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속 클래식 음악

시대와 공간, 장르를 따지지 않고 이어온 음악의 생명력
글 입력 2020.06.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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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 피아노 연주에 관심이 많아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었는데, 그 당시 항상 들었던 생각이 있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이라고 해도 빠른 템포의 곡에 랩을 하면 힙합이 되고, 느린 템포의 곡에 노래를 하면 발라드가 될 수 있을 텐데 왜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나누어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스스로 클래식 음악에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여서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다.

 
대학생인 현재는 대중음악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간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대중음악에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 많은 대중음악에서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를 차용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평소에 즐겨 듣던 노래 4곡을 선정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신화 T.O.P. &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중 정경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국민악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유럽 음악의 전통을 존중하며 세계적인 작곡가로 거듭났다. 그가 작곡한 많은 작품 중 발레음악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은 3대 발레 음악으로 불리며 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7세기 말 프랑스에서 흥행한 기존의 발레는 일반 기악곡과의 구분이 어렵고 안무가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오직 발레만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발레 음악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 중 <백조의 호수>는 그의 최초의 작품이고, ‘정경’은 전 막을 통일하는 중요한 주제 구실을 하는 곡이다.
 
클래식 샘플링의 강력한 성공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신화의 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중 정경을 샘플링하였다. <백조의 호수>는 사악한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공주가 백조로 변한다는 러시아 전래 동화 이야기를 표현한 발레 극이다. 란 제목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있던 순간이 ‘낙원의 반짝거림(Twinkle of Paradise)’이였다는 것을 약자로 표현한 것이다.
 
<백조의 호수> 중 정경에서는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하프 연주 위에 오보에가 멜로디를 연주한다. 이후 팀파니와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가 멜로디를 연주하며 분위기는 극대화된다. 신화의 에서는 이 멜로디를 신시사이저를 통해 표현하며 곡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원곡의 오보에 연주는 사랑하는 여자를 애절하게 원하는 남자의 마음처럼 들렸고, 바이올린 연주는 더욱 고조된 마음과 복잡한 심경, 특히 함께 연주된 팀파니 소리가 이로 인해 어쩔 줄 모르며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처럼 들려 클래식 음악을 통해 역동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신화는 이 멜로디를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표현하며 그 위에 강력한 랩과 안무를 통해 터프한 남성미를 극대화했다. 같은 멜로디라도 다른 장르, 다른 악기, 다른 연주 방법으로 서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2. H.O.T. <아이야!> &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1악장


 
 
 
18세기 유럽은 사회적으로 신인문주의, 계몽주의가 대두되며 시민계급이 해방되는 시기였다. 사회 비판적인 경향의 질풍노도 운동은 계몽주의가 지닌 잠재력의 급진화에 영향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의 모차르트는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빈으로 떠났는데, 이때 하이든과 살리에르 등 유명 작곡가들의 새 작품을 들으며 당시 문화계에 불어닥친 ‘질풍노도’의 사조를 접함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로 인해 작곡한 곡이 <교향곡 25번 g단조>이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쓴 최초의 작품으로, 자기 자신의 개성을 유감없이 표출시킨 명작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모차르트의 곡을 사회 풍자적인 가사와 어두운 곡의 분위기에 절묘하게 결합시킨 댄스곡이 있다. 사회성을 담은 곡들로 많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던 H.O.T.의 <아이야!>이다. 신화의 를 통해 클래식 음악 샘플링으로 재미를 본 SM엔터테인먼트와 유영진 작곡가는 <아이야!>를 통해 또 한 번 클래식 음악을 차용하였다. <아이야!>가 나왔던 90년대 후반 가요계도 모차르트 음악의 변화처럼 다양한 변화가 있었는데, 사회적 비판을 주제로 한 음악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향곡 25번 g단조>는 질풍노도 사조의 영향으로 g단조로 작곡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지와 열망을 강렬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아이야!>의 사회 풍자적인 가사와 곡의 분위기가 모차르트가 <교향곡 25번 g단조>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의 고뇌와 열정을 상징하는 <교향곡 25번 g단조> 1악장의 오프닝은 모차르트의 곡 중 가장 강렬한 당김음으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을 <아이야!>의 도입부에 사용함으로써 H.O.T.의 주 무기였던 강렬한 컨셉과 힘 있는 안무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3. 씨야 <사랑의 인사> & 엘가 <사랑의 인사>


 
 
 
영국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엘가에게는 평생의 사랑이자 뮤즈인 앨리스가 있었다. 엘가는 그녀와의 결혼을 약속한 후 사랑의 마음을 담은 피아노곡을 작곡해 약혼 선물로 헌정하였는데, 이 곡이 바로 <사랑의 인사>이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사랑 노래 하면 떠오르는 클래식 음악이다. 이러한 곡의 특성 때문에 현재 결혼식장 등지에서도 많이 들려지고 있고, 컬러링 베이비 7공주는 <사랑의 인사>의 멜로디를 보컬 멜로디로 차용한 에서 순수한 사랑을 노래했다.
 
최근에 종영한 JTBC의 음악 예능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를 보던 중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씨야’라는 3인조 여성 그룹이었고, 곡 제목도 샘플링을 한 원곡과 같은 제목인 <사랑의 인사>였다. 하지만 씨야의 <사랑의 인사>는 엘가의 원곡과는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씨야의 <사랑의 인사>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발라드곡이다. 씨야의 <사랑의 인사>에서는 곡이 시작할 때 엘가의 원곡이 나오고 곡의 후반부에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원곡의 멜로디가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 순간의 행복함을 떠올리게 해준다면, 씨야의 곡은 이별에 대한 가사를 전달하며 단순히 한 사람과의 이별이 아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까지 모두 이별하는 느낌을 준다. 즉, 원곡과 대비시켜 이별의 아픔을 더욱 극대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인 부분이다.
 
 
 
4. 여자친구 <여름비> & 슈만 <시인의 사랑 Op.48 : 1.아름다운 오월에>


 
 
 
슈만은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과 문학적 재능을 결합해 음악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슈만의 작품들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음악으로 쓰인 시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슈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당대 최고의 시인, 하이네가 있었다. 슈만은 하이네의 시를 읽고 지은 곡들이 많다고 하는데, <시인의 사랑> 역시 하이네의 <노래의 책> 가운데 ‘서정적 간주곡’ 부분에 음악을 붙여서 완성한 작품이다. 하이네의 사촌 동생이었던 아멜리아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시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슈만 역시 어려운 사랑을 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자아를 투영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던 슈만은 이 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시인의 사랑>은 16개의 곡이 연속해서 진행되는 ‘연가곡’으로, 제1곡부터 제6곡까지는 사랑의 시작, 제7곡부터 제14곡은 실연의 아픔, 15곡과 16곡은 지나간 청춘에 대한 허망함과 잃어버린 사랑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1곡인 <아름다운 오월에>는 여자친구의 <여름비>에 차용되었다. <여름비>라는 곡을 알게 된 이후 원곡인 <아름다운 오월에>를 들어 보았는데, 원곡이 훨씬 느린 템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슈만의 원곡을 먼저 알고 있던 사람들 역시 <여름비>의 빠른 템포에 놀랐다고 한다. 또한, 교향곡과 피아노곡 등이 대중음악에 샘플링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가곡 멜로디를 샘플링한 <여름비>는 그만큼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고 있다.
 
 
 
시대와 공간, 장르를 따지지 않고 이어온 음악의 생명력

 
시대가 지났음에도 과거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현대의 대중음악에 차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클래식 음악을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굉장히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미 유명한 멜로디를 곡에 사용함으로써 대중들은 거부감 없이 음악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저작권자의 사후 70년 이후에는 원곡의 저작재산권 보호 기간도 만료된다. 즉, 클래식 원곡의 사용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필요에 따라 클래식 음악에서 사용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를 차용하여 이를 통해 곡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흐름을 이끌고 있다.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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