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테이블(2016) - 당신은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영화]

마음 가는 길, 사람 가는 길 다른 우리네 인생
글 입력 2020.06.0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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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


 

영화 더 테이블은 2016년 개봉한 김종관 감독의 영화이다. 김종관 감독은 특유의 잔잔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대표작으로 <최악의 하루>, <페르소나>등이 있다. <더 테이블>도 김종관 감독 특유의 잔잔하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 감성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사실 나는 이 배우들을 보고 영화에 관심이 생겼었다.

 

영화는 어떤 카페 안, 한 테이블을 배경으로 두 명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총 4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게 이 영화의 전부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인데도, 두 사람이 등장하고 쉴 틈 없이 또 그들의 이야기에, 사람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낯선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느낌에서, 점점 몰입하고 슬펐다가, 기뻤다가, 웃었다가, 쓸쓸하다가, 여러 감정과 생각이 든다.




Ep 1. 오전 열한 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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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열한 시, 에스프레소와 맥주. "나 많이 변했어." 스타 배우가 된 유진과 전 남자친구 창석.


 

첫 번째 이야기는, 스타 배우가 된 유진과 회사를 다니는 전 남자친구 창석의 이야기다.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지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녀. 하지만 창석은 유진을 그저 인기 배우로 대하고, 주변인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온 듯하다.

 

창석은 유진에게 소심했던 과거와 달리 말도 늘고 밝아졌다며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눈앞의 유진을 보지 않고, 그녀에게 관련된 지라시를 봤다며 사실이냐고 묻는다. 참 이 장면에서 창석의 입을 막고 싶었다. 일그러지는 유진의 표정은 안보이는지 눈치 없이 계속 진짜냐고 묻는데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진은 배우여서일까? 상처받은 듯 보이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리는 모습이 좀 안쓰러웠다.

 

그래도 좋게 이야기가 끝나고 훈훈하게 마무리가 될 줄 알았는데, 창석의 마지막 대사가 찬 물을 끼얹는 느낌이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라며 묻는 창석. 정말 눈치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과거에 가까웠던 사람을 만나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질감이 드는 것 같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으로 만났지만 서로 너무 변해있는 모습에 씁쓸하기도하고, 과거의 추억이 사라지는 느낌도 든다. 결국 관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거기까지. 서로 너무 변해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잘못일까? 추억은 그저 추억일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Ep 2. 오후 두 시 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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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반, 두 잔의 커피와 초콜릿 무스케이크. “좋은 거 보면 사진이라도 하나 보내줄 줄 알았어요.” 하룻밤 사랑 후 다시 만난 경진과 민호.


 

두 번째로는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식 잡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경진과,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온 민호의 이야기이다. 초반에는 둘이 서로 떠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 느낌에 경진이 민호에게 조금 화가 나 있는 상태 같았고, 민호는 굉장히 능구렁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소개팅을 하는 상황인가, 어떤 관계일까 생각했다.


사실은, 둘은 연인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였다. 배낭여행을 떠난 민호, 생각보다 길어지는 그의 여행과 아무런 소식이 없는 민호에게 경진은 화가 난 것이었다.


민호는 그런 경진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둘의 대화 속에서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게 제 3자인 내 눈에는 보였다. 여행을 가서 경진을 생각하며 선물을 잔뜩 사온 그의 모습에 경진은 화가 풀리고 둘의 오해도 풀린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 둘의 귀여운 모습에 흐뭇했다.




Ep 3. 오후 다섯 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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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두 잔의 따뜻한 라떼.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직까진..." 결혼사기로 만난 가짜 모녀 은희와 숙자.


 

이번엔 남녀가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여자와 젊은 여자가 등장한다. 얼핏 봐서는 엄마와 딸 같기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같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은희는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신분을 꾸미기 위해 숙희를 어머니 역할로 고용한 것. 숙희는 은희를 보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이 생각난다.

 

마지막 숙희가 은희의 시어머니에게 말하는 듯 독백연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정말 엄마와 딸의 모습 같았다. 결혼사기로 만난 사이지만, 그 둘의 마음은 진짜였다. 부디 은희가 결혼식을 잘 마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p 4. 저녁 아홉 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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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저녁 아홉 시,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 흔들리는 혜경과 운철.


  

어느덧 해가 저물고, 마지막 이야기이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 둘은 서로 사랑하는 듯하지만, 현실의 상황으로 인해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것 같다. 혜경은 결혼을 앞둔 상태였고, 우진을 못 잊은 그녀는 몰래 바람을 피자는 제안을 한다. 운철의 눈빛은 흔들리지만, 이내 단호하게 거절한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지 모르겠어.” 혜경의 대사. 너무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마음과 현실의 상황 속에서 선택을 하는 건 정말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둘은 결국 선택을 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위해 반대의 길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음에도 서로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헤어지는 모습이 정말 어른의 사랑 같았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들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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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치 내가 옆 테이블에 앉아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느낌으로, 처음엔 그저 흥미롭게 듣다가 점점 이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화려한 액션이나 장치, 충격적인 사건 등 자극적인 소재가 없고 단지 테이블과 그들의 대화가 전부이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더 몰입감 있고 깊은 여운을 주는 그런 영화였다. 나는 과연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정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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