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글 입력 2020.05.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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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거의 온갖 것에 '어지러움'을 느꼈던 작가 월리스. '인생 멀미'를 달고 사는 통에 곧잘 창백한 얼굴이 되어 현기증을 호소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이 멀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멀미를 유발하는 세상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잡지 《하퍼스》의 제안으로 자신이 성장한 곳인 일리노이를 방문하여 지역 축제를 취재한 후 쓴 글인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부터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촬영장을 방문한 뒤 쓴 기사인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최고의 에세이를 선정하는 문제를 주제로 한 <결정자가 된다는 것: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특별 보고서> 까지. 주제는 다양하지만 글은 결국 작가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고있었다.

 

그의 집요함을 느껴서인지, 이번 책은 내게있어 조금은 어려운 책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팔면 그의 생각을 놓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게는 그의 책이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집요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 속에서 잠시만 방심하면 길을 잃게 되었다. 일리노이를 향해 가던 그가 갑자기 옥수수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갑자기 돼지 이야기를 하고, 또 갑자기 그의 친구 이야기로 이어지는 등 그의 글은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추천의 말처럼 그의 풀가동된 레이더가 미치광이 같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잠시라도 한 눈을 판다면, 월리스의 속도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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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때면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생각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분명 내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이 있는데, 감정도 느껴지는데 이를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 두루뭉술한 것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을 통하여 원하는 답과 표현에 도달한다면 참으로 행복하겠지만, 이는 내게있어 흔치 않은 귀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월리스의 글은 이런 귀중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글은 참으로 집요하며 절대 두루뭉술하지 않다. 그가 바라보고자 하는, 그리고 알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가 원하는 답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주제가 다르지만 결국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로 귀결되는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생각을 파헤치고,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쓴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한 창작문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 중 <무엇의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과 <결정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다른 글들에 비해 분량이 적지만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월리스가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거침없이 써내려간 서평과 좋은 에세이란 무엇인지 묻는 데서 시작해 더 심오한 시대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서문이라 그런 듯 하다.

 

그저 그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책을 덮는 순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월리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글은 자신의 생각의 끝을 보기로 작정한 마냥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 털어놓기도 하고, 특정인 또는 특정인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면서도 그 과정 속에는 월리스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려웠던 그와 그의 글이었다. 책을 다 읽은 이 순간, 그저 월리스가 부러울 뿐이다. 스스로를 위한 창작물을 만들고, 집요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끝까지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려고 하는 그의 모습과 이로인해 만들어진 깔끔하고 명확한 그의 작품이 부러웠다.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끝까지 따라가는 월리스처럼, 언젠가는 나의 생각과 내면, 그리고 이 외의 것들을 끝까지 쫓아 두루뭉술한 구름이 가리고 있는 무언가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 David Foster Wallace Essays -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옮긴이 : 이다희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
문학>에세이

규격
138*214mm

쪽 수 : 288쪽

발행일
2020년 04월 17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89932-53-4 (03840)





저자 소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David Foster Wallace
 
미국 소설가. 1962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8년 46세에 사망했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논문으로 쓴 장편소설 《시스템의 빗자루The Broom of the System》가 198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 후 1996년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형식 과잉의 두 번째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었다. 《무한한 재미》는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으로, 《타임》은 이 소설을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11년 출간된 세 번째 소설 《창백한 왕The Pale King》은 월리스가 죽기 전까지 십여 년간 집필한 미완성 유작이다.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십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스무 살 무렵 첫 자살 충동을 겪은 후 평생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을 땐 전기충격요법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기억력 상실 등의 후유증을 겪다가 회복되고는 했다. 자살 충동을 동반한 우울증 외에도 술, 마리화나, 텔레비전, 섹스, 설탕 중독으로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병균이나 물, 비행기 등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2007년 오랫동안 복용해온 항우울제 나르딜의 극심한 부작용으로 약을 잠시 끊지만 곧 우울증 삽화가 재발했다. 새로 처방받은 약은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월리스는 소설로만 주목받은 작가는 아니었다. 문학비평, 글쓰기 창작 수업, 에세이로도 이목을 끌었다. 특히 현대적 실존의 단면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그걸 설명하려고 했던 에세이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이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시스템의 빗자루》 《무한한 재미》 《창백한 왕》, 소설집 《희한한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추악한 남자들과의 짧은 인터뷰》 《오블리비언》, 산문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랍스터를 생각해봐》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끈이론》, 케니언 대학 졸업 축사를 바탕으로 꾸려진 《이것은 물이다》가 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산문집 세 권에서 아홉 편의 글을 골라 엮은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아홉 편의 글 중 표제작으로 삼은 글로 국역본 제목을 정함. 같은 제목의 단독 산문집과 동일한 책 아님)과 《오블리비언》 《끈이론》 《이것은 물이다》가 있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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