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있어 보이려다 진짜 있는 놈이 됐다 [도서]

글 입력 2020.05.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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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예술을 하는 사람도 빠져있는 사람도 참 많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어찌 보면 예술을 하는 사람 들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예술을 겪어야만 하니 예술의 사춘기, 다시 말하자면 주변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시절을 따라오는 중2병은 답이 없다. 언제 어디서 걸렸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감염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나는 남들과 다르고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려고 부단히 도 애를 쓴다. 그런 반면에 속은 텅 비었다. 겉으로만 있어 보이려고 할 뿐 속은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재즈라는 단어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 재즈 좋아해요’ 한 마디로 지적이면서도 예술적 감성이 풍부하며 어딘가 섹시한 매력마저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함축할 수 있다. 집에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유튜브에서 ‘재즈’를 검색해서 누군가가 올려놓은 트랙을 듣고 있으면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돌아온다.

 

“좋긴 좋은데 이게 무슨 노래지?”라는 의문이 내 뒤통수를 후려 치며 정신 차리라고 나무란다. 따지고 싶은데 아는 게 없으니 따질 수도 없다. 이전까지는 그랬으나 어쩌다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나는 어쩌다 진짜 있는 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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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니 있는 놈이 됐다



재즈가 나로 하여금 악기, 자유로운 연주, 위스키, 흑인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왜 이런 단어가 먼저 생각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까먹고 생각이 안 날 때 느끼던 기분을 지금 품고 있다. 오늘은 왠지 잠을 못 이룰 것 같은, 꼭 알아 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 기분을 재즈를 듣는 매 순간마다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초창기 재즈는 미국으로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인들이 불렀던 노동요와 그들이 참석했던 교회에서 부르던 가스펠이 다양한 음악적 경향과 만나 만들어졌다. 재즈가 하필 뉴올리언스에서 태동하게 된 이유는 국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했거니와 뉴올리언스가 속한 루이지애나주가 과거 프랑스령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와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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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새로 살 때 상자를 개봉하고 설명서를 읽기보다는 설명서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일단 이것저것 만져가면서 익혀가는 게 보통의 우리들이다. 물론 곧잘 다루게 되고 금방 기능들을 익힐 수도 있지만 새롭게 탑재된 기능은 사용할 일이 없으면 놓칠 수도 있고 설명서를 읽었다면 보다 다양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즈를 그냥 좋아서 막연히 듣던 때와 달리 어쩌다 태어난 음악이며 어떤 가치와 역사를 지녔는지에 대해 배운 뒤 다시 한번 재즈를 들을 때는 같은 노래라 할 지라도 그 맛과 매력이 좀 더 진하게 느껴진다. 노동요와 가스펠이 섞인 탓인지 일 할 때보다는 퇴근 후 집에서 쉴 때 더 듣기 좋았던 이유가 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여러 문화가 섞여 있던 곳이라 그토록 자유롭고도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지는 노래가 태어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In The Mood’라는 이 모든 배경을 직접 들으면서 느낄 수 있는 곡까지 추천 해 주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고 듣다 보니 점점 더 빠져든다.

 


재즈 초심자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연주 스타일과 인생 이야기도 더했다. 재즈의 탄생과 변화의 기반이 된 문화적, 역사적 배경도 함께 살펴본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큐알코드로 해당 뮤지션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바로바로 즐기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가장 와 닿았던 점이 ‘초심자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이라는 점이다. 심성 자체가 효율적인걸 좋아하다 보니 쓸데없이 거창하고 괜스레 어려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싫어한다. 국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영향인지 간결하고도 쉬운 문장으로 필요한 내용만 쏙쏙 집어주니 나는 그저 어미새의 모이를 받아먹은 새끼처럼 가만히 눈으로 받아먹고 귀로 좋은 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듣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London Gets Ready를 들으며 결혼식의 밝은 기운이 넘치는 장면을 떠올리고 Bass On Top을 들으며 베이스 소리에 담긴 콧대 높은 자존심을 여지없이 뿜어내는 연주자에 귀를 기울인다. ‘아, 좋다’, ‘연주 잘하네’ 따위의 실없는 소리와는 이미 격이 달라진다.

 


 

좋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나는 와인을 잘 모른다. 눈앞에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으면 색을 보고 이게 레드 와인인지 화이트 와인인지 정도는 구별할 줄 알지만 그게 끝이다. 한데 어떤 이들은 한 병의 와인을 두고 드라이함은 어떻고 스위트는 어떻고 바디는 무겁니 가볍니 하며 신나게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뭐 저렇게 있어 보이는 척하느라 난리인가 하면서도 어려운 말들이 난무하는 저 대화에 끼고 싶기도 하다. 도전해 볼까 하다가도 와인은 비싸고, 저런 용어들을 공부할 시간도 없고 이해 하지도 못 할 것 같으니까 시작도 전에 포기한다. 초보자도 아닌 사람들이 바라는 건 참 많다.

 


“선생님, 왜 재즈에요?”

그럴싸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깜냥이 안 되니 볼품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냥, 내가 좋아해서”

예상과 달리 은정이는 아주 흡족해하며 그럼 신청하겠다고 했다. 역시 아이들 마음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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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취미도 분명 있다. 반대로 그렇게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는 취미도 분명히 있다. 내 경우에는 집에서 핸드 드립을 즐기는 편인데 커피 원두는 1kg에 3만 원 내외로 살 수 있고 이 정도 양이면 최소 한 달은 넘게 마실 수 있다. 핸드 드립 세트도 요즘은 5만 원 이하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다만 진입 장벽이 이렇게 낮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선 핸드 드립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먹는 일과 구매할 제품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덧붙여 이를 위해 요구되는 사항은 ‘좋아하는 것’이다. 높은 지식이나 경제적 여유 따위가 아니라 그냥 ‘난 이게 좋으니까 해볼래’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심플한 마음가짐이다.

 

재즈도 제목처럼 어쩌다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한 번 듣게 된 것이 꽤나 내 취향에 맞아 찾아 듣는 상황에 이르렀다. 듣다 보니 좋아졌고 좋아지니 좀 더 알고 싶어 졌다. 처음부터 어려운 단계로 올라가면 나가떨어질게 분명하니 어디 쉽게 배울 수 있는 책 없나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이 책을 발견했고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내가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의 Moanin’을 들으며 경쾌한 드럼 비트를 따라 그루브 있는 몸짓으로 뜻하지 않게 태풍에 날아가지 않으려 애쓰는 밭의 허수아비를 훌륭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됨과 Lee Morgan의 Cornbread 속 잠을 깨우는 트럼펫 소리에 맞춰 한 잔의 모닝커피를 즐기며 꼴에 폼을 잡다 뜨거운 물이 담긴 드립 포트를 맨 손으로 잡아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도 그 단순한 ‘좋다’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좋아서 재즈를 찾아 듣지 않고 책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도 그저 방구석에서 유튜브 자동재생이나 틀어놓고 시간을 죽이는 소파 위의 감자도 아닌 소파 구석에 처박혀 있다 잊힌 채로 어느 날 말라비틀어진 쓰레기로 발견될 미래를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들어보고 계속 듣고 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마음도 뺏기는 게 세상 일이다. 어쩌다 한 번 재즈를 들어보는 것도 좋아하는 일을 어쩌다 한 번쯤 질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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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부  제 ㅣ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지은이 ㅣ 이강휘

판  형 ㅣ 130*190 mm

쪽  수 ㅣ 208쪽

가  격 ㅣ 14,000원

ISBN ㅣ 979-11-89620-71-4 (03670)

발행일 ㅣ 2020년 5월 11일 

분  류  |  국내도서 > 예술 > 음악 > 음악일반/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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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에세이 > 예술 에세이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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