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낭만의 시간을 걷다: 성미경 더블베이스 리사이틀

글 입력 2020.05.3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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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는 꾸준히 음악회를 다니던 여느 해에 비해 공백의 시간이 길었다. 2~3월에는 공연장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올 상반기에는 홀에서 음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취소되지 않고 무사히 열리는 공연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와닿는다. 이번 5월 3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성미경 더블베이스 리사이틀 역시 무척 소중한 공연이었다. 더블베이스 리사이틀이 이번 무대가 처음이라 기대가 컸는데, 코로나 시국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체념을 내심 미리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히도, 이번 성미경 리사이틀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무사히 진행되었다. 물론 공연 전에 철저한 사전점검이 병행되었다. 현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공연 목적으로 출입하는 경우, 중앙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출입 시 인적사항을 기재한 후 체온에 이상이 없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지난 4월 말에는 인적사항을 제출한 뒤, 하우스 어셔가 비접촉식 체온계로 모든 사람의 체온을 직접 측정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출입 시에 약간의 대기줄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체온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더 신속하게 체온을 측정함으로써 출입문 앞에서 사람들이 밀집하는 상황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PROGRAM


F. Schubert       D. 957 중 ‘4. Ständchen’ in d minor


F. Mendelssohn       Cello Sonata in D major No. 2, Op. 58


INTERMISSION


S. Rachmaninoff       Cello Sonata in g minor, Op. 19



 

 

베이시스트 성미경은 강렬한 느낌이 드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나섰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무대에 나선 그가 보인 첫 곡은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4번 세레나데였다.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유명하면서도 우아한 곡이다. 원곡이 첼로곡인지라 공연을 보기 전에는 첼로 선율로만 들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무대를 기다리면서도 다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치 깊은 내면의 소리가 퍼져나오는 것처럼 울림이 있는 첼로의 선율로만 듣던 것을, 이번 무대에서는 전부 더블베이스의 소리로 들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관현악곡에서 주로 듣던 더블베이스의 소리는 말 그대로 베이스 선율을 연주하기에 주선율을 연주하는 게 잘 연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주 낮아서 거의 둥둥 거리는 소리에 가깝게 들리는 더블베이스의 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듯하다. 그러나 성미경의 손끝에서 더블베이스의 첫 선율이 시작되는 순간, 이전에 들던 모든 생각을 멈췄다. 더블베이스가 이런 악기라는 걸 그 순간 새롭게 알게 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깊은 소리가 나면서도, 고음에서도 아름다운 음색을 느낄 수 있었다.


*


이어지는 1부 두번째 곡은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2번이었다. 피아노와 더블베이스 모두가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며 가득 채우는 1악장은, 공연장에 오기 전에 음원을 들으며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더블베이스가 첼로보다 훨씬 크다보니, 핑거보드 역시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넓은 핑거보드의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넓은 범위를 쉴 새없이 넘나들며 연주하는 베이시스트 성미경의 모습은 공감각적으로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블베이스로 이렇게 풍부한 소리를, 저렇게 격렬한 연주를 통해 쏟아내는 것이 어찌 인상에 남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격동하는 리듬감이 충만했던 1악장에서 이어지는 2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이다. 부드러운 연주와 피치카토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성미경의 선율은 아주 익살스러웠다. 넘치는 에너지를 조화롭게 보여준 1, 2악장과 다르게 3악장에서는 노래하는 듯 아름다운 아다지오를 만날 수 있었다. 바흐에 영감을 받아 멘델스존이 만든 이 악장은 피아노의 유려한 아르페지오로 도입하는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부드러운 터치에 이어 들어오는 성미경의 베이스는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경건하게 환기되었던 공기는, 4악장에서 다시금 전환되었다. 빠르고 활기차게 절정을 향해 질주해가는 피아노와 더블베이스를 보는 것은 굉장히 생경했다. 뛰어난 테크닉이 요구되는 이 악장을, 원래의 연주대상 첼로가 아니라 더블베이스로 연주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새롭고 짜릿한 일이었는지, 그 때 객석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항상 피날레로 가는 길은 고조되는 감정과 함께 대미를 장식하며 끝났지만 오늘 이 무대에서 멘델스존 첼로 소나타가 그 끝을 맞이한 순간 느꼈던 그 감상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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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을 가진 뒤 맞이한 2부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였다. 단조인 이 작품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베이시스트 성미경은 2부 공연을 위해 블랙 드레스로 환복하고 무대에 나섰다. 섬약하고도 절제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1악장 서주에 정말 잘 어울리는 착장이었다. 느린 서주를 지나 점차 피아노와 베이스의 선율이 적극적으로 얽혀들기 시작하자 낭만주의의 향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1부의 작품들에서는 피아노가 확실히 반주하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일리야의 연주가 적당히 가미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일리야와 성미경이 아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완성해나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현장에서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강했다. 1악장의 깊은 울림 그리고 2악장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모두 성미경의 손끝에서 나오는 베이스 선율이 큰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그 정서를 더욱 극대화하는 건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섬세한 터치였다.


특히나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은 3악장 안단테였다. 노래 악장으로 만들어진 이 악장은 녹아내릴 듯이 유려한 피아노의 아르페지오와 함께 베이스의 풍부하고 깊은 중저음이 함께 어우러져 러시아적인 서정성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3악장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터치가 이번 무대의 그 어느 작품 어느 악장에서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거기에 성미경의 선율이 첼로로 들려줄 수 있는 선율보다도 훨씬 더 깊고 호소력이 있어 정말 단숨에 매료되었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애틋한 동시에 사랑스러운 그 모든 감정을 더블베이스의 풍부한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장조로 전환된 3악장의 분위기를 이어서 4악장은 드라마틱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전개되었다. 성미경과 일리야가 연주하는 선율의 에너지는 1악장과 2악장처럼 역동적이면서, 선율 속에 담긴 정서는 3악장의 정서를 발전시킨 듯했다. 그만큼 열정적이고 아름다우면서 강렬한 주제가 4악장을 온전히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금 이번 리사이틀의 부제를 상기하게 됐다. "낭만의 시간을 걷다." 그랬다. 러시아 낭만이 집약된 듯, 온전히 라흐마니노프의 세계에 빠져드는 피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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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슈베르트도, 멘델스존도 좋았지만 성미경의 라흐마니노프는 정말로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인상적인 연주였기 때문이다. 객석의 환호를 받아 성미경은 일리야와 함께 다시 무대 위로 나와 앵콜곡을 연주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Kicho였다. 본 무대에서는 거의 없었던 거칠고 퉁퉁 튕기는 베이스 소리를 원없이 들을 수 있었다. 격렬한 에너지와 넘실대는 감성, 그 모든 것이 집약된 아주 정열적인 앵콜이었다.


*


이 앵콜곡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객석의 박수소리에 다시 무대로 나온 성미경은 특별한 앵콜곡이 더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양해를 구했다. 어떤 무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잠시간의 세팅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무대로 나아오는 성미경의 뒤로 세 명의 베이시스트가 함께 나왔다. 더블베이스 4중주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첫 곡은 토니 오스본(Tony Osborne)의 "The Pink Elephant"였다.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재지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원곡이 따로 있고 더블베이스 4중주로 편곡한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1980년대 초 베이스 콰르텟을 위해 작곡된 작품이었다. 객석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남성 연주자가 베이스 비트를 연주하고, 그 왼쪽에 위치한 세번째 연주자가 피치카토로 음을 넣는 동시에 첫번째 연주자는 주 선율을 그리고 두번째 연주자가 베이스 선율을 끌고 가는 게 아주 보고 듣기에 즐거웠다.


뒤이어 콰르텟은 바로 조지 막호쉬비니(Giorgi Makhoshvili)의 "Organic"을 연주했다. 이 역시 더블베이스 콰르텟을 위한 작품이었다. 풍부한 베이스 비트와 베이스 선율, 그리고 호소력 짙은 주선율과 화음의 조화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자주 접할 수 없는 더블베이스 연주를 객석에 다양하게 들려주기 위해 미리 준비한 베이시스트 성미경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졌다. 재즈풍의 분위기에서 예상치 못한 끝맺음까지, 신선하고 즐거운 연주였다.


*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충분히 감사한 무대였다. 그런데 베이시스트 성미경은 여기에 하나를 더 준비했다. 놀랍게도 더블베이스 6중주 무대였다. 앵콜의 피날레 무대는 스테판 쉐퍼(Stefan Schäfer)의 "Poker Face"였다. 더블베이스만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앙상블이었다. 6개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시에 6대의 베이스 하나하나의 선율을 듣는 재미도 풍부했다. 특히 작품이 끝날 때까지, 두번째 베이스 연주자(성미경의 소개로는 베이시스트 서지은이었다.)는 베이스 오스티나토를 끝까지 연주했다. 변주 없이 같은 소절을 연주하는 게 쉬울 수도 있지만 높은 음을 내야 하기에 핑거보드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계속 연주해야 해서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았다. 피날레에서는 그 오스티나토 부분을 디크레센도로 성미경이 연주하며 이번 리사이틀의 끝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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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실제 연주를 들은 더블베이스 리사이틀이 성미경의 리사이틀이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블베이스에 대해서 퉁퉁 거리는 소리가 나는 저음 악기, 고음을 연주하기는 어려워 독주하기엔 어려운 악기라는 일반적인 편견을 철저히 불식시키고 더블베이스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해주겠다는 성미경의 포부가 아주 확실하게 느껴지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번 성미경 더블베이스 리사이틀에서 본 그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통해 더블베이스가 그 큰 몸집만큼이나 풍부한 선율과 감성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본 무대만큼이나 앵콜곡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져, 관객으로서 너무나 감사한 무대였다. 객석을 위한 앵콜곡을 1곡만 연주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무대다. 연주자가 사전에 안배를 했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성미경은, 더블베이스의 독주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객석을 배려하여 본 무대만큼이나 풍부하게 더블베이스 작품들을 연주해주었다. 그것도 첫 앵콜곡만 빼면 나머지 세 곡은 모두 더블베이스만으로 연주되는 곡이었다.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더블베이스만으로 앙상블을 이끌어 나가는 성미경의 모습은 연주자가 아닌 나에게도 너무나 큰 귀감이 되었다.


베이시스트 성미경 덕분에, 더블베이스를 더 알고 싶어지게 되는 무대였다. 잦아들 듯하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코로나로 인해 내심 지쳐가던 상황에서 그가 들려준 풍부한 베이스의 감성은 마음 속의 찌든 때를 다 씻어내 주는 듯했다. 온전히 낭만의 시간을 준비해 모든 이에게 위로를 전했던, 성미경의 더블베이스 선율. 이번 무대에서는 첼로 작품들을 더블베이스로 표현해 주었다면, 다음번에 그를 만나는 무대에서는 더블베이스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블베이스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주면 좋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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