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깥을 잠시 잊고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04.29~09.13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리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글 입력 2020.05.2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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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미대생 타이틀 지키기


 

약 10년간 미술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마그리트라는 화가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유명한 파이프 그림과 공중에 떠 있는 돌덩이 그림, 비처럼 쏟아지는 사람들이 담긴 그림 정도만 알고 있는데, 이것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졸지 않은 성실한 학생이라면 누구든 알만한 그림이기 때문에, 마그리트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번 전시는 미술과는 거리가 먼, (마그리트의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그러니까 미술에 관해서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친구와 함께 가기로 계획했는데, 자꾸만 전시를 보러 가기 며칠 전부터 마그리트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고마웠다. 새하얀 도화지인 주제(?)에 자꾸 색칠을 해보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나도 마그리트에 대해서는 거의 도화지나 다름없기에 (막 스케치를 시작한 도화지라고 해주자.) 나도 잘 모른다며 얼버무려보았지만, 막상 미술관에 가서 정말로 설명하나 하지 못하고 어버버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서로가 민망해질 것 같았다. 그래, 미대생이 자존심이 있지. 일단 어떻게서든 주먹구구식으로나마 미대생에 대한 환상을 유지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그리트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잘못된 거울, 1935, 캔버스에 유채, 19x27cm.jpg

잘못된 거울, 1935, 캔버스에 유채, 19x27cm

 

 

 

02 응징과 자아성찰


 

하지만.. 고작 유튜브와 위키백과 따위로 날 알려고 해?라고 응징하려는 듯, 마그리트의 그림은 많고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작품들도 있었고 그중에서는 마그리트의 화풍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었다.


평소 혼자 전시를 보러 갔다면 그런 상황에서 그냥 '아, 저런 그림도 그렸구나.' 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을 텐데, 이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냐는 둥, 여기서 눈동자는 왜 나오냐는 둥, 왜 새장 안에 알이 있냐는 둥. 마그리트의 원래 의도는 무엇이냐는 둥. 기존에 존재하는 답을 원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고 배웠기에, 그림을 볼 때 나만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더라도, 나의 관점이 별개로 존재하는 한 또 하나의 해석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미술을 바라보는 건전한 시각일지는 의문이다. 편협한 시각에 물들까 봐, 미리 나만의 편협한 시각에 가두어버린 것은 아닐까 새삼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작가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고 봐야지!"라며 그림에 대한 설명을 간절히 원하는 친구를 보면서, 어쩌면 지금껏 내가 나의 시각을 너무나 당연하게 인정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03 전시에 대한 느낌


 

전시가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우선 토요일 오후 4시의 센트럴 뮤지엄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벼 입장 대기시간만 30분이 넘어갔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시실 내 밀집도와 줄 간격을 유지하느라 발생한 일이었겠지만, 별다른 안내 없이 계속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쉽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미술관을 찾아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마그리트의 모든 그림이 원화이길 바란 것은 너무 큰 욕심이지만, 거의 모든 회화 작품이 압축 프린팅으로 되어있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원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느껴볼 수 있도록 프린팅 소재 선택이나 전시실 조명 등을 적절히 사용하였겠지만, 원화의 표현기법인 유화 특유의 붓 자국과 텍스처가 프린팅으로는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AR 가상현실 체험을 위한 동선 설정도 아쉽다. 내 얼굴이 자동인식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에 아주 큰 화면의 나의 얼굴이 크게 나오는데, 내 뒤로 체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보게 된다(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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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안녕!"이라고 인사라도 하는 듯 전시실의 동선 사이사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대형 파이프, 초록 사과 포토존 그리고 이번 전시의 피날레라고 생각하는 인사이드 마그리트의 메인 영상 룸은 모든 아쉬웠던 점을 상쇄시킬 만큼 좋았다. 영상 룸을 다른 전시실로부터 완벽하게 차단시키지 않아서, 일정 거리가 되면 저만치부터 은은하게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혹시 작품들이 살아 숨 쉬어 춤을 춘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양쪽으로 갈라진 커튼 사이로, 애니메이션 속 이상한 나라로 초대된 공주가 된 듯한 척을 하며 한 발 한 발 디뎌 나간다.


마그리트의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의 작품세계를 한껏 반영하면서, 너무 난해하지도 너무 고요하지도 않은 음악들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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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전시장을 나오며


 

모두가 힘든 시기에, 인파가 몰릴 수도 있는 주말 오후에 미술관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전시장 내부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해서, 전시를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잠시일지라도 전시를 보는 동안만큼은 바깥세상을 잠시 잊고, 웅장한 음악과 다채로운 영상들을 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가려진 입모양은 반달 모양이었을 것이다.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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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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