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임계장이라는 이름 [도서]

글 입력 2020.05.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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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이라는 이름


 

2020년 5월 10일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경비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공분과 함께 국민 청원이 올라왔고 비슷한 시기 출간된 『임계장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이책은 정년퇴직 후 비정규 노무직에 뛰어든 저자가 버스회사의 계장, 아파트와 빌딩의 경비원, 터미널 보안요원을 거쳐 쓴 시급 노동의 기록이다.


이 책은 생계 노동의 사각지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하며 노동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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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자.’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 는 별칭으로 불리는 고령층 비정규직은 견딜 만 해서가 아니라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오늘도 휴식 없이 일한다.


24시간씩 격일로 일했던 경비 초소는 몸 하나 다 뻗을 수없이 좁고, 계절의 엄혹함이 피부에 그대로 닿을 듯이 부실하며, 그 밤을 보내는 일이 ‘끔찍했다’고 말할 만큼 열악하다.


책상에 쌓인 지원서들을 보며 자신이 언제든 대체가능한 부품이라는 걸 느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가장 아래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떠맡아 했던 숱한 날들, 피부의 부스럼과 악취, 부패한 음식물이 떨어지지 않는 쓰레기통, 똥물, 등 뒤로 들리는 욕지거리,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는 말은 너무 생생해서 차라리 허구라 믿고 싶었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p)



가장 마음 아픈 건 그들 대부분이 그래도 괜찮으니 이 노동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던 그의 일터, 그의 노동은 윗사람의 심기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사라진다.


이 노동은 불안정하고 그만큼 너무 쉽다. 경비복을 맡기러 간 세탁소에서 ‘이 정도로 심한 곰팡이까지 세탁해 주는 세탁소가 없다’는 답을 듣는 장면을 읽을 땐 눈알이 아팠다.


이 앞에서 노동의 존엄을 그 누가 들먹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것이 돌아오지 않는 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찬찬히 기억하는 일처럼 느껴져 자주 눈이 멈췄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내내 복잡한 감정에 잠기다가도 항상 죄책감으로 귀결된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39p)



누구보다 힘껏 일하는 한 명의 노동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노동을 생각했다. 성인이 된 후로 지금껏 쉼 없이 해온 노동을 돌아봤고 내가 하게 될 노동을 희망도 해봤다. 불공평한 구조에서 운 좋게 자리 잡았다고, 살아남았으니 그거면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 콜센터 소식 들었지? 거기는 200명이나 되는 상담원들이 닭장 같은 방에서 하루 종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일한다지 않아? 조류독감 때 양계장 닭들이 떼죽음 당한 것과 뭐가 달라? 하루 10시간을 계속 말해야 하는데, 30분 말하고 나면 마스크가 침에 흠뻑 젖는다고 하대. 그런 사람들이 전국에 40만명이래.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좀 낫잖아?”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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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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