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이다 - 환상의 마로나 (Marona’s Fantastic Tale)

글 입력 2020.06.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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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와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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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마로나>를 보기 전


 

 

 

요즘에 다시금 심해진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이나 다중이용시설에 가기가 매우 꺼려진다. 그렇기에 <환상의 마로나>라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를 받게 되었을 때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환상의 마로나> 홍보 문구를 한번 정독해보니 이 영화가 제21회 부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대상 & 관객상을 수상했다는 내용을 보고 부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상이라니! 얼마나 재미있길래? 하는 궁금증이 들어 시사회를 신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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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임에도 영화 예고편이나 스틸컷을 보았을 때 보이는 영화 속 이미지가 무척 일러스트 같은 그림체다 보니 영화 분위기 자체가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디즈니, 지브리 같은 애니메이션만 보다 보니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새로움, 신선함이 컸으며 게다가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다 보니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영화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여 검색 후 줄거리나 예고편도 찾아보았지만 아직 개봉 전이라 영화에 관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라 내용이나 진행 방식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 동물이 나오는 영화는 귀엽고 유쾌할 거라고 단순하면서도 막연한 생각을 하며 영화관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마로나의 삶이 아주 슬프고 감동적이어서 필자의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영화 내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 보니 예고편에 나온 내용은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굉장히 제한적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영화의 아름다움이나 감동적인 내용은 예고편에서 십분의 일도 담겨있지 않기에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필자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환상의 마로나> 영화 작품에 대한 아주 극찬의 후기를 작성해보려고 한다.

 

 


세 명의 주인, 네 개의 이름

(아래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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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름은 마로나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려 줄게”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로나.

형제들을 떠나 인간 주인을 만나면서 견생의 제2막이 오른다.


곡예사 마놀부터 건설업자 이스트반, 귀여운 소녀 솔랑주까지.

새로운 주인을 만날 때마다 마로나 역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함께할 수 있는 인간이 있어 행복한 강아지 마로나

꿈보다 몽환적이고 동화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롤로그



영화의 첫 시작을 보기에 앞서 영화의 영상 스타일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독특한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접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지고 영화에 이입하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게 된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초반 부분은 마로나의 담담한 내레이션보단 사실상 그림이나 영상의 화려함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움은 금방 적응되면서 내용으로 빠져들게 된다.

 

시작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새겨진 마로나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변에는 차가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 것처럼 빠른 움직임이 보이고 마로나의 흔적은 점차 가루가 되어 지워져간다. 그리고 마로나의 옆에는 소녀가 같이 누워 있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첫 장면부터 눈치챌 수 있겠지만 마로나의 비극적인 내용의 결말을 충분히 예상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픈 장면을 아름답게 미화시켜 표현했고 내레이션 또한 감정을 담아 말하지 않기에 슬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을 아름다운 환상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에서는 영화의 내용이 이렇게까지 슬픈 내용일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동물을 주제로 하는 만화나 영화였다면 주로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죽는 장면을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영화와 만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을까? 보는 내내 마로나가 언제 치여 죽을지 모르는 불안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잠식한 채 마로나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첫 번째 이름 :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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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의 아빠는 순혈(품종견)으로서 잡종을 차별하지만 아름다운 잡종견인 엄마에게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해 아홉 마리의 강아지들이 태어나게 된다. 그 가운에 마로나는 갈색 털을 가진 암컷 개로서 아홉 마리 강아지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아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짧은 시간 동안 엄마의 철학과 사상을 배우고 그 후 본인의 삶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게 된 마로나, 그러나 짧았던 행복한 순간을 뒤로한 채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엄마와 형제들과 떨어져 아빠를 키우던 인간에게 맡겨지게 된다. 몇 분의 시간 동안 본 아빠와의 기억을 끝으로 그날 저녁, 마로나는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된다.

 

 

 

두 번째 이름 :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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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 버려진 마로나를 발견한 어떤 남자가 술집에 있던 한 사람에게 강아지를 팔게 된다. 그게 바로 마로나의 첫 번째 주인인 마놀이다. 그는 실력이 있는 곡예사로 두려움에 떨던 마로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아홉"이라는 이름이 아닌 처음으로 "아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마놀은 마로나에게 선물도 주고 집에서든, 일터에서든 항상 그와 함께 하며 온전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로나는 그래서 "마놀과의 인연은 많은 선물을 쏟아졌다"라고 표현을 할 만큼 행복했던 순간이지만 언젠가는 이 순간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주인의 얼굴을 핥아준다"라는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여 마놀을 기쁘게 해주면서 첫 인간과의 첫 견생을 시작한다.

 

여기서 '두려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이후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후각이 발달된 강아지의 특성을 사용하여 <냄새>로 인간의 기분이나 미래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독특하고 신선한 설정을 추가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나 인간의 내면의 변화나 위험한 상황 내지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냄새를 맡게 된다. 그렇기에 마로나는 마놀과의 이 행복이 계속 지속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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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처럼 마놀과 함께 공연을 하러 가지만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묶여서 마놀의 모습만 지켜보던 마로나는 예전과 다르게 불안해한다. 불안함은 예상이 적중했다.

 

마놀을 지켜보던 한 투명한 남성이 마놀이 마음에 들었는지 서커스단에 올 수 있는 좋은 제안을 하게 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없는 직업적 특성상 마놀은 이를 거절하게 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계속 슬퍼하게 되던 마놀의 모습을 본 마로나는 마놀과 이별해야 할 때임을 눈치채고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마로나는 잠든 마놀에게 마지막으로 얼굴을 핥아주고 그 길로 집을 떠나 스스로 길거리로 나서며 이별의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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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의 곡예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보면 서커스라는 건 환상,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다 보니 마놀이 마로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던 존재임을 직업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마놀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는 작았던 공간이 점차 커지고 높아지며 그 행복함의 크기가 우주로 표현이 되지만 반대로 마놀이 슬프면 물먹은 것처럼 축 처지듯이 표현한다. 그렇기에 마놀이 살았던 빈민가 맨 꼭대기 층 집에서 마놀을 떠나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마로나가 행복을 포기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름 : 사라 



그렇게 마놀을 떠나 한 쓰레기장에서 식음을 전폐한 채 유기견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던 마로나에게 또다시 찾아온 두 번째 인연, 바로 건설업자 이스트반이다. 그는 마로나에게 "사라"라는 이름을 주고 죽어가던 마로나에게 밥도 주고 정도 준다. 밤에만 잠깐 찾아와서 밥을 주고 가는 그에게 마로나는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이스트반은 마로나가 있었던 공간에서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마로나와의 인연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된 후 더 이상 공사장에 올 이유가 없어진 이스트반은 사실 강아지를 키울 조건이나 책임을 질 상황이 되지 않아 마로나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많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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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반이 이런 고민을 할 때, 그를 기다리는 마로나의 심리는 그와 함께 했던 공간으로 표현이 된다.

 

처음 마로나의 공간은 쓰레기장이었다. 쓰레기장에 다시 들어온 이유는 자신이 처음 인간에게 버려진 공간이 바로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는 마로나가 받은 상처의 크기를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적에 버려진 쓰레기통은 아직 행복을 모르던 마로나의 상처로 아주 작았지만 나만의 주인을 얻고 사랑을 알고 행복을 배우게 된 마로나의 상처는 보다 더 커졌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쓰레기장을 이스트반이 깨끗하게 청소한다. 청소의 의미는 마로나의 상처를 치유해 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설업자라는 직업을 가진 그로 인해 마로나의 마음속 공간은 이스트반과의 추억과 신뢰, 믿음으로 점차 완성되어감을 건물이 지어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스트반은 자신의 주변 상황으로 인해 마로나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로나는 항상 이스트반을 기다린다. 그가 "기다려"라는 말 한마디에 낮과 밤을 넘어 며칠이 지나도록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로나는 불안하다. 불안감은 완성된 건물이 점차 마로나를 옥죄어오는 듯이 표현된다. 이스트반과의 관계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무서움을 견뎌가며 마로나는 두려움 속에 그를 기다린다.

 

마로나가 기다리고 있는 공간에는 쇠창살로 된 문이 있는데 이 문은 마로나의 마음과 이스트반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 채라고 볼 수 있다. 고로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은 이스트반의 마음이 열리기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마로나의 모습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열린 문으로 마로나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그가 마로나의 두 번째 주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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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스트반은 자신의 집에 데려갈 수 없던 상황으로 인하여 마로나를 아픈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데려가게 되었다. 치매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않아 약을 먹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 어머니와 지내게 되지만 약만 잘 먹고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주말마다 오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스트반의 어머니와의 생활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나 다름없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이스트반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마로나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감이 고조된다. 이 불안감에 대한 예상은 적중했다.

 

마로나의 실수로 약을 먹지 못하게 되어 정신을 잃은 이스트반의 어머니로 인해 마로나는 크게 다쳐 죽을 위기를 겪게 된다. 몸을 다시는 쓸 수 없게 될 수도 있던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스트반의 경고를 잘 지키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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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어머니의 집에서 마로나를 키우기 어렵다고 느꼈지만 우연히도 개를 싫어하면서도 유기견을 키우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던 이스트반의 부인에 의해 운 좋게도 그의 집에서 살게 된다. 마로나는 처음부터 부인이 좋진 않았지만 이스트반과 같이 살기 위해 부인이 입히는 강아지 옷을 입거나 그녀가 올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긴장을 한 채 비위를 맞춰주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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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세 싫증이 나버린 부인에 의해 다락에 가두어진다. 이스트반은 절대 마로나를 버리지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았기에 부인은 알레르기가 있다던가 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꾀를 써가면서 마로나를 계단 아래, 현관 앞, 그리고 밖으로 조금씩 쫓아내게 된다. 마로나도 사랑하지만 그보다 부인을 더 사랑한 이스트반은 부인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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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마로나는 이스트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 던지기 놀이를 한다고 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강아지의 시각으로 우리가 익히 하는 공놀이의 개념이 역전돼서 표현되었는데, 공 던지기를 좋아하지만 가져오는 건 싫어하는 이스트반에게 공을 물어다 주면 기쁜 얼굴을 한다며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마로나의 이야기를 통해 시선의 변화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곧 그에게서도 이별의 냄새가 난다. 이스트반은 기쁜 얼굴로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말과 함께 공놀이를 끝내고 마로나는 그대로 숲속에 버려지게 된다. 그날 밤 갑자기 들이닥친 개 장수들로 인해 잡혀갈 위기에 놓인 마로나는 극적으로 탈출하게 되면서 이스트반과의 인연도 끝나게 된다. 이스트반이 버린 건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해석에 따라 다르기에 장담할 순 없지만 이런저런 조건 속에 동물을 '방치'했다는 점은 틀림없다.

 

개 장수도 이스트반과 부인이 부른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개 장수들이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도주하는 가운데 다시 마놀의 서커스단 광고도 지나가고, "아나"를 찾는다는 전단지도 지나간다. 마로나는 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첫 주인이었던 마놀과의 기억과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으며 마놀 또한 그만큼 마로나를 소중히 했음을 볼 수 있는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네 번째 이름 : 마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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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장수를 피해 한 숲에서 숨어있던 마로나는 우연히 지나가던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솔랑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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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랑주는 자신이 집에 살려면 어른들이 만든 규칙을 지켜야 한다며 불평하면서 마로나에게 있어 마지막 이름인 "마로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집으로 가자며 데려가게 된다. 솔랑주의 집에는 이미 물고기, 고양이 등 기르는 동물이 여럿 보였다. 아직 어린 솔랑주는 동물을 데려와 액세서리나 소모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던 부분이다. 불쌍하기에 데려오고, 귀엽기 때문에 키우고 싶지만 정작 밥을 주거나 산책을 시키거나 돌봐주는 것을 하지 않는 전형적인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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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랑주는 마로나를 데리고 온 것을 알면 바로 버릴 것을 알아챘는지 빨래 바구니에 숨겨놓는다. 천천히 소개하려고 했던 것과는 다르게 금방 엄마에게 들켜버리고, 엄격한 할아버지와 엄마를 겨우 설득하여 말을 듣지 않는다면 마로나를 버려버리겠다는 딜을 한채 반강제적으로 마로나를 집에 들인다.

 

두 번의 주인으로 인한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마로나, 자신을 반기지 않는 솔랑주 집의 고양이나 할아버지로 인해 금방 버려진 것이라고 여겼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오래 있게 된다. 솔랑주의 집에서 함께 있으면서 싱글맘으로 힘들어하는 솔랑주의 엄마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자신을 싫어하던 고양이와도 같이 잘 수 있을 정도로 가족으로서 인정받으며 평화롭게 생활한다.

 

하지만 솔랑주가 마로나에게 이름을 주었을 때 인간들은 다들 처음에 이름을 준다며 지긋지긋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전보다 감정이 무뎌진 마로나는 솔랑주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한다.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생활을 보내며 어리고 귀여운 소녀였던 솔랑주는 어느새 사춘기에 접어든 숙녀가 되었듯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떼를 쓰며 조르던 다정했던 소녀는 마로나를 돌보지도 않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하였고 점차 마로나를 소홀히 하게 된다.

 

용변 처리를 위해 산책을 해야 하지만 이미 그것은 솔랑주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늘 오줌과 대변을 참아야 하는 마로나. 매번 이를 지적하는 어른들의 말의 나 몰라라 하며 귀찮아하거나 오히려 반항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 솔랑주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할아버지는 마로나를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결국 솔랑주는 할아버지에게 협박하지 말라며 홧김에 마로나를 버려버리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솔랑주의 기를 잡기 위해 직접 마로나를 버리러 가지만, 결국 마로나는 자신의 가족임을 인정하고 다시 데려오는 길에 갑자기 쓰러져 죽을 위기에 놓인다.

 

강아지는 귀신이나 영혼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영화에서 그대로 표현하는데 할아버지가 쓰러져 죽을 위기에 처하자 천국에서 계단이 내려와 할아버지의 영혼을 틀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을 마로나가 필사적으로 막는다. 영혼이 다시 육신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집으로 달려가는 마로나. 집을 가기 위해서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건너 집에 있는 엄마를 부르며 할아버지를 구하면서 집에서 온전히 가족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던 평범한 어느 날, 마로나를 산책 시키라는 엄마의 말에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솔랑주, 다 컸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마로나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 나가는 길에 우연히도 서커스단 차가 지나가면서 마놀의 냄새를 느낀 마로나는 그 차로 가려고 하지만 솔랑주에 의해 금세 저지당하고 자신이 조금 더 빠르게 눈치챘어야 했다며 자책을 한다. 여기서도 새로운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첫 주인을 기억하고 잊지 못하는 마로나의 행동을 통해서 강아지들에게 있어 가장 사랑했던 첫 주인은 영원히 기억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렇게 도착한 공원, 산책하는 줄 알고 오게 된 장소에서 솔랑주는 갑자기 마로나를 나무에 묶어두고 한 시간만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마로나를 두고 떠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마로 나를 잠시 묶어두고 갔다가 나중에 데리고 들어가려는 속셈이었다. 이때 마로나는 굉장히 불안해한다. 또다시 자신을 버린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묶인 끈을 푸르고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이미 버스를 타고 출발했지만 그 버스를 놓칠세라 그녀를 하염없이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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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랑주가 탄 버스를 쫓아가는 중 그동안 자신이 살았던 곳을 지나가게 되면서 마로나는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맡은 추억의 냄새들을 하나씩 맡게 된다. 솔랑주의 냄새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엄마와 형제들의 냄새, 이스트반의 냄새, 마놀의 냄새 등 모든 기억들을 한 번씩 지나친다. 마로나에게 맡아진 냄새들은 행복했던 기억들 뿐이기에 곧 비극적인 이야기를 더욱 야기해 준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솔랑주를 발견 한 마로나, 위험하게도 도로를 건너는 솔랑주는 차에 치일뻔한 위험에 마로나가 그녀를 구하게 된다. 자신을 쫓아온 마로나를 보면서 깜짝 놀란 솔랑주.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솔랑주가 마로나를 발견하자마자 마로나는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영화 처음에 울면서 마로나를 위로해 주는 모습의 소녀는 솔랑주였다. 무심했던 그녀는 결국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며 위로인지 후회인지 모를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은 죽기 전 자신이 살았던 인생 모두가 갑자기 스쳐 지나가듯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를 주마등이라 하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 속 이야기는 죽기 전 마로나의 주마등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행복하거나 즐거웠던 견생도 아니지만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마로나의 삶의 이야기에서 행복이라는 의미와 반려동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후기 


 

이번 영화 후기를 작성하는데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작성할 만큼 생각이 많아졌다. 머릿속에는 영화에서 느낀 굉장히 많은 내용과 메시지가 있지만 이것을 하나하나 표현하기에는 아직 작문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결국 영화의 내용을 글로서 100% 전달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번 영화에서 중점으로 볼 몇 가지 부분을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마로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실제 강아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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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을 한번 보았을 때는 그저 밝고 행복해 보이는 마로나의 모습을 보고 강아지 마로나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는 스스로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반려동물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들이 주는 귀여움, 행복감, 그리고 무조건적인 신뢰 등 "긍정적인 것"들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을 주제로 하는 여러 일러스트, 그림, 이야기 내지 작품들은 대부분이 재미있고 귀여우며 유쾌한 이야기들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용이며, 동물이 주는 "좋은 부분"만 경험하고 그것만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해옴으로써 만들어지는 고정된 이미지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분명 "좋지 않은 부분"들도 존재함을 잊어버리고 만다.

 

실제로도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동물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많이 없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잔인하게 죽이는 여러 사건들을 보았을 때도 당시 떠오른 생각은 주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런 사람은 벌을 받거나 똑같이 당해야 한다"와 같이 분노의 방향이 주로 사람에게로 향했을 뿐, 동물의 두려움과 고통, 슬픔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생각을 안 해봤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결국 필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의 입장으로서 영원히 겪어볼 일이 없는 상황에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마로나는 유기견을 대표하는 강아지로서 마로나가 겪은 견생 자체가 동물과 사람들 사이에 있어 자주 일어나는 아주 현실적인 상황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타의로 인해 부모와 떨어지고 인간에게 사랑받고 버림받고 상처받지만 작은 관심만 주어도 다시 인간을 따르며 주인에 따라 결정되는 삶을 우리는 살 수 있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경우를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강아지가 겪는다. 결국 마로나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실제 유기견들의 불행하고 음울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시선을 바꿔 바라본 그들의 삶은 아주 냉혹한 인생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준다. 이토록 착하고 순수한 강아지의 특성으로 인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강아지들에게 용서받을 것을 알기 때문인 걸까? 우리들은 그들이 주는 사랑에 금방 익숙해져 버리고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이런 점이 이번 영화의 아주 큰 슬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환상의 중심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마로나의 환상적인 이야기(Marona’s Fantastic Tale)"이다. 하지만 제목과는 반대로 내용 자체는 그렇게 환상적인 내용이 아니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내용도 아니다. 영화는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담담하기만 하다. 오히려 환상적이란 말은 영화의 영상미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선택의 사항이다. 모두 다 다른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만 강아지는 아무런 이유나 조건 없이 인간을 믿고 따르며 끝까지 애정을 놓지 않는다. 마로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이 있든 간에 언제나 나의 인간이라고 부르며 온 우주의 중심이 주인에게로 간다.

 

특히나 마로나는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림체뿐만 아니라 마로나를 둘러싼 온 세상 모든 것이 바뀜을 표현하고 있는데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세 명의 주인 모두가 아주 화려한 컬러로 표현되지만 마로나는 갈색 털을 가진 강아지라는 말과는 다르게 흑백으로 이루어진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의미는 결국 환상적인 견생의 중심이 마로나가 아니라 그 주인에게 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예술적 관점으로 바라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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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만들어진 계기는 거리의 한 유기견을 구해 임시 보호를 해본 적 있는 <안카 다미안> 감독의 경험으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유럽의 그래픽 노블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브레흐트 에번스>의 강렬하고 독창적인 그림체로 표현 한 예술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각 예술 가운데 진정한 미디어 아트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2D, 3D, 컷아웃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파피오콜레 기법을 사용한 것처럼 찢어 붙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이가 낙서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료나 질감 또한 다양하다. 수채화를 쓴 것 같기도, 크레파스나 펜 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고 화려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는 화면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혼란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주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밸런스가 조화로워진다.

 

처음에 캐릭터를 보면 애니메이션 느낌보다는 일러스트적인 느낌이 강한데 영화를 보는 내내 1분 1초 모든 그림이 전부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을 만큼 현대 작가들의 그림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림체뿐만 아니라 선이나 색채, 그리고 영상 기법 등 전부가 바뀌기도 하는데 첫 주인이었던 마놀은 곡예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늘어나고 줄어들기도 하며 환상적이기도 하고 우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붉은 선과 크기와 곡선으로 자유로운 인체를 표현하는 데 인체를 중심으로 심리를 표현한다.

 

반대로 푸르고 딱딱한 네모와 직선으로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배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스트반은 캐릭터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큰 덩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주변 상황에 맞춰 작고 좁은 곳에 자신을 낮추는 것을 통해 우유부단하며 자신의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는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솔랑주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표현하듯 화사하고 알록달록하면서 노란 배경 사이로 꽃과 풀로 이루어진 공간이 주로 나타난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배경은 다른 시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색채, 디자인, 컬러를 통해 상황이나 성격, 감정 등 다양한 것을 표현하기에 디테일 하나하나 놓칠 수가 없으며 다채로운 영상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명성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30억이라는 제작비용으로 3년이라는 기간을 쏟아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굉장히 뛰어나며 여러 작가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작은 행복의 가치



마로나의 엄마는 "사랑과 뼈다귀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철학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마로나는 "아홉 마리 강아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기에 행복도 뼈다귀도 1/9 어치의 몫이다"라고 생각하던 강아지이다. 어릴 때부터 행복에 관한 철학적인 생각하던 마로나에게 있어 행복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이는 영화 메인타이틀 OS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우유 한 접시 실컷 축인 혀.

낮잠 뼈다귀 묻을 곳.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손 미소 목소리 마음.

뛰어올라. 최대한 높이 뛰어올라.

영원히 행복한 곳으로.

 

Happiness (Is a Small Thing)

- Pablo Pico, Isabel Sör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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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행복이란 인간과 반대다.

지금 그대로가 제일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이다.

 

 

따뜻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와 맛있는 뼈다귀를 묻을 작은 공간만 있으면 행복하다던 마로나는 자고 있는 인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삶에 가치가 있다고 느끼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감에 만족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꿈'이라는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기에 당장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보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일생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는 말로 나의 견생 자체는 굉장히 슬프지만 이를 아름답게 표현함은 결국, 마로나의 행복에 대한 철학과 가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마로나에겐 자신이 살았던 삶 자체가 모두 환상적이고 있는 그대로가 행복하고 완벽한 순간임을 피력하고 있다.

 

 

 

<환상의 마로나>를 보고 나서 


 

마로나가 죽고 나서 그 후의 에필로그나 이야기는 없다. 아홉을 버리고 나서 일어지는 일, 아나를 찾는 마놀, 외에도 사라를 잃은 이스트반과 사고 이후의 솔랑주의 뒷이야기조차 알 수 없다. 왜냐면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슬프던, 후회하던, 아무렇지 않던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결과는 인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이유 또한 귀여워서, 그리고 외로워서이다. 철저히 인간이 바라보는 기준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고 사랑을 알게 되고 동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후회스러움이 가득했다. 나의 행복을 위해 한 선택에 반려동물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반려동물이던 인간이던 언젠간 끝이 있음을 다시 상기시켜주면서 현재의 행복을 너무 당연히 여기고 그들을 소홀하게 여긴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간 헤어짐이 있는 것을 항상 잊어버리고 살기에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미래의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주변을 사랑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웰메이드 영화로서 특히나 비평 위주의 평점을 내리는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 평을 받을 만큼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꼭 보았으면 하는 작품으로 어린아이들보단 어른들이 보기를 추천한다.

 

이번 6월 11일에 개봉하는 마로나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에서 주는 교훈과 메시지, 철학 등을 한번 살펴보면서 강아지의 시선으로 보는 행복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떠한가?

 

  

환상의 마로나

(Marona’s Fantastic Tale)

 

감독: 안카 다미안

주연: 리지 브로체르

브루노 살로몬, 티에리 한시스

러닝타임: 92분

개봉: 2020년 6월 11일

 

 



[박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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