속으로 묻힌다. 인형 무덤이 생기고, 다른 이들이 그 무덤에 머리를 박는다.

 

 

팜 공연 사진(5).jpg

 

 

 

그래서, 의도가 뭐야?


 

연극 <팜>을 보고 극장을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이게 뭐지?” 극장에서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함께 본 사람과 줄거리만 정리하다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질문은 같았다. “그래서, 의도가 뭐야?”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지점만 정리해보면 이렇다. 끊임없이 동작하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진행도 분절되고 끊임이 없다. 인물들의 복장은 누가 더 화려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키치하고, 잔뜩 쌓여있던 인형들은 무대에서 내내 던져지고 굴러다닌다. 비일상적인 움직임과 함께, 연극은 암전 없이 120분 내내 우왕좌왕 진행된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바로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고, 색색의 조명이 꽂히면서 구성이 정신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 뒤로 텍스트 그대로 떠오르는 대본도 한 역할을 한다. 관객은 무대를 봤다가, 대본을 봤다가, 무대를 봤다가, 대본을 본다.

 

 

팜 공연 사진(7).jpg

 

 

또한 주인공은 오렌지인데 왜 오렌지의 서사가 두드러지지 않는 느낌일까? 아마 진짜 주인공은 오렌지를 대하는 주변이었나 보다. 그 주변에는 아마 나 역시 포함될 것이다.

 

오렌지는 완전한 타자가 되어 신도 인간도 되지 못한 존재로 고독하다. 오렌지의 탄생은 환상적인 미래사회의 도착 같지만, 오렌지는 상상만큼 매끈한 존재이지 않았으며 그러지도 못했다. 그를 둘러싼 주변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며 여전히 너무 인간적이다.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변태적인 이야기, 정신없이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몇몇 연출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긴 하다. 오렌지를 만들며 오렌지에게 빈틈없이 채워지는 포스트잇이라던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그랬다. 자신의 몸에 케이타를 넣어 놓은 설정, 내연남이자 슈퍼 사장의 등장도 재미있었다.

 

사실 연극을 반 정도 봤을 때부터 일찍이 이 연극을 ‘이해’하기는 포기했다.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를 파헤치고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커다란 서사를 따라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연극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이해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문화적 허영을 넓혀주는 일



 

"허영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뭔가 다른 걸 자기 마음으로 초대할 만한 구석이 없어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밌는데 왜 내가 타르코프스키를 보며 괴로워야 돼?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문화적 시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에 대해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 이동진, '문화+서울' 인터뷰 중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언제부턴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문화를 즐겼던 것 같다.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점점 퇴화하듯이, 가볍고 손쉽게, 재미있는 것을 즐기면서 그런 문화에 굳이 눈길 줄 여유가 없었다. 없어도 충분히 즐겁고 재밌으니까. 굳이, 왜?

 

오랜만에 실험적인 연극을 보니 새삼 예전이 떠오른다. 한창 어렵고 실험적인 예술 영화만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내가 문화적 허영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재밌으려고 하는 문화생활조차 머리를 써야 한다는 게 버겁게 느껴지던 순간부터 허영심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실험적인 연극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기반 삼아 다른 ‘어려운’ 문화에 손쉽게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극이 훈련의 시작이 되어줄 것 같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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