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심리학과면 MBTI도 배우나요?

글 입력 2020.06.1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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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자신의 학과를 소개할 때면 으레 듣는 말이 정해져 있다. 예시로는 “경제학과면 수학 잘하시겠네요”, “영어영문학과면 영어 잘하시겠네요.” 등이 있다. 심리학과에 다닌다고 이야기하면 대뜸 “제 심리를 맞춰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다양하다.

 

1학년 때만 해도 혈액형별 성격을 배우는 곳이냐는 말부터, 심지어는 타로 같은 것을 배우냐는 말까지 들어봤다. 요즘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적어 학과를 소개한 적은 없지만, 지금 질문을 받게 된다면 MBTI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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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개발한 성격 검사 도구다. 외향-내향(E-I), 감각-직관(S-N), 사고-감정(T-F), 판단-인식(J-P)의 총 4가지 선호 지표로 16가지의 성격 유형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2000년대에 혈액형별 성격유형이 유행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MBTI 역시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듯하다. 성격심리학 전공 서적에도 소개되고 있는 만큼, ‘혈액형 성격론’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며, 심리검사로서의 타당도와 신뢰도는 입증되어 있다.

 

전공강의에서 MBTI를 배운 것은 총 두 차례로, 한 번은 성격심리학 강의에서, 한 번은 심리검사 강의에서 접했다. 성격심리학 시간에 유료 검사지를 통해 검사해본 결과, 나는 INTJ 유형이었다. S와 N의 점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가끔은 ISTJ가 나올 때도 있지만, INTJ의 설명이 얼추 와 닿았다.

 

검사가 끝난 후에는 같은 성격 유형끼리 모여 자신들의 성격 특징을 정리해보는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조용한 성격 유형이 모인 조는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 발표자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던 반면, 활발한 성격 유형이 모인 조는 사람들이 쉽게 친해졌지만, 수다를 떠느라 급하게 과제를 완성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항 하나하나가 모호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고, 피검자가 거짓말로 응답하는지 판별하는 척도가 있는 유료 검사지와는 달리, 최근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무료 MBTI 검사는 신뢰도도, 타당도도 확보되지 않은 가짜 검사라는 기사가 나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인 만큼 검사 환경이나 엄밀한 척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어설픈 번역으로 질문을 모호하게 하고, 결과의 특정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가짜 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

 

 


 

 

물론 타로로 운세를 보거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찾아보는 것처럼 재미로 MBTI 검사를 해보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원본이 검증된 검사라는 이유로 가짜 검사의 결과까지도 맹신하거나, 전문가의 의견 없이 특정 부분이 두드러진 설명만을 읽고 자신의 성격 특성과 잠재력을 제한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라는 성격의 설명을 보고 주변 사람과의 갈등을 합리화하거나, 원래는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 아니었는데도 J형은 계획적이라는 설명 때문에 무리하게 계획을 세운다거나 하는 등, 가짜 성격검사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이미 전문가들은 가짜 검사가 퍼져나가는 실태를 아주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겨우 16가지 유형으로 전 세계인을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그랬다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존재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성격 검사를 하는 검사지도 정말 다양하고, 타고난 성격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지배하는 상황의 힘이나, 문화의 힘을 연구하는 분과 학문도 있을 정도로 인간은 다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다.

 

심리검사가 개발된 궁극적인 이유도 인간의 모든 면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 하나를 찾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지혜롭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도우려는 도구가, 가능성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성격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심리검사 결과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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