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녕, 우리의 트라우마 - 도서 '트라우마 사전' 리뷰

글 입력 2020.06.0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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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사를 단순화시켜보자면 그 속에는 선과 악의 구도가 있다. 고전 소설은 필연적으로 권선징악적 결말에 도달했다. 선이 이기고 악이 패배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에 이끌린다.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악당들은 사실 다 착하다. 주인공이 화려한 몸짓으로 변신을 끝마칠 때까지 공격 안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선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는 악당들의 고충을 사람들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파워 레인저> 시리즈 등 어릴 적 보았던 변신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악당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비교하는 콘텐츠도 있었다. 외부에서 부여받은 비범한 재능으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고, 늘 긍정적이며 주변인들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에너자이저 주인공보다는 어딘가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나름의 목표를 세운 뒤,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 악당에게 좀 더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하고 봤을 때 패배한 뒤에도 다시금 일어서는 악당의 일상이 늘 자신만만하고 승리하는 주인공보다는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는 것. 물론 어린이 시리즈에서 악당의 악행은 어찌 보면 장난으로 여겨질 만한 수준이기 때문에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꽤 그럴 듯한 메시지였다.

 

여기서 우리가 악인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바로 ‘상처 받은 경험’, 즉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교집합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Q) 소설이 좀 읽힐 거라는 기대감이 있나요?


A)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조금은 기대해요.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고통받은 자를 읽는 거예요. 그들이 어떻게 감내하고 견뎠는지를 보면서, 인간의 내면성을 회복할 수 있어요. 타인에게 공감하며 연대 해야만 우리 힘도 강해져요.

 

- 엄지혜, "김영하 "팩트 따윈 모른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월간 채널예스> 2017.6월호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크기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그런 인간을 소재로 삼는 서사물에는 당연히 트라우마가 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트라우마의 공통점은 건들기만 해도 입이 바싹 마르고 단번에 소유자를 우울하게 만드는 못된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사를 소비함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려는 것은, 인간에게 트라우마가 필연적인 만큼 마주 보고 극복하려는 욕구 역시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내재한, 잘 쓰인 서사물이 대중에게 필요한 만큼 실존하지 않는 인물의 트라우마를 아주 잘 구축해줄 작가 역시 필요하다. 그들을 위한 실용서가 바로 《트라우마 사전》 이다.


 

더 복잡한 세계에서 더 복잡한 이유와 동기로 존재하는 캐릭터를 창조해 섬세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메커니즘을 설계해 넣어야 그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움직일 수 있을까?

 

캐릭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장애물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 캐릭터의 과거와 맞닿아 있으며 특히 트라우마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독자가 여러분의 캐릭터에 완전히 이입해 이야기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기제를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트라우마 사전은 이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 듀나(영화 평론가/SF 작가), 《트라우마 사전》 추천의 글

 


인생의 어느 한 길목에서 발생한 난 데 없는 사건이 시발점이 된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타 사건과 겹쳐 더 모나지기도 하고, 생각을 곱씹을수록 더 촘촘해지면서 몸집을 부풀린다.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무수한 경우의 수로 변화무쌍해지기 때문에,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있는 트라우마도 인물 사이에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서사를 다른 국면으로 전진시킨다. 그만큼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면 수용자는 가차 없이 떠난다.


《트라우마 사전》은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체계적이다. 이것이 이 책의 독보적인 강점이다. ㄱㄴㄷ 순으로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트라우마의 목차를 정리한 뒤, 구체적 상황/훼손 당하는 욕구/ 생길 수 있는 잘못된 믿음/ 가질 수 있는 두려움/ 가능한 반응과 결과들/ 형성될 수 있는 특성/ 상처가 악화될 수 있는 계기/ 상처를 직면하고 극복할 기회 등으로 해당 인물들이 지닐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속성들을 정리한다.

 

아주 쉽게 서사를 만들고 싶다면 각 소제목 별로 한 가지씩 속성을 선택하여 인물을 구축한 뒤, 동일한 방법으로 원하는 수만큼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작가에게 사전은 참고용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참고할 수 있는 든든한 수단이 있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 언제나 힘이 된다. 작가들은 몇 가지 실마리를 얻은 뒤 본인만의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현실 독자들의 마음을 이끄는 트라우마, 이를 지닌 인물을 탄생시켜낼 것이다.


이 책은 서문에 ‘작가들을 위한 자기 관리법’을 따로 마련해두며 예상 독자를 작가로 한정하긴했다. 그렇지만 혹시 서사 창작자가 될 생각이 없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 영화 속 인물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해당 인물의 속성이 따져보는 것 역시 이 책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는 단어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이기에 굳이 종이 사전을 들춰내어 사전적 정의를 다시 읽어보는 것처럼. 이는 창작할 계획이 없는 이들에게는 언뜻 무용해보일지 몰라도, 좋아하는 것을 좇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좋아하는 것을 좇는 행위가 가치 있다는 사실은 역시 선명하다.


서사의 테두리 안에서 트라우마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선사해줄 책, 《트라우마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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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전

-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


지은이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옮긴이 

임상훈


출판사

윌북


분야

 글쓰기, 창작 작법


규격

152*220mm


쪽 수 

508쪽


발행일

2020년 04월 20일


정가 

22,000원


ISBN

979-11-5581-266-2 (03600)


 

[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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