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몸의 언어 [도서]

글 입력 2020.05.0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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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미사여구 수식어구가 가득한 글이 아니라, 담백하게 혼잣말처럼 읖조린 글이 내 뼈를 때릴 때가 있다.


무난한 책이다. 삼삼하고, 심심하고, 스무스하게 넘어간 책. 읽기 쉽고 편하다. 읽기 쉬운 건 그만큼 잘 표현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대중적인 표현, 피상적인 어구여서 머무를 시간을 갖기엔 너무 익숙했다. 공공재만큼 흔한 표현은 그만큼 모두가 공감한다는 내용이었으니까. 조금씩 작가의 얘기를 넣을 듯 말 듯하는 글들이었다. 조미료처럼.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와닿기 마련이다. 그래서 솔직한 글을 선호하고, 자세하게 쓰인 이야기가 오히려 공감을 더 많이 받는다. 보통은 타인에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니까. 남의 속내를 이렇게 솔직하게 볼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겉만 흝는 글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 글은 보다보니까 조미료 같은 작가의 경험이 보일듯 말듯 하니까, 내 생각을 꺼내게 하고,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그래서 느려졌다. 지금의 내 모습도, 예전 어릴 때의 내 모습도 여기 들어있었다.


'네가 나 때문에 화가 나면,네가 나 때문에 울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 내가 네게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 같거든.네가 나로 인해 흔들리고 또 균형을 잃을 때 네게서 깊은 사랑을 느껴.'


마냥 행복하거나 마냥 슬픈 글보다는 아이러니한 글이 좋다. 말이 안되면서도 되는 글. 사랑도, 현실도 그러하니까. 나는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슬픔을 느끼는 그 순간이 잘 기억에 남는다. 이 글도 전부 그러하였으면 울렁거렸겠지.


혹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완전한 개인의 경험이었어도 재밌을 거 같긴 하다. 어떻게 생긴 상대를 사랑했는지,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스킨쉽과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장소에서 만나서 사랑을 나눴는지 등. 원래 디테일, 그 사소함 하나가 인상을 만들기에. '개인의 경험은 타인의 경험과 통한다'고. 그 사알짝 아쉬운 부분이 더 보편성과 매력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그림도 투박한 느낌이었다. 특별할 것도 특출날 것도 없지만, 공들여 그린 정성이 보였다. 20대의 풋풋한 사랑. 남자도 여자도 전부 어리게 보였다. 그래서 더 낭만적인 글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의 효과. 아쉬운 건 지극히 개인의 시점에서 보편적인 느낌으로 표현햐다보니 영역이 정해져있었다. 이성애가 아니고 동성애도 있을텐데, 그 표현도 있었으면 좀 더 좋았을걸. 혹은 무난한 관계의 형상이 아닌 또 다른 모습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깊고 진한 스킨십은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애매하든 몸을 마주하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어떤 언어가 있다고요.'


<몸의 언어> 낭만적인 그림과 낭만적인 글, 사랑에 대해 돌이켜보고 회상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공감하며 행복해하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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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일러스트와 시적인 문장의 만남

사랑에 대한 거짓 없는 통찰과 단상

그럼에도 용기를 내는 연인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조각들


"저는 깊고 진한 스킨십은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애매하든 몸을 마주하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어떤 언어가 있다고요.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사랑에 사무칠 수 있고, 키스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사람만이 나누는 복잡한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랑, 이라는 말에 고개를 젓거나 얼굴을 찌푸릴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란 인간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아주는 감정이다. 이런 이유로 연인의 사랑을 표현한 다수의 그림에세이가 주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에 반해 『몸의 언어』는 풋풋한 순간뿐 아니라 대담한 장면들도 담고 있다. 누군가는 고수위 성애 묘사에 놀랄 법도 하다. 이에 대해 나른 작가는 말한다. "깊고 진한 스킨십은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가 된다", "몸을 마주하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어떤 (미묘한) 언어가 있다"고 말이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일러스트와 짝을 이루고 있는 사랑의 단상들과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사랑과 연애를 그림 중심으로 표현한 에세이들의 특징을 꼽으라면 그림만 보아도 다 읽은 기분을 준다는 것이다. 『몸의 언어』 역시 타이틀에 걸맞게 두 사람이 만나 나누는 몸의 대화를 표현한 일러스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림별로 더해진 글을 놓치는 순간 절반이 아니라 아예 읽지 않은 것과 같아진다. 나른 작가만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결핍이 있는 네가 좋아. / 오해는 마. / 나는 그곳을 채우려 들지 않을 거야. / 내 결핍을 열어 보이는 것 / 그래서 네가 그곳을 자박자박 거닐고 / 거기서 곤히 잠들어 / 쉬게 하는 것 / 그러면 나는 네 결핍 속에 들어가 / 씨앗을 심고 물을 주어 / 꽃을 피울게."


한 편의 시와 같은 글 앞에서 독자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연인들이 몸을 마주하는 순간 오갈 수 있는 은밀하고 미묘한 대화, 깊은 기쁨과 슬픔, 불안과 안도, 초연함과 결연함 등이 과감한 그림과 만나 독자에게 각인된다. 


『몸의 언어』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렘과 열정, 익숙함과 갈등, 이별과 새로운 시작으로 설명될 수 있는 '보통의 연애' 과정을 용기 있는 일러스트와 깊이 있는 글로 표현해낸다. 더불어, 결국 연애도 관계의 문제이며, 모든 대인 문제가 그러하듯 연애 역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를 연인으로 맞이하는 일 또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우리는 결국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볼 수밖에 없으"며 "세상에 태어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 흔한 감정이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랑을 선언한다. 


"너를 사랑한다. 내 마음 깊은 곳이 손상을 입게 돼도, 또다시 어리석어져도, 영원을 기약할 수 없다 해도, 언젠가 네가 나를 싫어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이 두려워도. 이제는, 어느 날 나타나 나를 구원해줄 단 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이 지닌, 고상하고 순전하고 아름다운 본래의 가치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애쓰는 나 자신을 믿으려 한다." _「에필로그」 중에서


이 용감한 선언을 통해 독자는 위로와 공감을 얻고, 이어서 사랑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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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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