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안의 토끼를 깨우는 일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도서]

그림책을 통해 떠나는 제멋대로 공상여행
글 입력 2020.05.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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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것을 접한지도 참 오래되었다. 어렸을 적 나는 학습지 브랜드인 ‘씽크빅’을 너무 좋아했다. 학습지 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씽크빅 선생님 언제 와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로. 왜 그렇게 그 학습지가 좋았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빳빳하게 제본되어 오는 학습지 속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그림들, 그리고 몇 개의 활자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씽크빅’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책 이용권을 구매해 주었다. 일주일 단위로 ‘씽크빅’이 선정한 책 몇 권이 박스로 포장되어 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내 손에 닿는 책은 항상 그림이 가득한 책이었다. 글자가 읽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당시의 나는 지금과 달리 앉은 자리에서 빽빽한 글씨의 소설책을 한시간 만에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더 퇴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 시절의 나는 책을, 그 중에서도 그림책을 참 좋아했다.

 

 

“그림 너머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문장 뒤에 가려진 마음들을 읽었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8

 

 

저자의 이 말에서 나는 내가 왜 그림책을 좋아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책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글자만 가득한 책도 영상이나 실제 상황보다는 상상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림책은 상상자극제의 정점에 서있는 것 같다.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제멋대로 나만의 이야기를 꾸린다. 마치 이야기 보따리를 지고 다녔다는 한 할아버지가 된 것처럼, 그림 속 장면을 통해 내 멋대로 꾸리는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소중했던 것 같다.

 

 

“내가 문득 낡은 그림책들을 보는 건 그 각각의 ‘나’ 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10

 

 

저자는 이처럼 그림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잃어버린 영혼]을 보고는 자신은 영혼을 분실하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나 하나로는 부족해]을 읽고 레오의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 저자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잊고 살았던, 그림책을 통해 떠나는 제멋대로 공상을 해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 짧은 공상 여행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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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에 관해 쓴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 中

 

 

“너 방금 그 말 완전 영혼 없었어.” 요새 정말 자주 쓰는 표현이다. 영혼이 없다. 주로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면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진심을 다하지 못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고들 한다. 그만큼 다들 행동이 정말 빠릿하다. 지하철을 타도 가장 빠른 하차지점을 선택해 내리고 그마저도 모자라 에스칼레이터까지 뛰어가 유리한 자리를 점령한다. 나 또한 평소 그런 편이었다. 이 책을 지하철에서 몇 장 읽었었는데,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행동거지가 느려 지니 다른 이들이 얼마나 빨리 빨리 행동하고 있는지가 더욱 잘 느껴졌다.
 
이렇게 빠르게 살다 보면 가끔 영혼들은 자기 주인을 놓친다. 영혼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아차 하는 사이 영혼을 잃어버린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기계처럼 행동한다. 무조건 빠르고 효율적이게. 그러다 보면 진심을 다할 수 없다.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진심을 다할 수가 있을까? ‘역지사지’의 생각을 기반으로한 감정 동화/이입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기본이 된다는 사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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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때 영혼을 잃었다면 그가 영혼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은 바로 그 영혼에게 그들이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온전히 되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할 테니까.”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25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영혼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제 주인을 찾기 위해 바쁘게 오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영혼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것이 사색일지도 모르겠다. 영혼 없이 지냈던 시간들에 대한 사색과 고민, 그리고 성찰.
 
나는 밤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 하루 내게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며 ‘그땐 왜 그랬지’라는 생각을 한다.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아도 그저 ‘응, 그래’ 혹은 ‘우와 정말? 대단하다’라고 응했던 기억들. 그 때의 내가 그 사람의 말에 흥미가 없었거나 어떤 강한 이유로 동감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영혼을 잃어버린 체로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나는 그 사람과의 대화를 다시 곱씹는다. 그리고 깊게 생각해본다. 그때 전하지 못했던 나의 진심을. 그러면 나의 영혼은 어느샌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방문을 지나 내 옆에 와있다. 그러면 영혼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있지, 그때는 내가 사실 이랬었나봐.”
 
 
 
나의 무기력을 사랑할 줄 아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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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 하나로는 부족해]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오에게 깊게 공감한다. 저자 자신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가끔은 누군가 나 대신 일을 해주었으면 생각한다고 말한다. 일이 생각대로 안되고 틀어지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한다.
 
나도 그에 공감하는 바이다. 나는 야망이 많다. 그건 좋은 것이라 생각 한다. 야망은 어떤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 자극제 역할을 해주니까. 다만 그만큼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항상 야망대로 일은 벌려 놓고 수습을 못해 스트레스 받는다. 또 남들에게 피해주는 것은 싫어하는 편이라 꾸역꾸역 늦더라도 할 일을 꼭 해야 해서 더 그렇다.

레오는 자신의 일이 벅차다 느껴질 때 마다 생겨난 자신의 복제들이 동분서주 아등바등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다 어느 순간 드러눕는다. 지쳐 버려 낮잠을 자고 난 후 오히려 레오는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괜찮아. 이 우울과 무기력은 별 것 아니야. 그냥 심심하고 지루하고 피곤할 뿐이야. 이렇게 따듯한 햇볕을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34

 

 
그런 레오를 보고 저자가 느낀 것을 풀어낸 이 두 문장은 여태껏 잊고 살았던 중요한 사실을 내게 깨우쳐 줬다. 그래, 무기력한 나도 나고, 딴 짓을 하다 일을 미루어 버리는 나도 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분류하고 ‘난 쟤랑 달라. 내가 원하는 애는 저런 애가 아니야.” 라고 선을 긋고 나 자신을 미워하던 내가 우스워진다.
 
나는 난데, 내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그토록 원하는 워너비의 나의 모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나는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무기력해도 괜찮다. 계획한 일을 다 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나는 노력했고, 딴짓 혹은 잠으로 보낸 시간 동안 행복해했다. 그럼 됐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니까.
 
 
 
나는 누군가의 토끼 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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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소개하는 [가만히 들어주었어]에서 토끼는 성을 망쳐 심란한 테일러의 곁에 가만히 있어 준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전에 다녀간 다른 동물들 앞에서완 다르게 테일러는 하고 싶은 말, 짜증내고 싶은 것들을 모두 토끼에게 털어 놓는다. 토끼의 마법은 ‘침묵’에 있었다. 말그대로 ‘가만히’ 들어주는 것.
 

 

“만약 누군가 [가만히 들어 주었어]의 토끼처럼 내 곁에 있어 주고, 얼마가 됐든 기다려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준다면 잠꼬대와 울음을 동반한 나의 요란한 꿈꾸기가 멈춰질까?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 45

 

 
저자는 가끔 자신에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누군가가 아무 조건 없이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일단 털어놨다는 사실 만으로 마음 한 켠에 쌓아 둔 고민의 추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대가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토끼를 간절히 바래 왔다.
 
하지만, 요즘에 드는 생각은 내가 누군가의 토끼인 적이 있느냐는 사실이다. 사실, 일방적으로 한쪽이 토끼가 되어 주기란 어렵다. 그건 돈을 받고 해주는 상담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대화는 기브앤테이크라고 했던가,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상대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내가 자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한다고 여기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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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만을 오로지 들어주는 나만의 토끼는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답은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만큼 나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정은 말로 표현되는 순간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온전한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토끼가 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나도 그래왔다. 애타게 토끼를 찾아왔지만, 그 토끼는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 잠든 토끼를 깨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 몇 줄이라도 좋다. 하루쯤 걸러도 좋다. 일기를 쓰며 나의 감정의 어딘가를 되짚고 있으면 토끼는 그때 당신 곁에 와있을 것이다.
 
 
 
혼자라는 것은 함께가 아니라는 말

 

[곰씨의 의자]에서 곰씨는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완벽한 공간인 의자를 아지트로 삼는다. 그런 곰씨에서 소란스러운 토끼들이 함께 하자고 찾아온다. 곰씨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지만, 얼마 안가 자신이 바래 왔던 혼자만의 행복이 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윽고 곰씨는 견디지 못하고 말한다.
 

 

“여러분이 좋아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소중해요. 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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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를 보면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의 내가 생각난다.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게 돌아가는 신입생 시절, 나는 동기들과 친목을 다지며 술을 마시거나 동아리 설명회를 돌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 보다 도서관을 선택했다. 그 때 당시는 혼자가 좋았고, 그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고등학생때도 늘 혼자였으니까. 익숙한 게 좋아, 누군가를 새로 사귀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까지의 노력은 내게 너무 버거워. 나는 지금 충분히 지쳤어.” 새내기 시절의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의무감에 가기도 했지만 조용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던 도서관은 내게 곰씨의 의자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개미 만한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고양이의 사진을 건지고는 기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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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가 지키려 애썼던 혼자만의 의자는 ‘홀로’의 안온함과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함께’여서 가능한 즐거움과 소통으로부터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58

 

 
저자의 말은 새내기 시절의 나를 호되게 질책한다. 사실이었다. 나는 어느새 ‘도서관에서 항상 혼자 있는 애’가 되어있었고, 그것은 새로운 사람을 사귈 의향이 생기고 준비가 된 이후에도 나를 그 말속에 가두어 놓았다. 동기들은 혹시라도 나의 도서관에 갈 시간을 뺐는 것일까봐 걱정했고, 나는 나대로 해명을 계속 늘어놓아야 했다. 도서관은 나에게 혼자만의 안식처이자 동시에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도서관을 이전만큼 잘 가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혼자와 함께 사이의 시소 타기를 하는 중이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약속을 잘 잡지만, 밤마다 꼭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별 것 아니지만 침대에 누워 소설을 읽고, 무드등을 키고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이나 하는 것. 또 가끔은 약속과 약속 사이에 나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일부러 텀을 두기도 한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시소를 타며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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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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