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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꺼내며


 

메마르고 차가웠던 계절이 지나가고 따뜻한 계절을 마주하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더욱 실감하는 것은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래에 있는 공터를 보고서 그랬다. 겨울 내내 새싹 하나 보이지 않던 곳이 언제 그랬다는 듯 새싹과 전에 보이지 않았던 꽃들로 가득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별 관심 없던 곳인데도 작년에는 이곳을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 ‘이제는 여기서 아무것도 안 자라는 건가?’부터 시작해서 ‘전보다 땅이 메마른 것 같아’ 등 다양했다. 여러 생각과 감정들로 교차된 것은 이곳이 꼭 나와 같아서였다. 메마른 땅이 꼭 메말라버린 나의 감정 같았고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가니 자연스럽게 나를 괴롭혔던 모난 감정들도 메마른 듯 감흥 없던 나날들도 지나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푹신해진 땅 사이로 올라오는 새싹과 꽃들처럼 지금은 나도 생기를 되찾았다. 이러한 날들이 이따금씩 지나갈 때면 여전히 나의 부족한 마음의 양식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최근에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책들을 읽는데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그림책 에세이도 이러한 이유에서 선택하게 되었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우선은 제목에 이끌렸고 그 다음은 책을 소개하는 말에 이끌렸다. 표지에 적힌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제목은 메마른 땅을 따뜻하게 녹이는 햇살과 같은 따뜻함이 있어 더욱 좋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책을 소개하는 말 중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통해서도 그랬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여 이유 없는 일도 있고 그것이 더욱 좋다고 말은 내게는 새로운 관점을 느끼게 했다. (생각해보면 이유 없이 하고 싶은 일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작가의 관점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에요.

#2 마당 가득 보라색 빗방울이 내렸다

#3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것들은


 

각 장은 작가의 경험과 그와 어울리는 그림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경험 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 그로부터 20년 지난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비슷한 감정선을 타고 있는 혹은 비슷한 상황에서의 그림책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책 제목과 같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었다.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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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에서 작가는 자신의 실수로 그동안 적어왔던 초기 원고를 잃고 난 후 괴로웠던 마음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꼭 코리 도어펠드 작가의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테일러와 닮았다.

 

테일러 또한 자신이 만든 성을 잃고 난 후 오는 좌절감 속에서 오는 마음들을 주위의 동물들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작가 주변의 사람들과 테일러 주위의 동물들은 나름대로 조언을 건넨다. 하지만, 작가도 테일러에게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책에서 작가는 '어떠한 상황이 일어날 때 그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으러 가기까지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토끼는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뭔가 해 주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토끼는 그저 테일러 곁에 머무르며 테일러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리고 가만히 들어주었다.'


- 42p



누군가는 나름대로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 조언이나 충고나 조언의 말을 하곤 하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실, 당사자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 토끼가 테일러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토끼는 어떠한 조언도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농담도 아닌 그저 곁에 묵묵히 있어주었다.


작가 또한 테일러 옆의 토끼처럼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우선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법으로 잠을 택했다. 작가에게 잠은 곧 토끼였다.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는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애매하고 사소한 감정을 다독이기 위한 ‘내 안의 토끼’가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어쩌면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다른 동물들과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바램과 반성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토끼’와 같은 즉, 나의 투정과 고민을 들어주는 가족이 있었다. 조언이나 충고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토끼’는 없었다. 오히려, 나를 탓하고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렇기에, 이제는 '내 안의 토끼'를 찾아서 나에게 공감과 위로를 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금세 '토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노력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토끼가 아닌 다른 동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가까운 가족에게 나는 조언이나 비판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그동안의 나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앞으로는 가족에게도 혹은 타인에게도 먼저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책을 덮으며


 

책 속에 소개된 그림책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책 에세이를 보다 보면 대략적인 내용 흐름은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작가의 이야기도 그림책의 이야기도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와 같은 비슷한 상황과 경험 그리고 감정을 느껴보았기에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작가가 그림책 에세이를 쓰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고 특히나 작가는 완성된 원고는 몇 번이고 잃어버리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나 또한 글을 쓰다 혹은 과제를 하다 파일을 잃어버리거나 가까스로 되찾는 경험들이 종종 있기에 그 답답한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오히려 그 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사라진 원고에 대해 연연해하기보다는 새롭게 쓰는 글에 집중하였고 그 과정 속에서 더욱 다듬어진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겪은 후 작가는 책을 통해 ‘가시투성이의 내가 새싹처럼 순해졌다.’라고 말한다.


여러 번의 수정과 탈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된 글들이 빛을 보듯 우리의 감정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모가 나고 예민해진 감정들도 언젠가는 둥글고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색하더라도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나 칭찬 그리고 이러한 그림책 에세이로 따뜻함을 채워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지은이 : 라문숙


출판사 : 혜다


분야

에세이

 

규격

130*188 / 올 컬러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0년 03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719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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