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미로운 침묵의 화음 - 칼릴 지브란, 예언자 3 [문학]

3부, 결혼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5.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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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다. 많은 생각이 드는 챕터. 그것을 얘기하자면, 우선 내 꿈이라 하겠다. 아직 그것이 내게 먼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의 끝없는 상승 상 像에 대해서 찬미하고(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회차, ‘십자가와 왕관’ 참조), 기꺼이 그 험난할 아름다움을 따르고자 기도하는 한편으론, 어딘가 종착할, 닿을 곳을 동시에 꿈꾼다.

 

말인즉, 한동안 줄곧, 더욱 큰 사랑을 찾아 나설 것이요, 그 사랑에 걸맞도록 나를 들어 올릴 것입니다 하고 기도 같은 다짐을 내가 단단히 얽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최선의 사랑을 만나선 그에게 도착해, 그의 곁에 머물며 그와 함께 고요히 늙어갈 것이라는, 일종의 도달할 곳을 상정해두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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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그럴 것이다. 영원토록 더 높은 사랑을 찾아 헤매진 않을 것이고, 아마 못할 것이다. 한동안은 헤매고 헤맬 것이지만, 이 헤매는 일이 기꺼울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미래에 그렇게 닿게 되고, 또 그렇게야 닿을 수가 있었을 어떤 사랑 하나를 믿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방황은 도착해서 쉴 곳을 내가 그리어 가진 덕택으로 기꺼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랑을 찾을 때까지, ‘그때’까지가 내 방황의 기한이고, ‘그때’까지 내 방황은 필요로 된다. 내 방황은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당연하고 기꺼운 것이 된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보상, 드디어 도착해 지친 날 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도착일까. 모니터와 책에서 고개를 빼, 주변을 스윽 둘러본다. 그러면 저곳, 결코 도착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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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모종 도착일 수도 있다. 홀로 흐르던 시내가, 드디어 바다에 닿음으로써.


그리고 바다에 이르면, 이제 망연하고 더욱 거대한 항해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결혼 結婚을 정말이지 말뜻 그대로 해석하여 '혼을 맺는 일'이라 받아들이기로 한 이에게는, 그 너머로 뻗어 나갈 생애가 정말이지 망망한 항해로 보일 것이다.


제 홀로 몸도 못 가누는 우리 작은 이들에게, 혼으로 엮어 들어와 언제까지고 쭈욱 함께해야 하는 동반자의 현현, 무정형으로 뻗어나는 자신의 줄기로 얽어 들어온 다른 영혼의 줄기, 그렇게 등나무처럼 얽어선 키스로 합해가는 그 영혼‘들’이 가지는 벅찬 무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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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너는 참 지나치게 낭만적이구나 하고 만다. 나라고 왜 모를까, 이런 이야기가 가지는 필연의 한계와 너희가 이 말의 위로 가지는 그 해석의 까닭을.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야기, 아니 사실은 더욱 결연하고 긴장 어린 이야기이다. 모니터에서 모가지를 빼, 주변을 둘러보면 전부, 권태로 쥐 끌리며 버티고 애쓰는 이들의 초상들. 나라고 다르리라 추호 생각지 않는다.

 

*

 

결혼을 두고 말을 할 적에, 나는 언제나 그것은 나의 꿈이라고 먼저 말을 하게 되더라. 즉, 그 단어를 보거나 들을 때 가슴 안으로 꽉 메여오는 그림 하나를 내가 가지고 있고, 그때에 떠오르고, 떠오르니 곧 뭉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건 어떤 그림일까, 즉 어떤 환상이었을까. 들여다보니, 보다 완성에 가까이 가있는 두 사랑의 짓는 표정이 있다. 느긋한 두 사람의 위로, 반쯤 섞이며 하나로 합쳐져 있는 영혼의, 평온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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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삭막한 내게 영원한 사랑의 그림은 잘 짜이지 않는다. 일단 그 사랑을 내 곁의 숱한 사랑인, 젊은 우리 사랑이라고 한다면은 말이다.


젊은 우리 사랑들, 낯설고 설레고 두근거리는 것들로부터의 일렁임. 말하자면 새벽에 잠깐 뜨인 눈을 곧바로 틔울 만큼으로 강렬한 힘, 강렬한 충동과 추동. 높고 거세게 타는 그 예쁜 불,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 그 예쁜 불. 어둔 밤에, 어둔 밤이라 더 예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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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어여삐 여기는 만큼, 그러나 불은 내게로 오더라. 그리다가 보면 나는 또 하나의 불로 화해가며, 어느새 불의 숨결을 토하고 있었다. 바라볼 때 아름다운 그 불이 내게로 와, 나는 하나의 불이 되고 나면, 바라보기만 할 때의 그 먼 아름다움이 이제는 너무 가깝다. 열렬히 찬미하는 나는 불을 토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었다. 다만 그때엔 축복 속이라 채 알 수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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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이 된 나는 태울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결국에 장작은 다하고, 우리는 모르는 새에 재의 영역으로 계절을 달리하며 시간을 뻗어 나와, 기어코 멈춘다. 불쾌하고 불편한, 원치 않는 필연의 종말, 필멸.

 

어둔 밤에, 어둔 밤이라 더 예쁜 불. 사그라질 때쯤은 다시 새벽이고, 여명은 이제 취한 나의 낯을 화안히 비추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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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안에 영원한 우리 젊은 사랑의 모습은 짜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오랜 사랑 하나를 가져볼까. 이것이 내 오랜 질문과 숙원. 잔불 같은 사랑이어야 하는 것일까. 살아보지 않고서 미리 내릴 수 없는 대답을 궁금해한 지가 오래다. 낭만적 사랑의 종말이, 내겐 필연 같아 두려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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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알미트라는 또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시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 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길,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저마다는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듯. 

 

 

칼릴 지브란, <예언자>, 3장 결혼에 대하여

 


글귀를 본다.


그러고 보면, 사랑을 찾는 내 몸짓은 대개, 외로움의 짓는 춤사위 같었다. 결혼이 내게 도착의 상을 가지는 일이란, 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매 저녁이 공허하지 않도록, 내 돌아올 품 하나를 만드는 일.


그러나 영원히 호흡할 품이 없다는 것을 지금 떠올린다. 그 품이 만약 영원한들, 그 품속의 내 마음과 꿈이 영원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건 무엇이 되었건, 달콤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 일체가 내게 영원치를 못했다. 다만 나의 한계인 것일까, 권태는?

 

그 어떤 아름다운 것도 영원하질 못했다. 그것은 비단 사랑이건 무엇이든 아름다움이면 그랬다. 언제까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 하는, 모험 혹 방랑의 별이 나의 타고난 별인, 숙명이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등이 굽고, 무릎이 떨리는 흰 서릿발의 시기가 되어서도 나는, 지금에 그렇듯 모험과 방황과 여정을 지속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이 그러나 대단히 회의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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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 사이 영겁의 순환 속에, 도착 없는 여정을 나는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불가하다 하겠다. 지금 내 방황 혹 여정은, 미래 어딘가 도착을 담보로, 그 종착을 담보로만 환히 피어날 수가 있다. 그래 도착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다면, 어느 품을 꾸어보아야 옳은가. 어느 품을 찾아 바야흐로 안길 수가 있고, 안기어도 좋을 것인가.


아니 애초, 안기어 도착하려는 그 마음이 문제였던 것일지. 함께 노래하고 춤추되, 각자는 고독하여야 한다는 저 말씀 위로 생각이 새로 떠오른다.


두 영혼이 하나의 지붕 아래에 기거하며, 각자의 날개는 경계를 풀곤 저희를 합하여 서로 끌어안는다. 장차 너무 가까운 거리, 허물어버린 경계로 이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슬픔 들이 아마 피어오르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흰 날개 안쪽 편에는 서늘한 칼날이 숨겨져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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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쩌면 말씀대로, 하나의 지붕 아래 두 사람, 영혼의 결합을 맹세한 우리 부족한 둘은 다시, 역설적으로 바람이 통할만 한 거리를 재설정해야 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 거리가, 아픔과 상처와 도피와 기피로서의 움츠러듦, 이런 것들에서 비롯되어선 분명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의젓한 두 사람이 맹세로써 마련한 거리가 아니라, 나약한 두 인간이 서로를 도망치면서 생겨나는 아득함이기에. 도망칠 수 없는 하나의 지붕 아래에서, 언제까지고 서로를 도망치려 하며 생겨나는, 우리의 것이 아닌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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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등나무 줄기와 같이 얽어가는 동시에, 마음의 품에는 바람이 통할 공간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저 오묘하고 어려운 말씀을 본다.


서로는 서로를 애틋이 여기되,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기대어선 아니 된다는 말씀이실까. 이유라 하자면, 한 인간의 여력은 무한하질 않아서, 당신을 할 수 있는 한으로 안아보려 한들 언젠가 힘은 다하고, 그땐 같이 무너질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있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때로 함께 즐거워하고 때로는 함께 슬픔을 나누되, 여전히 우뚝 선 각자의 두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실까. 이유인즉, 어느 한 편이 다른 한편을 온전히 의지하고, 또 온전히 받아내련 들, 영원히 품어낼 순 없을 까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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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안길 곳이 아니었던 것일까.


홀로 걸어오고, 걸어갈 나의 오솔길 위에 슬며시 나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간 드디어 나란히 서서, 저 앞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손 하나 살포시 잡는 모양인 것일까. 항해는 끝이 없기에, 죽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도착의 꿈은, 그저 내가 그를 간절히 하는 때문에 피오르는 갈증일 것이다. 저곳은 도착과 둥지가 아닌, 하룻밤 베고 잘 무릎이라 함이 옳을지 모르겠다. 아침이 오면, 다시 우리는 솔길을 걸어야 할 것이기에. 나는 당신을 베고서도, 당신은 나를 베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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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식탁에 앉아 각자의 잔을 서로가 따라 주고, 잔을 부딪힌 다음, 각자의 잔을 마신다. 진 붉은 포도주의 잔, 맑은 크리스탈의 윤곽 안쪽으로 흘러들어 따라지는 것은 서로의 영혼. 그 포도주 곁의 빵은 서로의 마음.


식사를 마치곤 함께 음악을 들으며, 왈츠를 출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는 고독할 수 있어야 하리라. 그것은 늘상 고독하란 말씀이 아니다. 필요한 고독이 우리 둘 중 누군가를 찾을 때, 곧바로 함께 고독을 그려낼 수 있도록 하란 말씀이리라.


한 지붕의 두 영혼은 정수리 위로 등나무의 줄기를 드리워, 이 지붕 위로 뻗어내어선 서로의 가지에 얽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붕 안의 공간,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육신과 영혼의 쉬일 곳인 여기에는 솔바람이 드리워야 한다.

 

언제나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살아낼 수는 없을 것이기에. 우리는 이따금 춤추고, 노래하고 하겠지만, 가끔은 각자의 시간과 공간으로 골몰해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것은 필요한 일, 그런 때에 당신은 서운해하지 마시기를.


함께 같은 지평을 서 있으되, 바람 통할 만큼은 떨어져 있길. 같이 서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손 하나 잡을 수 있을 만큼은, 바람이 지날 만큼만 떨어져 있길. 나는 어느 밤에는 너무도 지치어, 소파에 누워선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아시길. 그런 나를 몹시 아쉬워하여, 원망하지는 말아 주시길. 그곳에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곳에서 당신은 누워, 감미로운 침묵을 함께 노래해 주시길. 나 또한 당신의 고요에 화음을 노래하기 위해, 지금 벌써 연습하고 있다.


사랑이 이유로 우리, 모든 두려운 고독을 틀어막으려 하지 않길. 그것은 불가한 일, 불필요한 일이기에. 또한, 사랑이 이유로, 모든 우리 고독을 흩어내리라 기도하지 마시길. 그것은 불가한 일, 외려 상처만 남길 불가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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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 고독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나와 네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때 나무는 숨 쉬고 자란다. 거기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함께 얽어가 지붕을 덮고선, 서늘하고 든든한 그늘을 드리워 줄 우리 둘의 나무가.


그리고 우리의 몸체는 또한 이 집의 기둥이 되어, 서로 눈빛으로 이어진 채 너는 저편 나는 이편 대척에 서서, 하나의 사원을 이룰 수 있기를. 그 안에는 장차 새 생명이 찾아와, 아무것도 모르는 헤살거리는 눈빛과 미소로 당신과 나를 번갈아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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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은 우리 사랑을 나는 믿지 못한다. 내가 불신자인 까닭일까. 그러나 이렇듯, 고요하고 든든하게 얽어져 서로의 고독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조용한 침묵을 축제의 화음으로 만들어 주는 서로가 될 수 있기를. 그럴 수 있는 정말로 동반자인 당신뿐일 것이니, 우리 축제를 즐기고, 축제가 끝난 밤을 외로워하지 않도록, 서로의 밤을 가만히 지켜줄 수 있길.


이것이 나의 꿈이다. 

무작정 나를 안아줄 당신도, 

무작정 내게 안길 당신도 아니고, 

고독마저 화음으로 만들, 내 평안과 평화일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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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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