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이만 가득 찬 내가 그림책을 읽는 법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도서]

글 입력 2020.05.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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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를 좋아한다. 진짜 토끼를 볼 일은 거의 없으니, 토끼 형상을 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중이다. 어렸을 때 토끼를 놓친 적이 있다. 강원도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갈 때 즈음에 베란다에 작은 케이지에 키우던 흰색 토끼가 죽었다. 처음 키운 동물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억울했다. 학교가 끝나고 가방도 벗어 두지 못한 채로 베란다로 달려가곤 했던 나의 마음에 배신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토끼를 좋아하는 것이 순탄하다. 메신저의 토끼 이모티콘을 모은다던가, 베니, 덤퍼 (영화 '밤비'), 에스더버니, 시계토끼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노우볼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 등의 토끼캐릭터의 소식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 등일 뿐이다. 과자를 하나 사더라도 토끼가 그려져 있는 것을 고르게 된다. 토끼에 대한 이 작은 애착이 나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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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ney

 


취향이라는 것은 사실 대단하지 않다.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마음이 가는 것이다. ‘나’는 까다롭다고 치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아함’과 ‘싫어함’을 자주 표시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 세상에 선택장애가 흔해지는 까닭이다. “내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를 말하는 데에만 해도 시선을 받아낼 용기를 내야한다.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친구가 데려간 연남동의 한 독립서점이었는데, 그것은 ‘어른의 것’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이에 따라 살 수 있는 것, 추구해야 하는 취향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그렇게 했다. 언젠가는 토끼 캐릭터를 내 삶에서 쫓아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 다시 또 놓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그림책 에세이」에 끌렸던 건 그럴 것이다. 성인이 쓴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 글자가 없는 책에서 만들어낸 글. 어린이 서적코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책을 본 성인의 감상평은 어떠할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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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대 구분은 편리함을 위한 것이지, 심리학을 전공하는 내가 경제학 도서를 읽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린이 도서를 읽지 못할 이유도 없다. 차마 읽어 볼 용기가 없었던 나에게 동의를 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책을 본 후에는 초점이 자신의 내부로 한 번 쯤은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전문서적은 어떤 지식이 부족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에세이는 ‘맞아, 나도 이랬었어, 나도 이랬겠다’ 혹은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하는 생각을 자아내고, 소설은 나의 흥분감에 집중한다. 그림책도 그런, ‘책’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삶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림책이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 작가 라문숙



어떤 날은 그림이 귀엽다며 휙휙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그림이기 때문에 더 본인의 이야기와 엮어내기가 쉽다. 이미 내용이 마무리된 줄글의 책들은 선택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림책은 동동 떠다니는 나의 생각 중에서 이 그림과 관련이 있을 것들을 낚아서 길어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절반 정도는 내가 만든 책이기 때문에 절묘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에 소개된 14권 가량의 그림책은 작가의 삶의 장면들과 연결되어 있다. 옆에 살포시 놓여진 그림들을 보면 나의 삶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가의 이야기로부터 또 다른 경험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림책과 마인드맵 지어진 무수히 많은 그림들이 침대에 앉아 있던 나에게 색다른 기억을 건네주었다. 이것들이 회상 밖에는 나에게 주는 것들이 없을 지라도, 편안하고 푸근함,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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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그어 놓는 것은 효율성과 한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한다. 그림책 한 권 읽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내가 그어 놓은 선들이 효율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에게 가시가 돋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토끼는 아빠가 근무했던 부대의 뒷산에서 살게 된 거였다. 정이 많고 미련도 많았으면서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던 내가 너무 많은 친구들과 편지를 수도없이 주고받는 걸 본 엄마는 재회의 싹을 잘라버렸다. 대전에서 토끼를 보겠다고 충분히 혼자 강원도로 갈 수 있는 아이라고 여겼다셨다.

고백하자면, 그 때의 나는 토끼가 내 옆에 있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토끼 옆에 있어서 행복했고, 내가 그만큼 사랑해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의 어느 부분에 갇혀 있었다. 가끔 그러했었던 나와 새하얀 토끼가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돌아봤으면.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옆에 나의 토끼가 계속 함께 해 주었으면.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지은이 : 라문숙

출판사 : 혜다

분야
에세이
 
규격
130*188 / 올 컬러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0년 03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719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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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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