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삼사탕과 어른의 연관성 [사람]

스승의 날을 앞두고 떠오르는 선생님
글 입력 2020.05.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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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과 내일 사이 여기는 푸른 밤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듣는 라디오는 일상에 힘을 주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른이 힘든 것만은 아니에요. 전 겪을 만한 경험이고 덕분에 가질 수 있는 게 참 많다고 생각해요.’라는 dj종현의 위로를 받는 그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공부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생 그 정도 현실에 멈춰있는 학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다. 그래도 마냥 어릴 때는 물 흐르듯 살면 언젠가 모두가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삶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요즘은 이미 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오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나이가 들고 무뎌지면 덜 불안해 질까. 그렇게 무뎌지고 괜찮아지면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건가. 행복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20대의 삶을 사는 나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창시절 만났던 유일한 어른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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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한동안 진정한 어른이란 문학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의도 없이 자신의 사랑을 베풀고, 삶 속의 낭만을 알며,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담담한 모습. 이상적이지만 허구의 세상에나 존재할 법한 느낌이라 내 기준이란 너무 이상적이기만 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던 2학년 첫 문학 수업 시간, “어린 왕자 같은 진정한 어른이 되어라.”라고 외치는 내 삶의 키팅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 사이에 사탕 선생님으로 불리던 문학 선생님은 누가 오든 심심한 잡담들과 함께 양 손 가득 사탕을 쥐여주시는 분이었다. 그 포근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참 따뜻해서 매일매일 수업 시작 전에 친구들과 교무실로 출석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을 만나 재잘거리던 문학, 노래, 영화 이야기들은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렴풋이 깨닫게 해준 순간들이었다. 키팅 선생님은 나에게 삶의 낭만을 알려줬다면 문학 선생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 사탕을 받는 대신 선물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선생님은 홍삼사탕과 영화, 소주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 날, 집 냉장고에서 엄마 몰래 가져온 소주와 에너지바를 신문지로 돌돌 말아 작은 편지와 함께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았다. 다음 시간에 간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술을 어디서 구했냐는 물음도 없이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시며 내 손에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홍삼사탕을 쥐여주셨다.


사탕이라 안심하고 입에 넣은 순간 예고 없이 훅 끼쳐 들어오는 씁쓸한 향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입안에 머금고 있을 수 록 달달한 사탕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3년이 지나고 졸업식 날, 좋은 어른이 되라며 손에 쥐여주신 묵직한 볼펜 한 자루와 책 <어린 왕자>,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를 격려하는 선물이었지만 어쩐지 볼펜의 묵직함이 왠지 모를 기대와 책임감의 무게로 느껴졌다. 그렇게 내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문학 선생님 다음가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되었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길을 찾아가듯 그분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어 꾸준히 바라보던 국어국문학과, 선생님께 소주 한 잔 받을 수 있는 스무 살의 나. 그 땐, 스무 살의 오늘날을 상상하며, 어른이란 오묘하고도 씁쓸해서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소주와 비슷한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아는 씁쓸함을 지닌 소주보다는, 내 손에 쥐어주신 홍삼사탕이 어른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고 없이 씁쓸하지만 또 오래 머금으면 한없이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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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왕자처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무엇인가 알아차리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선생님이 손 위에 올려주신 홍삼사탕처럼 쓰지만 또 달콤한 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은근히 알려주는 그런 다정한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어른이 힘든 것만은 아니에요. 전 겪을 만한 경험이고 덕분에 가질 수 있는 게 참 많다고 생각해요’라고, DJ처럼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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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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