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MBTI를 좋아하십니깡? YES!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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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흥미로운 단편 하나를 만났다. 제목은 <감정의 물성>이다.
이야기에는 ‘행복체’, ‘우울체’, ‘분노체’와 같이 감정의 이름을 딴 돌멩이가 등장한다. 이 돌멩이가 바로 ‘감정의 물성’이다. 감정의 물성은 인스타그램을 타고 빠르게 인기를 얻는데, 인기의 비결은 감정의 물성이 실제로 그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썰’ 때문이다. 즉 행복체를 만지고 있으면 머지않아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반대로 우울체를 만지고 있으면 끝도 없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단순 플라시보 효과라고 단정하고, 또 누군가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감정의 물성에 ‘의존’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끔찍한 폭력을 휘두른 청소년들은 폭력의 동기로 증오체를 꼽는다. 우울체를 자주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과다 우울’을 주의하라는 권고가 내려온다. 처음에는 재미로, 다음에는 감정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해 물성에 손을 댄 사람들은 점차 물성에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상황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오늘날 우리가 MBTI를 대하는 모습이 연상되어서 말이다.
나는 INTJ다. 이 결과가 퍽 만족스럽다. jpg.
참고로 나는 MBTI 신봉자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접했는데, 검사 결과와 팩폭글이 나라는 인간을 너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상당한 재미를 느꼈다. 그 때부터 유튜브에서 MBTI 관련 온갖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을 보다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MBTI 검사를 시켜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과는 묻지 말자^^..)
나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회사까지 MBTI를 전파시켜 평범한 수요일 오전, 메신저를 장악했다. 동료들의 MBTI 결과를 보며 ‘이 사람은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 ‘팀장님 성향은 이러하니 이런 걸 조심해야겠구나’ 생각도 했다. 이렇듯 나에게 MBTI는 단순한 재미거리를 넘어, 나를 설명하고 타인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시끌시끌. jpg
문제는 예기치 않게 발생했다. MBTI 검사를 한 번 더 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미리 설명하자면 나는 계획적이고 동시에 낭만적이며, 효율적인 시스템을 위해 새로움을 고안하는 INTJ의 특성이 굉장히 만족스러워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고 다니던 상태였다. 그런데 웬걸. 내가 ISTJ란다.
내가… 내가 ISTJ라니!
ISTJ 팩폭글. jpg
‘개방성 개나 줘 버림’과 같은 설명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극히 지양하는 가치였기에, 다소 당혹스러웠다. 특히 ‘자기 객관화 못해서 MBTI 검사하면 INTJ 나옴’ 부분에서는 거짓말하다 들킨 마냥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INTJ의 특성은 그저 선망일 뿐, 현실은 아니었던 것일까. 스스로의 별 볼일 없음을 목도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기에, 나는 또 다시 두려웠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고작 테스트에 뭐 그리 의미부여를 하냐고. 하지만 나에게 MBTI는 단순한 테스트 그 이상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타인에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겪으며 <감정의 물성> 속 인물들이 떠오른 것은,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무언가를 잠시 외주 준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감정을 외주 주었고, 나는 자기 이해를 외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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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색깔의 실이 모여 하나가 되는 실팔찌처럼, 여러 정체성이 모여 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누가 나에게 ‘너는 어떤 너가 가장 좋니?’ 물으면, 나는 ‘생각하는 내가 가장 좋아’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와 세상을 향한 나만의 인사이트를 갖는 일이 좋다.
그런 내가 어떠한 연유에서 MBTI에 이렇게까지 의존했을까. 무의식적으로 에너지를 덜 낭비하는 법을 찾는 인간 본성에 따라, MBTI에 기대 나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자기소개의 순간에 마침내 곤란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다만 확실한 것은 자기 인식은 그 무엇도 아닌 나의 언어로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MBTI는 너무도 편안한 언어다. 특히나 요즘처럼 MBTI가 전국적 붐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저 이런 사람이에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저 INTJ에요’, ‘아 제가 ENFP라서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고개를 끄덕인다. 나의 괴상한 성향이나, 직접적으로 얘기하기 민망한 장점 혹은 단점을 설명할 때도 MBTI는 좋은 페르소나가 된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져 있는 16개의 페르소나 중 하나로 설명하기엔 나는 너무 복잡다단한 존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INTJ로 나를 정의 내렸을 때부터 INTJ의 특성으로 기술된 모든 항목이 나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ISTJ의 특성 역시 나와 닮은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것도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MBTI 결과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결과 중 무엇을 취해 나라고 믿을 것인지인 것 같다. 사람은 믿는 대로 향하게 마련이고, 무엇을 믿을지 스스로 결정 내리는 순간 자기 이해의 주도권을 되찾기 때문이다.
MBTI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MBTI가 사이언스라고 믿고, MBTI가 스스로를 정리하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MBTI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믿을 뿐이다. MBTI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의 전체가 되는 순간, 나와 친해지려는 시도는 자연 소홀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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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INTJ다. 혹은 ISTJ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플러스 알파다. MBTI로 정리되는 여러가지의 특질,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면모를 지닌 플러스 알파이다. 플러스 알파의 영역을 채워가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기에, 나는 오늘도 생각하는 나를 만나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혹 이정도까지 MBTI에 빠져본 적은 없다면,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겨주시길. 그러나 나의 경험에 아주 조금이라도 공감 가는 포인트가 있다면, 우선 반갑구료 MBTI 신봉자여. (악수) 당신이 덕질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바라는 것은 그 끝에 알파벳 4자가 아닌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그럼 오늘도 슬기로운 MBTI 생활 하시길. 나는 MBTI 빙고 하러 갈 거다. 하하.
[박민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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