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에는 모든 것이 수공예품이었다. [전통예술]

글 입력 2020.05.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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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실에 다녀왔다.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고리타분한 분위기일 것만 같다는 편견과 달리, 굉장히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전시 공간은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1층부터 차례대로 감상했다.

 

1층에는 선사 시대부터 대한 제국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의 종류는 서적, 초상화, 생활용품 등 몹시 다양했다. 마치 한 권의 역사책을 읽으며 관련 자료들을 생생하게 감상하는 듯했다.


삼국시대의 유물들은 특히 흥미로웠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의 유물들이 저마다의 특징과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고구려의 유물들은 투박하고 당찬 느낌을, 백제의 유물들은 섬세한 멋을 담고 있는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렇게 과거의 유물들이 다양하게 전해져 오는 건 무덤에 껴묻거리를 함께 묻었던 풍습의 역할이 컸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유물들을 감상하며, ‘과거에는 모든 것이 수공예품이었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손으로 만든 제품이 더 드문 현대와 달리, 조상들의 삶에서 공예라는 것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에 완전히 담기지 않는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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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서화, 불교회화, 목칠공예 작품들로 구성된 서화관과 기증문화재를 전시한 기증관이 있었다. 2층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나전칠기다. 사진으로 나전칠기를 봤을 땐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본 나전칠기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전복 껍데기를 활용해 그토록 예술적인 생활용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공예품은 이전부터 주로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 목공예가 발달하고, 바다 근처인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발달한 것이 그 예이다.

  

나전칠기의 자개 무늬는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했는데 금이나 은이 빛나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자개 무늬는 분홍, 노랑, 연두 등 몹시 다채로운 빛깔을 냈고,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 바뀌어서 신비로운 분위기도 풍겼다. 아무리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실물의 영롱함을 담아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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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실물의 차이를 깨닫게 한 작품들은 몇 가지 더 있었다. ‘백자 대나무 모양 병’에는 전체적으로 담청색 유약이 고르게 녹아 있는데, 맑고 은은한 푸른빛이 난다.


또, ‘끈무늬 병’의 끈은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는 선 하나가 도자기의 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진으로만 볼 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지만, 실제로 작품을 볼 때는 아니다. 단순히 ‘예쁘다’, ‘멋있다’라는 느낌과는 다른 풍치를 느낄 수 있었다.


 

 

도자기에 담긴 것들



3층에서는 불교조각과 더불어 발전 단계별로 전시된 공예품들을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고려, 조선 시대에 청자 – 분청사기 – 백자 순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도자 공예품을 모아놓고 보니, 도자기에는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조상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감 청자 무늬에 자주 등장하는 학은 고고함과 천년의 장수를 상징하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신선의 세계를 염원했음을 알 수 있다. 백자의 사군자 무늬에서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중요시하는 군자의 정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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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자기의 종류를 통해서도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귀족적이고 섬세한 느낌이 강했던 고려청자는 고려말 정치, 외교적인 혼란으로 점점 쇠퇴했다. 새로운 사회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은 검소하고 실용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분청사기의 발달 원인이다. 분청사기에서는 고려청자에 비해 몹시 담대하고, 자유분방한 힘이 느껴졌다. 무늬도 거창한 용무늬보다는 물고기, 식물처럼 소박한 그림이 훨씬 많이 보였다. 이를 통해 순박한 생활 정서와 민중적인 공예미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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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철화백자가 등장한 것도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큰 전쟁으로 인해 비싼 코발트 원료를 구하기 어렵게 되어 철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전까지 철화백자는 청화백자의 ‘대체품’이고 덜 아름답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철화백자에도 그만의 멋이 있는 것 같았다. 전쟁으로 인해 조선에 치욕을 안긴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고 싶었던 정서가 담겼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철화백자는 당찼다.

 

 

 

곡선의 미



우리나라 도자기는 시대별, 종류별로 차이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곡선의 미를 중시했다는 점인 것 같다. 건축 양식이나 철학적인 사상 등에 있어서도 서양은 직선, 동양은 곡선을 강조하는 성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동양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독 곡선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사랑방 모형을 보면 우리나라의 처마 끝은 하늘을 향하면서도 뾰족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곡선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건축 양식에서 우리나라의 공예품과의 통일성이 느껴져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듯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통해 공예품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멋’ 자체에 자긍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막연하게 멀게만 느껴지던 유물들과 더 가까워진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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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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