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삶의 개척자는 나니까 [영화]

글 입력 2020.05.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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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톰보이를 보았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소재라는 생각과 동시에, 영화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한 번쯤은 다시금 되짚어보아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톰보이'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이는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여성, 특히 그중에서도 10대의 여자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로써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인 Tom에 소년을 뜻하는 Boy를 붙여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성적 기호와 상관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자체를 뜻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한국어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말괄량이 정도로 표현된다고들 한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톰보이를 멋진 대상에 대한 감탄사적인 의미로써 사용하는데, 한편으로는 그러한 긍정적인 의미와 달리 성별에 따른 사회적 성 역할을 구분 짓는 듯한 의도로도 받아들여진다.

 

용어를 해석하는 데 있어 편향된 관점은 좋지 않지만, 보통 여자아이들의 옷차림보다는 남자아이들의 옷차림에 가까우며 소녀들보다 소년들과 더 잘 어울리는 모습에서 톰보이의 유래가 나온 것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실제로 영화 <톰보이>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지닌 주인공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미카엘이든, 로레이든지 간에 너는 그 자체로 빛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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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보이>는 내가 원하는 '나'이고 싶은 10살 미카엘의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여름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아이 로레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꽤 잘 어울리는 짧은 머리를 가진 소녀로, 출중한 축구 실력을 겸비해 친구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하지만 로레는 자신을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으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찰흙으로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의 일부를 만들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적 구성은 그러한 로레의 모습을 남성 혹은 여성의 성 정체성으로 명확히 구분한 뒤 한정 지으려 하지 않는다. 더하여 트랜스젠더적인 성향을 띠었거나 훗날 띠게 될 것이라는 암시 혹은 확정조차 내리지 않는다. 그게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 또는 메시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로레가 가진 온전함, 그 자체를 비추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로 태어났지만,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도 로레와 같은 삶의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훗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어떠한 형상을 띠고 있는지를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주저 없이 행해보고 시도해본 로레, 그를 마냥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만 한정해놓고 바라보기엔 로레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삶의 가치들을 선사해준다. 사회가 정해놓은 한정된 규율이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 과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로레를 보며 나 역시도 정해진 틀 안에서만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헤매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발걸음에 그대로 발맞추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게 안정적이고 못해도 중간은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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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 사이에 놓인 아슬아슬한 경계선은 사람들을 갈망하게 하고 우려하게끔 만든다. 그게 위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본능이자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억압적인 배경에서 벗어나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거기에는 진정한 나의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규율은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시스템이나 마찬가지인데, 때로는 그러한 법칙이 극단에 치닫게 될 때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까지도 가로막아 버린다.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만큼의 능력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뽐내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로레의 동생인 '잔'은 로레가 마음껏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펼치고 탐색해나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와 존중을 더해준다. 잔 역시 어린아이지만, 그의 언행이 내포하는 건 세상, 그리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로써 비추어진다.

 

아무런 편견 없이, 대상을 재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의 온전함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태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전반적인 목표다. 물론 사회 안에서 살고 있고, 거기에 따른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편견이 우리도 모르게 스며들어 자리 잡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으로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평가하거나 부정적인 틀에만 본인의 시각을 끼워 맞춘 채 바라본다면, 그 사람조차도 자신의 가능성을 순간순간 무마시켜버리고 있는 것과 똑같다.

 

타인을 인정과 존중으로 대하는 건, 곧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존중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레의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는, 잔과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톰보이>를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나 자신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바를 나름대로 정리해보니 영화 속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시대상을 대변해주는 듯 보였다.


 

 

삶의 개척자로서의 나, 결국 사람들 모두가 '톰보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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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중반, 미카엘이기도 했던 로레는 자신의 존재를 진정으로 깨달은 듯 보였고 영화의 막바지에는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이름은 로레야"라는 그의 마지막 대사에 담긴 의미는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결국 모든 사람이 톰보이라는 걸 관객들로 하여금 시사해줌으로써 막을 내렸다.

 

로레는 삶의 개척자였다. 그냥 단지, 자기가 원하는 삶을 개척해보려 노력하고 도전해보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본인 스스로 해본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만들어놓은 편협한 시선에 빗대어, 로레의 모습을 마음대로 평가하거나 깎아내리려 한 세상의 분위기는 이미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로레는 약해지거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자기 본연의 가치를 일구어내기에 이른다. 그의 삶의 태도가 당당하면서도 닮고 싶었다. 삶의 주인으로서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 그 어떤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까?

 

영화 <톰보이>는 나름의 주제를 표명함으로써, 바로 이러한 물음에 관해 보다 정확하고 일리 있게 답변해준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경쟁과 치열한 현실에 지쳐 원동력을 얻고 싶을 때, 삶의 개척자가 나라는 걸 다시금 나의 내면에 각인시키고 싶을 때, 그때 다시금 꺼내어 보고 싶은 소중한 영화다. 톰보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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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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