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과 의지로 빚어낸 삶의 기적 - 책 '어드리프트'

글 입력 2020.05.2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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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죽음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식사를 하는 피곤한 아침도, 눈 감고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귀가길의 일상도 끝이 있다. 삶을 채우는 사사롭지만 소중한 것들, 때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잘것 없어서 무한할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 나의 시간은 알고 보면 빚일 뿐이다. 내일에 빚진 오늘. 그리고 그 내일마저도 끝이 있다.

 

만약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오늘의 끝이 존재한단 걸 깨닫는다면.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 아득할 정도인 삶의 무게와 죽음의 공포를 마주한다면. 과연 나는 절망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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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어드리프트>는 바다에 표류하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생존적 의지와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다. 어떤 허구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일화를 담은 이야기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태미와 바다를 사랑하는 남자 리처드의 이야기. 낯선 땅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리처드의 배를 타고 세상 위를 항해한다. 하지만 청춘의 낭만도 잠시, 갑작스런 허리케인을 만나고 모든 것이 전복된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울 속 피투성이가 된 자신과 엉망으로 부서진 배만이 덩그러니 바다 위를 떠돌고 있을 줄은.


그 수많은 파편 중에서도 리처드가 없음이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태미는 왜 난 살아있을까 고민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럼에도 아직 살아 있으므로' 쉴새 없이 몸을 움직인다.


환청은 일상이 된다. 그것은 낯선 목소리일 때도, 자신의 것일 때도, 혹은 리처드의 것일 때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만들어온 묵직한 추억이 오히려 닻이 되어 그녀를 심해로 끌어내리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생을 택한다. 책은 표류 당시를 겪은 태미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게 만든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생각하면 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무거운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긴장으로 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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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자가 아닌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태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소소한 상상을 하는 부분. 심리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며, 생존을 향한 의지가 죽음을 향한 의지보다 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 곱씹는다.


생존을 향한 의지가 죽음을 향한 의지보다 강한 이유. 태미는 이를 궁금해했지만 그녀를 지켜보노라면 생존은 그저 그 자체로 가장 강한 의지임을, 어쩌면 생존에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을 느낀다.


살아있기에 살아간다. 모든 것을 덜어낸 담백하기 그지 없는 논리이나 때로는 이 최소한의 이유가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된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살아 돌아온 생존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통조림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자연의 막연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자신의 계산과 판단을 놓지 않고 2천 4백 킬로미터를 항해해온 태미. 그녀의 삶은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을 돌아보며 감사할 힘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굳건한 용기를 준다. 살아있기에 살아가도 될 것이라는 용기를 준다.


설령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온대도 내게 주어진 시간과 존재함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힘을 끌어올리고 함께 쌓아온 추억을 동력으로 앞으로 다시 나아가면 된다. 영겁의 무게를 견뎌온 이 땅 위에 나란 존재는 참 덧없고 사소해서 내 발버둥이 운명을 바꿀 힘이나 있을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를 가만히 떠올린다. 사랑과 의지로 살아남은 그녀는 결국 기적을 일으켜 41일만에 구조됐음을. 어쩌면 책 <어드리프트>는 아주 거대한 의지와 용기 그 자체의 이야기다.

 

책은 일단 그렇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태미의 삶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책장 너머에 이어지는 그녀의 삶도 한 편의 영화다. 태미는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1백 톤 범선 항해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삶과 죽음과 사랑과 절망이 공존했던 그 바다 위를 다시 거닐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바다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사람이다.

 





어드리프트
- Adrift -


지은이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
 
옮긴이 : 신솔잎

출판사 : 빌리버튼

분야
외국 에세이

규격
140*200mm

쪽 수 : 312쪽

발행일
2020년 05월 01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88545-83-4 (03840)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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