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거의 온갖 것에 '어지러움'을 느꼈던 작가 월리스. '인생 멀미'를 달고 사는 통에 곧잘 창백한 얼굴이 되어 현기증을 호소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이 멀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멀미를 유발하는 세상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잡지 《하퍼스》의 제안으로 자신이 성장한 곳인 일리노이를 방문하여 지역 축제를 취재한 후 쓴 글인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부터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촬영장을 방문한 뒤 쓴 기사인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최고의 에세이를 선정하는 문제를 주제로 한 <결정자가 된다는 것: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특별 보고서> 까지. 주제는 다양하지만 글은 결국 작가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고있었다.
그의 집요함을 느껴서인지, 이번 책은 내게있어 조금은 어려운 책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팔면 그의 생각을 놓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게는 그의 책이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집요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 속에서 잠시만 방심하면 길을 잃게 되었다. 일리노이를 향해 가던 그가 갑자기 옥수수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갑자기 돼지 이야기를 하고, 또 갑자기 그의 친구 이야기로 이어지는 등 그의 글은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추천의 말처럼 그의 풀가동된 레이더가 미치광이 같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잠시라도 한 눈을 판다면, 월리스의 속도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쓸때면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생각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분명 내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이 있는데, 감정도 느껴지는데 이를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 두루뭉술한 것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을 통하여 원하는 답과 표현에 도달한다면 참으로 행복하겠지만, 이는 내게있어 흔치 않은 귀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월리스의 글은 이런 귀중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글은 참으로 집요하며 절대 두루뭉술하지 않다. 그가 바라보고자 하는, 그리고 알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가 원하는 답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주제가 다르지만 결국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로 귀결되는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생각을 파헤치고,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쓴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한 창작문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 중 <무엇의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과 <결정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다른 글들에 비해 분량이 적지만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월리스가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거침없이 써내려간 서평과 좋은 에세이란 무엇인지 묻는 데서 시작해 더 심오한 시대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서문이라 그런 듯 하다.
그저 그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책을 덮는 순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월리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글은 자신의 생각의 끝을 보기로 작정한 마냥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 털어놓기도 하고, 특정인 또는 특정인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면서도 그 과정 속에는 월리스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려웠던 그와 그의 글이었다. 책을 다 읽은 이 순간, 그저 월리스가 부러울 뿐이다. 스스로를 위한 창작물을 만들고, 집요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끝까지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려고 하는 그의 모습과 이로인해 만들어진 깔끔하고 명확한 그의 작품이 부러웠다.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끝까지 따라가는 월리스처럼, 언젠가는 나의 생각과 내면, 그리고 이 외의 것들을 끝까지 쫓아 두루뭉술한 구름이 가리고 있는 무언가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