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백의 시간 [문화 전반]

아무것도 아닌 생각이 필요하다
글 입력 2020.05.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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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의 시대인 만큼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주의를 흩트리는 것들로 넘쳐난다.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고 그와 동시에 TV를 보거나 쇼핑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진다. 이처럼 미디어 기술의 발달은 새로움과 신속성을 무기로 일시적인 쾌락을 주며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해준다. 시선을 끄는 각종 광고 이미지들은 더 멋지고 자극적인 것들을 갈망하고 기대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긴다. 무의식적인 산만함 덕분에 사람들은 집중하는 법을 잊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나가고 있다.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 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의 뇌를 변형시키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미디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다각도로 증명하며 문명의 이기가 일으키는 후유증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분류하는 능력은 강화되었지만 반대로 깊이 있는 사고와 논리를 파악하는 통찰력은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넓고 얕은 지식들을 쉽게 소비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활용하는 지적 사고능력은 감퇴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현대인들이 건망증이나 집중력 장애를 앓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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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해서 멍청해진 사람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무개의 일상을 아는 것이 더 쉬워졌다. 그만큼 관심의 영역과 교류 대상이 세계적인 범위로 확장된 것이다. 매 순간 쏟아지는 'TMI' 사건들처럼 가볍고 사소한 정보들 덕분에 사람들의 머릿속도 덩달아 복잡해졌다. 니콜라스 카는 이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맥락 없는 정보 추구로 인해 사고방식은 아주 경박해졌으며 이에 걸맞게 뇌구조까지 물리적으로 변화했다'라고 지적한다.

 

모든 위대한 업적은 깊은 집중력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류의 고전과 기념비적인 성취들도 깊이 있는 몰입과 사색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시대에서는 이만큼의 끈기 있는 집중력을 기를 틈이 허용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가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궁금한 것들은 언제든지 쉽고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더욱 똑똑해졌지만 깊이 있게 고민하고 파고드는 영리를 발휘하기에는 다소 멍청해져 버렸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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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즈 파스칼의 명언처럼 "모든 인간의 불행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지루함과 권태로부터 달아나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을 참아낼 수 없기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외부 대상으로 회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의 오락거리는 인간의 실존적 권태와 공허함을 충족시키기에는 그 유효기간이 너무나 짧다. '좋아요'의 하트가 선사했던 설렘이 하루 종일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뭘까. 산만하고 과도한 정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과 함께 소외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온전히 휴식해야 할 때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소확행'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게임, 넷플릭스, 음주, 자극적인 음식들 외에는 행복이라 여길 것이 없기에 자잘한 즐거움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능력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산만함이 습관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진정성 있게 바라보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끄는 것들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앗아가고 꿈과 목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들을 부담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깊은 행복감과 성취감은 그에 비견할 만한 끈기와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야만 하는 이유다.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을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함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현대인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개인적인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공백의 순간이 절실하다.



 

인간의 조건 'I think therefo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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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drey Kirk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는 때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논리가 흐리멍덩하고 타인의 생각을 빌려 쓰면서 '있어 보이는 척'하는 화려한 말잔치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부족하고 비판적 사고가 불가능할수록 타인의 생각들을 여과 없이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다수에 의한 유행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오류를 메꾸는 '기계 장치'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더욱 매력적인 형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룩한 문명이 인류의 미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도리어 '생각하지 못하는' 파멸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만 같다.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 조금씩 멍청해져 가는 현시대에 인간의 조건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 같다. 수없이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 속에서 잠시 멈춰 자신만의 공백을 지키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인간상이 되지 않을까?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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